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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by 재인

내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곳일까?

우리가 무릉도원 혹은 유토피아라고 생각하는 곳은 어떤 곳일까?

혹시 파란 하늘에 푸른 잔디밭과 그림 같은 집이 있는 곳, 전쟁도 사소한 다툼도 없는 곳, 종교도 없고, 질병도 노화도 없는 곳,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곳을 생각하는가?

바로 그런 곳이 올더스 헉슬리가 말하는 멋진 신세계이다.

이곳은 진실과 아름다움보다 행복과 안락함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곳이고, 신보다 기계와 의약품을 선택하여, 노쇠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젊음의 욕망이 감소하지 않는 곳이다.

인간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유리병 안에서 배양되기 때문에 부모나 형제가 없이 오로지 혼자이고, 배양될 당시에 이미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등 다섯 단계의 계급으로 나뉘어, 계급에 맞는 교육을 철저히 받는다.


알파 계급은 최상위 지도자 계층으로 지적 능력이 가장 뛰어나고 체격이 크고 외모도 우수하다. 주로 회색 옷을 입는다.


베타 계급은 지적 능력이 우수한 중간 관리자급이고, 감마 계급은 단순 사무직으로 녹색 옷을 입는다.

델타나 엡실론 계급은 하위계층으로 주로 육체노동을 하고 의도적으로 키가 작고 체격이 왜소하다.

모든 계급은 병에서 배양할 때부터 수면학습(최면학습)으로 자신의 계급에 만족하도록 세뇌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다른 계급을 부러워하지 않도록 조건화되어 있다.

인간은 나이를 먹고 자신의 내면에서 노화를 촉진시키는 나약함과 무기력함과 불편함을 느끼기에 노쇠함은 질병으로 보고 노화되지 않도록 한다.


또한,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종교에 귀의하는 것으로 보고, 종교는 불필요하다고 여기고, 죽음이 두렵지 않고 익숙해지도록 훈련을 받는다.


순결과 욕정은 신경쇠약증을 의미하고, 욕정과 신경쇠약증은 불안정을 의미하고, 불안정은 문명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에 인간은 언제, 어디서라도 걱정이나 슬픔, 고독 같은 불필요한 감정들을 없애고 쾌락을 좇는다.


이 신세계는 조지오웰의 ‘1984’와 마찬가지로 전체주의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사회이다.

하지만 개인의 의지와 생각이 모조리 통제당한 채 사회안정과 물질적인 복지만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가 꿈꾸는 미래 이상향일까?

지금 우리는 거의 100세 시대를 살고 있는데 노화를 막는 약물을 주입하고 죽을 때까지 젊음과 탄력은 유지하지만 60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는 것이 과연 행복할까?


도덕성이나 책임감 없이 모든 사람은 모두의 것이라 여기고 문란한 성생활을 하며, 철저한 계급사회로 사는 것이 행복할까?


우리가 어떻게 투쟁해서 노예제를 해방하고 평등한 사회가 되었는데 미래의 사회는 다시 노예제를 떠올리게 하는 계급제란 말인가?

우리는 군주주의와 제국주의 그리고 전체주의를 거쳐(물론, 세계에는 아직 군주주의와 전체주의 나라가 존재하지만) 민주주의 사회를 이루었는데 미래의 사회는 왜 다시 전체주의인가?

신세계에서 실종된 베타 계급 린다에게서 태어난 존은 야만인 보호구역에 온 버나드와 함께 새로운 문명 세계를 꿈꾸며 떠나지만,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평생 살아왔던 방식을 부정당하자 견디지 못한다. 또한 하나뿐인 가족 어머니마저 잃으면서 그의 세상은 무너져 버린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존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 인간은 아무리 기계화되어 편한 세상에 살고, 걱정, 불안 없이 쾌락만을 즐기며 살고, 병에 걸리지 않고, 노화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젊게 살 수 있다 하더라도, 결국은 개인의 자유의지를 잃으면 인간성을 상실하는 것이고, 인간성을 상실하면 인간답게 살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인간이기에 스스로 자기 삶을 계획하고 완성할 때 가장 인간답다고 생각한다.


멋진 신세계가 그리는 모든 것이 기계화되어 편안하고, 노화가 일어나지 않는 미래는 조금 솔깃하지만,

나는 인간이기에 내 삶을 주체적으로 계획하는 인간성을 잃지 않은 삶을 택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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