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너무 좋아서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 바로 ‘희랍어시간’이다.
글을 읽는 내내 너무 좋아서 평소에 책을 빨리 읽는 나는 어떤 책보다도 천천히 읽으려고 노력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빨리 읽고 싶은 마음과 아껴서 천천히 읽고 싶은 마음이 때때로 상충하면서 책을 읽었다.
그녀는 수년 전에 이혼을 하고 세 차례 소송 끝에 양육권을 잃는다. 불면증에 시달리며 살던 어느 날 예술 고등학교에서 문학 강의를 하다 갑자기 말을 잃는다. 그녀가 열일곱 살 때에도 한 번 말을 잃은 적이 있었는데 이 때 낯선 언어인 불어를 통해 말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번에는 더 낯선 언어인 희랍어를 배우기로 한다.
그는 열다섯 살에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민을 와서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 우연히 희랍어를 잘하게 되면서 플라톤의 저작들에 이끌리게 된다. 그러다가 눈에 이상이 생기고 마흔 살에 시력을 잃게 될 거라고 진단을 내린 안과의사의 딸과 첫사랑을 하게 된다. 하지만 미숙한 사랑으로 그는 그녀와 헤어지고 한국으로 와서 희랍어 강의를 하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 아니 갑자기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녀는 분명히 두 귀로 언어를 들었지만, 두텁고 빽빽한 공기층 같은 침묵이 달팽이관과 두뇌 사이의 어딘가를 틀어막아주었다. 발음을 위해 쓰였던 혀와 입술, 단단히 연필을 쥔 손의 기억 역시 그 먹먹한 침묵에 싸여 더 이상 만져지지 않았다. 더 이상 그녀는 언어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가 표현한 글을 몇 번을 다시 읽어도 너무 두려운 느낌이다.
반면, 언젠가 시력을 잃게 된다는 것을 알고 살아가는 건 어떤 기분일지..
‘언젠가 눈이 아주 나빠질 거란 걸 처음 알았을 때 어머니에게 물었어요. 그 땐 아주 깜깜해지는 거냐고. 그때 어머니는 대답해줬어요. 그렇지 않다고.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할 거라고. 단지 아주 뿌옇게 될 뿐이라고.’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들은 건물에 날아 든 박새 소동으로 안경이 깨지고 다치게 된 남자를 여자가 도와주면서 둘이 함께 밤을 보내게 된다. 눈이 안 보이는 남자는 말을 더 많이 하게 되고 말을 못하는 여자는 더 침묵하게 된다. 눈이 안 보이는 남자와 말을 못하는 여자가 소통하는 법은 오직 하나 촉감을 통해서이다. 그렇게 그들은 소통하고 다가간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었을까? 서로에게 안식처가 되어 줄 수 있었을까? 그들의 다음 이야기가 참 궁금하다.
그녀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이 겪는 상처는 참 가슴 아프다. 그래도 유독 ‘희랍어시간’에 나오는 그와 그녀의 상처가 더 아프고 쓰라린 것 같다.
글을 읽는 내내 참 안타까운 마음이었지만 또한 좋은 문장들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컸던 것 같다.
‘아무리 닦아도 어둑한 데가 남은 은 숟가락 같은 그 보름달을 보며 나는 어두운 보도를 걷고 있었다.’ 란 문장이나 그가 첫사랑을 못 잊어 보내는 편지에 쓴 ‘완전한 어둠 속으로 내가 걸어 들어갈 때 이 끈질긴 고통 없이 당신을 기억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리고 그녀의 아이가 그녀에게 지어준 인디언식 이름 ‘펄펄 내리는 눈의 슬픔’ 등이 기억에 남는다.
인간의 상실감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들고 언어의 유희를 알게 해 준 이 책이 나에게 오랜 시간 머물러 있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