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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림엄 스토너 씨에게

('스토너'를 읽고 주인공에게 보내는 편지)

by 재인

안녕하세요. 스토너 씨

저는 당신의 이야기를 다 읽고 나서 너무 몰입한 나머지 책에서 빠져나오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이 복잡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당신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당신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부모님의 권유로 컬럼비아 농과대학에 입학합니다. 그리고 2학년 어느 날 아처 슬론 교수의 영문학 개론 강의를 듣다가 어떤 깨달음으로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꿉니다.


미래에 대해 전혀 꿈이 없던 당신이 문학을 만나고, 문학에 빠지게 되는 순간이지요.

이 부분이 당신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결정을 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영문학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같은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합니다. 이제 친구들도 사귀게 되고, 한눈에 반한 이디스와는 결혼을 합니다.


저는 그때 당신이 좀 더 신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 마음이 들었습니다. 당신은 아마도 여자와의 연애 경험이 전무후무하다 보니 좋은 여자를 보는 눈이 없었던 게 틀림없습니다.

저는 같은 여자이지만 당신 아내 이디스의 행동들이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참아내는 당신이 참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당신도 결혼 한 달 만에 결혼이 실패였다고 깨닫게 되죠.

하지만 당신에게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문을 연구하는 교수로서의 삶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이 일을 사랑했기에 힘든 결혼 생활을 견뎠는지도 모릅니다.

당신 아내에 이어 또 다른 빌런으로 등장하는 찰스 워커가 나오는 대목에서 저는 너무 화가 났습니다.

찰스 워커는 제멋대로이고 불성실하고 거짓말에 능숙한 인물입니다. 그런 학생을 끝까지 옹호하고, 당신을 공격하는 로맥스 교수도 이해하기 힘든 인물입니다.


당신은 원칙과 소신대로 찰스 워커란 학생이 대학원생으로 부적합하다고 여깁니다.

저도 당신 의견에 동의합니다.

원칙과 소신은 각자가 다르게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개인의 이익에 따라 적용된다면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당신이 사랑했던 캐서린 얘기입니다.

처음 캐서린의 글에 반한 당신이 캐서린의 논문 쓰기를 도와주며 서로 가까워지죠. 하지만 그전에 당신과 캐서린은 이미 서로에게 반한 상태였죠.


당신은 캐서린과 마음이 통하고 대화가 되는 진정 사랑의 감정을 느낍니다.

아내 이디스와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죠.

아마 이때가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불륜으로 보이는 둘의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모든 커리어를 잃을 수 없는 당신은 캐서린을 떠나보냅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만약 당신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당신이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딸 그레이스입니다. 당신은 그레이스가 어릴 적에, 당신을 닮은 딸을 많이 사랑하고 아꼈습니다. 딸을 교육하는 일에도 적극적이었죠.


그런데 당신 아내 이니스가 갑자기 그레이스에게 관심을 보이고, 교육을 맡으며, 당신은 딸과 멀어집니다. 그리고 그레이스도 점점 변하게 되죠.

당신은 이니스에게 너무 지쳐 변해가는 딸을 그저 방관합니다.

당신은 그레이스가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고 결혼을 해서 엄마를 벗어나려는 것을 알지만 이미 모든 것이 늦어버렸죠.


저는 당신의 인생을 망치고, 자신의 딸 인생마저도 파탄 내 버린 이니스를 정말 용서하기 힘들 거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인생을 삽니다.


어떤 삶이 성공이니, 실패이니, 말할 수 없죠.

당신이 살면서 한 선택들에 아쉬운 점도 있고, 안타까운 점도 있지만,

완벽한 인생이 있을까요? 완벽한 선택이란 게 존재할까요?


당신이 마지막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 같은 질문을 몇 번이나 되뇌죠.

‘넌 무엇을 기대했나? ’


우리는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요?

그렇게 되묻고 나니 저도 인생을 대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끊임없이 노력하고, 한없이 인내하며, 한평생을 잘 살았다고,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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