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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정, 낭독

by 재인

부쩍 흰머리가 늘고 가끔 열이 오르고 나이가 들고 피해 갈 수 없는 갱년기가 찾아왔다.

그래서 올해는 일을 줄이고,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언제 행복한지, 나란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오랜 시간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니 책이라는 커다란 카테고리가 생겼고 그래서 책과 관련된 일들을 하나하나 용기 내어 도전해보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낭독이다.


나는 처음에는 낭독이란 그저 책을 잘 읽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평소에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으니 별로 어려울 게 없겠다고 생각했고 내 목소리도 좀 괜찮지 않나 했다.

낭독을 배운 지 두 달이 조금 넘어가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생각하면 정말 웃기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


내가 그동안 배우고 그래서 느낀 낭독이란, 책을 그냥 잘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작가의 생각과 의도 그리고 책의 인물들을 이해하고 인물들 간의 균형을 잡고 각 장면의 묘사를 그림이 그려지도록 이해하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잘 들리도록 섬세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음독이란 글을 그저 또박또박 읽는 것이고 낭독이란 글을 전하기 위해 말이 되게 읽는 것인데 나는 그동안 낭독을 음독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문장을 큰 의미로 묶어 끊어 읽기를 하고 수식어를 강조하여 읽고 보조용언(서술어 기능을 하는 동사)은 강조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구경하고 싶다.”라는 말은 “구경하고”를 강조하고 “싶다”는 힘을 빼고 읽는 것이다.


하지만 낭독을 배우면서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이라 생각하는 것은 책을 읽는 새로운 방법을 배운 것이다. 나는 책을 많이 읽으면서도 같은 책을 두 번 이상 읽거나 작가의 의도나 생각을 헤아리며 섬세하게 읽지는 못한 것 같다. 낭독을 잘하려면 책을 잘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니 책을 두 번 이상 읽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고 누구보다 책을 깊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잘 이해가 된 글은 잘 표현할 수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20년 넘게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늘 가르치는 입장이었지 배우는 입장이 아니었다. 내가 아이들과 수업하면서 아이들에게 제일 많이 하는 말이 “괜찮아, 틀려도 돼, 자꾸 틀려야 안 까먹을 수 있어, 우리는 지금 연습 중이잖아. 실전에서 잘하며 돼.”이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문제를 풀어보라고 시키고 창피하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곤 했다. 하지만 내가 배우는 입장이 되고 수업에서 내가 낭독할 차례가 되어 보니, 그렇게 떨릴 수가 없고 혹여 실수라도 할까 너무 걱정되고 더욱 참기 힘든 것은 내가 낭독할 때마다 샘이 지적하시는 점이었다. 나는 물론 샘이 나의 안 좋은 부분을 빨리 고쳐주고 싶으시고 열정이 많으시며, 정말 좋은 샘이라는 걸 안다. 그렇지만 지적을 당하는 것은 너무 창피하고 그래서 ‘오늘은 가지 말까’ 한 적도 있다. 이렇게 내가 배우는 입장이 되어 보니 아이들이 어땠을지 생각도 되고 내가 그동안 했던 말들이 얼마나 모순적이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이제 낭독 수업은 얼마 남지 않았다. 책의 중요한 파트를 다시 복습하고 대화 부분을 더 몰입해서 연습해 보고 마지막 날에는 각자 한 부분씩 나눠서 읽어보는 낭독회를 하기로 했다.


무언가에 열정을 쏟고 열심히 해보고 잘 안되어 속상해하기도 하고 또 너무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런 감정이 얼마만 인지 모르겠다.

요즘 내가 애정을 쏟고 있는 낭독이, 잘 마무리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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