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손에 들어온 책을 앉은자리에서 2시간 만에 다 읽었다. 일단 너무 재미있게 잘 읽히는 책이었고, 주인공이 호주로 이민 가는 얘기라서 왠지 더 끌림이 있었다. 왜냐하면 내 여동생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 갔다가, 지금은 결혼해서 호주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잠깐 제주도에 와 있기는 하지만)
주인공 계나는 서울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3년째 금융회사에 다니고 있는 20대 후반의 여성이다.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예의 바르고, 허세도 없고, 기자가 되려는 목표가 뚜렷한 남자 친구와 계속 만나고 있다. 얼핏 보면 계나는 한국에서 괜찮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한국을 떠나려고 한다. 그녀가 한국을 떠나려는 이유는 본인이 한국에서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단 추위를 심하게 타고, 물려받을 재산도 없고, 직장도 마음에 안 들고, 명문대에 나온 것도 아니고, 김태희처럼 생긴 것도 아니라며 한국에서는 비전이 없다고 생각한다.
부모님과 남자 친구가 계속 말렸지만, 계나는 결국 호주로 떠난다.
하지만 그렇게 떠나온 호주도 만만한 곳이 아니다. 일명 닭장 셰어라는 곳은, 한 아파트에 10명 이상 거주해서 사생활이란 전혀 없고, 방음도 안 되고, 불편한 거 천지이다. 게다가 처음에는 영어가 안 되니 할 수 있는 알바라는 게 한정적이고 최저 시급도 받지 못했다. (당시 최저 시급은 13달러였는데, 계나는 8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힘들게 호주에서 4년을 보내고 시민권 신청을 앞둔 시점에서, 전 남자 친구가 연락을 해온다. 너와 인생을 함께 보내고 싶다고, 한국에서 계속 기다리겠다고, 평생을 기다려도 괜찮다고, 사랑한다고 고백을 한다.
계나는 마음이 흔들리고, 한국으로 와서 남자 친구와 두 달을 같이 지낸다. 함께 지내며 계나는 본인이 사랑받고 있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본인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채, 그냥 전업주부로만 사는 삶은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낀다.
그러면서 사람은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다. 하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 행복해질 수는 없다. 나는 두려워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며 남자 친구와 두 번째로 헤어지고 다시 호주로 떠난다.
계나는 행복도 돈과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행복에는 ‘자산성 행복’과 ‘현금 흐름성 행복’이 있는데 ‘자산성 행복’이란 뭔가를 성취하면 그 기억이 계속 남아서 사람을 오랫동안 조금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자산성 행복’을 가진 사람은 행복 자산의 이자가 되게 높다는 거다.
반면 ‘현금 흐름성 행복’이란 행복의 금리가 낮아 행복 자산에서 이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금 흐름성 행복’을 가진 사람은 현금 흐름성 이자를 많이 창출해야 한다는 거다.
계나는 자신이 한국에서는 ‘자산성 행복’은 없고 ‘현금 흐름성 행복’은 필요한 만큼 창출하기 어려웠다고. 본인은 현금 흐름성 행복이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내 여동생 생각을 많이 했다.
내 여동생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갑자기 호주로 1년 워킹홀리데이를 간다고 해서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었다. 그때 나는 결혼해서 신혼이었는데, 내가 만약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같이 갈 텐데 하고 엄청 아쉬워했다.
그리고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나 자책을 했다.
암튼 내 동생은 그렇게 호주로 떠나고, 1년 후에 다른 모습으로 와서는, 호주로 대학 가기 위해 필요한 아이엘츠 시험을 보고 다시 호주로 떠났다.
계나가 처음에 영어가 안 되어 최저 시급도 못 받았다고 하는 장면에서, 내 동생도 처음에 영어가 안 되어 좋은 알바를 못했다고, 그래서 아르바이트비를 많이 못 받았다고,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내 동생은 당시 호주 최저 시급이 10달러였다고 했다. 본인은 8달러 정도 받았다고. 한국은 당시 최저 시급이 1865원이었다.)
내 동생도 그때 저런 고생을 했었겠구나 생각하니, 그때 호주로 간 동생이 마냥 부럽기만 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 좀 부끄러웠다.
우리는 항상 행복한 삶을 꿈꾸고, 행복을 좇으려고만 한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모두 각자 저마다의 행복을 가지고 있다.
나도 가끔 당연한 것이, 당연시되지 않을 때, 사회가 좀처럼 상식적이지 않다고 느껴질 때면, 그만 한국을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세상에 낙원은 없으며, 한국을 떠나면 또 다른 정글이라는 것을.
행복은 좇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