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로 이사 오고 나서는 절에 자주 간다. 다니는 절이 집에서 가까워서이기도 하다.
해가 바뀌면 일 년등도 달고 입춘 기도를 시작해서 가족 생일 기도, 부처님 오신 날, 그리고 동지 기도까지 거의 매달 절에 가게 되는 거 같다.
그러다 작년부터는 매달 다가오는 초하루 날까지 챙기다 보니 한 달에 두세 번 갈 때도 있는 거 같다.
하지만 누가 나보고 불교 신자세요? 하고 물으면 선뜻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교회에 나가는 것도, 성당에 나가는 것도 아니지만.
어릴 적에 엄마가 절에 다니셨고, 할머니도 절에 다니셨고, 결혼하고 보니 시어머니도 절에 다니셨다. 그래서 절에 다니게 된 것이 자연스러웠던 거 같다.
절에 다니긴 해도 내가 불교 신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고, 그렇게 말하기엔 나는 너무 날라리 신자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더군다나 나는 아직 제대로 된 기도를 할 줄도 모르는데.
아는 친한 동생이 가끔 언니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할 때마다, 차마 어떻게 기도를 하는 거냐고 물어보지 못한 채 모호한 웃음만 짓곤 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 아버지로 시작하는 기도를 하던데 불교에서는 부처님을 외쳐야 하나.
암튼 오늘은 남편 생일 기도가 있는 날이다. 지난주에 아들 생일 기도를 깜박하고 잊어버린 게 미안해서인지 (누구에게 미안한 건지? 아들에게? 아님 신자가 오지 않아도 열심히 기도해 주신 주지 스님께?) 아침부터 서둘렀다.
그래도 기도가 시작하는 10시부터 2시간을 참는 건 아무래도 힘들 거 같아 조금 늦게 출발했다. (아들이 늦게 일어나 아침을 챙겨 주느라 늦었다는 것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며)
다행히 음력 초하루에 하는 신중기도 시작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법당이 익숙한 탓인지, 오늘도 늦게 왔지만 끝날 때까지 있겠다는 마음 때문인지, 스님 말씀에, 목탁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점차 기도에 빠져들었다.
요즘 내가 일을 그만두고, 남편 일도 좀 힘들어지면서 왠지 모르게 우린 서로에게 미안해하고 있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집에 있게 된 나는 가정주부의 삶이 어떤 건지 체험하고, 스스로 경제권을 가지고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다는 걸을 느끼며 처음으로 눈치라는 걸 보게 되었다.
(물론 누구도 나에게 눈치 준 적은 없지만)
몇 번 다툼이 있었고, 내게 미안해하는 남편에게 싫은 소리도 해댔다.
그러고 나면 곧 후회하고 나 역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근데 갑자기 왜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을까? 남편 생일 기도라서 그랬을까?
그러면서 문득 남편을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고 산 삶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결혼해서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나만 생각하고 내 위주로 살았고,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뭐든지 아이 위주로 생활했던 거 같다. 지금껏 남편은 어땠을까?
남편은 나랑 살아서 행복할까? 나랑 결혼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을까?
난 남편에게 좋은 아내인가?
이쯤 생각하고 나니 무엇 하나 그렇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큰 나는 진심을 다해 남편 일이 잘 풀리기를 바라고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했다.
마침 스님이 화엄성중을 108번 독경 중이셨다.
그것이 나에게는 마치 108배를 하라는 것으로 느껴져서 나는 계속 절을 했다.
그가 정말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