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변신

by 재인

요즘은 고전을 많이 읽고 있다. 예전에 나에게 고전은 이해하기 어렵고, 읽기 힘들기만 한 책이었다.


어쩌다 벽돌 같은 책 가령,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책을 다 읽고 나면 왠지 뿌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하지만 그때는 다 읽었다는 성취감만 있었지, 내용에 대해서, 작가에 대해서 궁금한 점도 없었고, 잘 이해하지도 못한 것 같다.


확실히 나이 오십에 읽는 고전은 다르다.


내가 요즘 고전을 읽고, 고전을 좋아하는 이유는, 작품마다 그 시대상을 잘 보여주기도 하고, 읽는 내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 주기 때문인 것 같다.

때로는 열린 결말이기도 하고, 때로는 주인공의 극단적인 선택도 있지만, 그것을 통해 삶의 가치와 의미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결국 역사가 번영과 쇠퇴 그리고 회복으로 되풀이되듯이, 우리의 삶 또한 성공과 실패, 좌절, 그리고 재기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는 실직한 아버지와 병약한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을 대신해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다.


그는 힘들지만 열심히 일하며 아버지의 빚을 갚고, 가족들을 부양하는 것을 행복으로 느낀다.

하지만 어느 날 아침, 그는 끔찍한 벌레로 변하게 된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한 이유는 뭘까?


나도 예전에 힘들고, 지치고, 삶이 버겁다고 느껴질 때, 그냥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것은 죽고 싶다는 것과는 약간 다른 마음인데,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조금 허망한 생각이었다.

그레고르는 본인의 의지로 벌레로 변한 것은 아니나, 영업사원으로 힘들게 일하며, 자신보다 가족을 위해 사는 것이 많이 버거웠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 벌레로 구현된 것이 아닐까?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하자, 가족들은 그가 왜 벌레로 변했는지, 그가 어떤 상황인 건지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그를 방에 가두고, 당장 살길이 막막하다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곧 가족은 집에 하숙을 놓고, 아버지는 취업에 성공하고, 어머니도 바느질로 가계를 돕고, 여동생도 일자리를 구한다.


마치 그가 없어지자 가족 모두가 정신을 차린 느낌이다.

그는 천천히 말라죽어가고, 마침내 그가 죽자, 가족 모두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지도, 안타까워하지도 않는다.


죽은 것은 그저 벌레이고 자신들의 아들, 오빠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어두운 긴 터널에서 이제 나온 듯, 환호하고, 다시 시작하자는 희망을 가진다.


그가 벌레로 변하고 죽고 나서야, 가족들 모두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 드는 건 그레고르가 이 가족 안에서 이방인이었다는 걸까?


가족 안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 외로운 일이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그의 희생으로 남은 가족 모두 행복을 찾았으니, 그의 이런 희생은 어쩌면 가치 있는 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