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클레어 키건 작가를 좋아한다.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발간된 그녀의 책들을 모두 찾아보고 여러 번 읽었을 만큼
참 좋아한다.
그녀의 글에서는 뭔가 말로 하지 않지만, 묵직하게 느껴지는 감정들이 있다.
그러면서도 간결하고 섬세하고 예리한 문장들이 짧지만 많은 것들을 전달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거 같아 좋다.
이 책은 전에 두 번 정도 읽었는데, 이번에 낭독 프로그램에서 이 책을 가지고 낭독 연습을 하기에 다시 읽게 되었다.
그래서 낭독에서 배운 약간의 팁을 가지고 천천히, 주인공의 생각을 따라가며 읽어보았다.
주인공 빌 펄롱은 석탄 야적장을 운영하며 아내와 다섯 딸과 함께 시내에 산다.
그는 당시 열여섯이었던 엄마가 미혼모로 낳은 아들이다. 엄마는 미시즈 윌슨 부인 집에서 가사일꾼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윌슨 부인이 엄마와 자신이 같이 지내도록 도움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펄롱이 12살 때,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도, 윌슨 부인은 펄롱을 거두어주었다.
펄롱은 학교를 마치고 석탄 야적장에서 일하다가 지금의 자리로 올라갔다.
그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힘들어하는 시기에 성실하게 일하며, 아내와 다섯 딸들을 잘 부양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뭔가 채워지지 않는 감정을 안고 살아간다.
어느 날, 그는 세탁소를 운영하는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한 소녀의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는 당황해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소녀의 부탁을 거절한다. 하지만 내내 마음이 쓰인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수녀원으로 석탄 배달을 갔다가, 석탄광에 갇힌 한 소녀를 목격한다. 그는 동네 사람들이 수녀원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을 하는 것을 들을 적은 있지만 실제로 아이들이 처한 모습을 보고 충격받는다. 하지만 그는 다시 모른 채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크리스마스이브날, 눈이 내리는 부둣가 길을 따라 걸으며 그는 빨리 볼일을 보고 집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 전등이 켜진 시내 거리 상점을 구경하고,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고, 아내 아일린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려고 주문한 에나벨가죽 구두도 찾고,
볼일을 다 보았을 땐 이미 사방이 어둑하고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집에 가지 않고, 불안한 걸음을 계속 옮기며, 자신이 도와달라는 소녀의 부탁을 거절한 일을 생각한다. 강 건너에 도착한 펄롱은 계속 걸어 언덕으로 올라가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수녀원까지 간다.
그리고 수녀원 정문 빗장을 당기고 아이를 데리고 나온다.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그는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게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고,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평생 지고 살아야 했던 일은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하지만 펄롱은 순수한 마음으로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진심으로 믿는다.
이 이야기는 18세기부터 20세기말까지 아일랜드 정부의 협조하에 카톨릭 수녀원이 운영하며 불법적인 잔혹 행위를 저질렀던 ‘막달레나 세탁소’를 배경으로 한다. 1996년까지 이곳에서 많은 여성들과 아이들을 감금하고 강제노역을 일삼았다고 한다. 1996년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때인데, 그 시대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게 믿기질 않는다.
우선 나는 펄롱이 미혼모 엄마에, 아빠도 모른 채 주인집 미시즈 윌슨의 도움으로 자라게 된 환경에서도 그가 참 잘 자랐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가 마지막에 용기를 내어 소녀를 데리고 나온 것은 자신을 잘 자라게 도움을 준 미시즈 윌슨 부인의 가르침 때문이 아닐까?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는 사소한 것들을 알려주고, 끊임없이 격려해 준 부인의 친절이 그를 올바른 길로 가게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올바른 행동을 하며 살고 있을까?
마음속으로는 옳다고 생각하지만 행동으로까지 옮기지는 않고 있지 않을까?
우리는 가끔 한 사람의 작은 행동이 발화되어 큰 울림을 주는 경우를 보아왔다.
해리엇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하나의 소설이 노예제도를 폐지하는데 큰 역할을 해냈고, 1955년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된 흑인 여성 로사 파커 사건은 흑인 인권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분명히 펄롱의 작은 행동도 결국 수녀원이 무너지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이젠 알았다. 제목이 말하는 것이 이처럼 사소하지 않다는 것을.
아니 이처럼 사소한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