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되면 흔히 어른들이 월동준비를 한다 고 하실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바로 김장이다. 겨울 이맘때가 되면 엄마는 ‘올해는 언제 김장할까?, 배추는 어디 것으로 살까?, 절임배추로 하는 게 낫겠지?, 미리 김치통 엄마 집에 갖다 두어라, 주말에 언제 시간이 되니? 등등 나름대로 참 바쁘게 김장 준비를 하신다. 나는 결혼 전부터 엄마가 김장하실 때 많이 도왔던 기억이 있다. 김장 하는 날이면 전날 배추를 4등분해서 자르고 소금에 절인다. 김장은 배추 절이는 게 절반이라고 할 정도로 배추 절이는 일이 어렵기도 하고 중요하기도 하다. 다음날 아침 마당에서 절인 배추를 깨끗이 헹구어야 한다고 엄마가 아침 일찍부터 깨우시면 그게 그렇게 싫었다. 그러나 비몽사몽간에 나와서 고무장갑을 끼고 엄마가 시키는 대로 절인 배추를 하나하나 물에 헹구어 차곡차곡 쌓다보면 어느새 배추가 산처럼 쌓아지고 허리는 끊어져 나갈 듯 아프다. 하지만 김장은 이제 시작이다. 무를 썰고 또 썰고 산더미만큼 썰고 나면 그때 갖은 양념과 고춧가루를 넣어 김치에 넣을 속을 만든다. 이 때 집집마다 비법이 등장한다. 어떤 집은 젓갈을 많이 넣기도 하는데 우리 집은 젓갈류를 많이 좋아하지 않아 생새우를 넣으신다. 그리고 무와 양파 마늘, 생강, 파 등을 넣어 끊여서 육수로 사용하신다. 그러면 김치가 익었을 때 김치 맛이 시원하다고 하신다. 진짜로 엄마 김치는 언제 꺼내 먹어도 시원하고 감칠맛이 있다. 내가 아는 언니는 배, 사과, 무, 양파, 파 등을 모두 믹서기에 넣고 갈아서 사용한다고 한다. 언니는 김치가 양념으로 지저분해 지는 게 싫어서 그렇게 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언니 김치는 유독 정갈해 보인다.
김치 속이 완성되면 이제는 송편이나 만두를 빚을 때처럼 모두가 거실에 둥그렇게 앉아 김치 사이사이에 양념 속을 넣는다. 이 때 김치 양념을 너무 많이 넣어도 안되고 또 너무 적게 넣어도 안 된다. 적당히 넣어야 하는데 이것이 초보자에게는 참 어렵다. 그래서 이 때 손이 야무지지 못하다, 그렇게 김치 속을 넣으면 나중에 김치가 무른다고 참 많이 혼났던 것 같다. 나는 엄마를 닮지 않아 똥손인지 (아마 아빠를 닮은 거 같음. 아빠 미안해! ) 아직도 솜씨가 없고 그나마 일을 한다는 핑계로 요즘은 엄마가 김장을 다 하시면 가져다 먹기만 한다. 언젠가부터 김치가 냉장고에 그득 차면 이제 겨울이구나 싶고 나도 모르게 뿌듯하다. 아마도 나이가 들었다는 거겠지.
하지만 올해는 엄마가 이제 나이도 있으시고 또 얼마 전에 양쪽 눈 모두 백내장 수술을 하시는 바람에 김장을 안 하기로 했다. ‘그냥 사 먹으면 돼, 요즘 누가 김장해?, 파는 김치도 맛 좋대’ 등등 이렇게 엄마한테 너스레를 떨긴 했는데 날도 이제 추워지고 어떻게 할지 정말 걱정이다. 그러면서 진작 엄마한테 김장 할 때 잘 배워 놓을 걸 후회도 되고 이제 엄마 김치를 못 먹나? 하는 생각에 울컥하는 마음도 든다.
요즘은 우리 집 뿐만 아니라 많이 김장을 안 하는 분위기이다. 예전보다는 젊은 사람들이 김치를 적게 먹기도 하고 다들 아파트에 살다 보니 배추를 절이는 것도 어렵고 또 힘든 일을 안 하려는 이유가 클 것이다. 점점 사회는 그야말로 기계가 사람들을 대신하고 있다. 카페에서 로봇이 커피를 내려주기도 하고 식당에서도 로봇이 사람 일을 대신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기계로 인해 편하다는 느낌도 있지만 뭔가 점점 기계에게 점령당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제 김장도 로봇이 하게 될까? 로봇이 한 김치 맛은 어떨까? 그러면 우리가 흔히 손맛이라고 하는 것은 없어지는 걸까? 별의별 생각들을 다하고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 엄마가 눈 수술하시고 이제 회복도 끝났으니 다음 주에 김장한다고 하신다. 나는 왜? 안 하기로 했잖아? 란 말을 못하고 그럴래? 하고 반가움을 떨치지 못한다. 엄마도 안 하기로 해 놓고 내심 걱정하셨나 보다. 올해는 일찍 친정에 가서 무 써는 것부터 해봐야 겠다. 그리고 차근차근 김치 속 만드는 법을 잘 배워 놓아야지 싶다.
그리고 내년에는 내가 김장을 해서 엄마를 드려야겠다. 잘 될지 모르겠지만 야무진 꿈을 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