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가 몇 년 전에 부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처음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땐 좀 어렵고 이해도 안 가고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와 닿지 않았다. 그렇게 나에게 잊혀져 간 책이였다. 그러다 얼마 전 그녀가 노벨 문학상을 타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그녀의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지 못했던, 내가 느끼지 못했던 무엇이 이 대단한 상을 주게 했을까 하고 말이다. 다시 읽어 본 그녀의 책은 나에게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이 책은 주인공 영혜와 영혜 남편, 영혜 언니, 영혜 형부가 등장하는데 영혜 남편의 시점인 채식주의자와 영혜 형부의 시점인 몽고반점 그리고 마지막 영혜 언니의 시점인 나무 불꽃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작 주인공은 영혜인데 영혜의 시점은 없다는 점이 놀랍다.
난 이 중에서 누구보다 영혜 언니 인혜가 참 가슴 아프고 안타까웠다.
인혜는 지친 어머니 대신 아버지 술국을 끓여주는 든든한 맏딸이고 무기력하고 늘 피곤한 예술하는 남편을 대신에 아들을 돌보고 생계를 책임지는 워킹맘이고 누구보다 동생을 살뜰히 아끼는 언니이다. 그런 인혜에게 어느 날 동생 영혜는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이로 인해 부부간에 갈등이 깊어져 급기야 아버지가 영혜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그로 인해 영혜는 자해를 하고 결국 동생 부부는 이혼하게 된다. 부모도 영혜를 버리고 오로지 인혜만이 영혜를 돌보게 된다. 그러나 진짜 비극은 이제 시작이다. 어느 날 인혜는 영혜 자취방에 갔다가 거기서 영혜와 밤을 보낸 남편을 보게 되고 남편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동생과의 행위를 비디오로 녹화한 것을 보고서 두 사람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일로 은혜는 남편과는 헤어지고 동생 영혜는 다시 정신병원으로 보낸다.
주인공 영혜가 어릴 적 아버지에게 폭력에 노출되고 성인이 되어서 어느 날 꾼 꿈으로 인해 그 폭력의 트라우마에 자유롭지 못하고, 무관심하고 이기적인 남편으로 인해 모든 폭력성을 거부하고 결국 음식과 삶을 떠나려 했던 점에 대해서 언니 은혜는 본인이 왜 막지 못했을까 자책한다. 본인이 맏딸로서 실천했던 성실함은 조숙함이 아니라 비겁함이라고, 생존의 한 방식이였다고 말한다.
‘막을 수 없었을까. 영혜의 뼛속에 아무도 짐작 못할 것들이 스며드는 것을. 해질녘이면 대문간에 혼자 나가 서 있던 영혜의 어린 뒷모습을’ 이란 장면이 참 슬펐다.
그럼에도 나는 이 모든 것을 혼자 감내해야 했던 언니 인혜가 더 애달프게 느껴진다. 남편이 영혜의 몽고반점에 끌려 같이 밤을 보냈을 때 어떤 기분이였을까? 영혜의 자취방에 간 아침에 그 장면을 목격하고도 어떻게 둘이 잠에서 깰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을까? 둘이 밤을 보냈을 때 과연 동생에게는 미움이 없었을까?
모든 상황이 남편만의 잘못이라고 생각했을까? 나중에 아들 지우에게 인혜는 아빠를 어떻게 설명해줄 수 있을까? 영혜는 살고 싶지 않다고, 나무가 되고 싶다고 하는데 영혜를 누구보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언니 인혜는 과연 어떻게 할까? 그래도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고 견뎌내는 인혜의 모습은 깊은 존경심마저 느껴진다.
나는 이제 이 책을 통해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폭력이, 무관심이, 방관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오는지를 육식에 비유해 육식을 거부하는 영혜로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삶의 무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며 나는 영혜도, 인혜도 그녀들의 고단한 삶이 이제는 좀 편안해질 수 있기를 살며시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