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구에 사진 매체가 가진 기록성과 창조성에 초점을 두고 사진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우리나라 유일의 사진미술관이 개관했다. 요즘 부쩍 사진 찍기에 관심이 많다 보니 지인이 추천해 줘서 가보게 되었다. 원래는 “요시고 사진전”에 가려고 했는데 주말에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얘기를 듣고는 계획을 바꾸게 되었다. 무료 관람이 반가웠으나 큰 기대는 없이 출발했다. 도착한 곳의 외관은 생각보다 멋있었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많아 좀 당황했다. 그것도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1층은 안내와 카페가 있고 전시회는 2. 3층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2층 전시관은 2015~2025 서울 시립 사진미술관 10년의 여정을 보여준다. 서울 시립 사진관은 준비단계부터 개관까지 1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래서 2층 전시관에는 미술관 건축에 사용된 재료들을 추적하고 다시 배치되는 과정을 사진과 설치로 구현했다. 미술관 건립 사진을 3D 방식으로 재구성한 작품도 있었다. 창동을 비롯한 서울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들도 있었는데 과거 사진들에 실제 사연들이 첨부되어 있어서 그런지 뭔가 더 진정성이 느껴졌다.
3층 전시관에서는 “광채: 시작의 시간들”로 한국에서 사진이 예술로 자리 잡아 온 여정을 보여주었다. 1900년대 초~후반의 모습들을 볼 수 있는 흑백의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 당시 서울의 모습들, 아이들의 모습, 거리 풍경들을 볼 수 있었는데 왠지 그 모습들이 정겹고 아득하게 느껴졌다. 나는 1970년대생이니 분명 내 어릴 적 모습들과 비슷한 사진들도 눈에 띄었는데 옆에서 1960년생인 내 남편은 나보다 더 흥분해서 여기 자기 어릴 적 사진과 똑같은 사진이 있다고 했다. 어찌 보면 촌스럽고 부끄럽기까지 한 모습의 사진들이 시간이 지나서 보니 왜 그렇게 사랑스럽게 보이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런 기대 없이 온 사진전에서 남편과 나는 어느 때보다 흥분해서, 사진들을 보면서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진 한번 보고, 서로를 보고 맞아. 이때 이랬어. 이거 소풍 가는 모습인가? 이 사진 우리 엄마 같아. 다 한복 입고 있는데 이분은 신식이네.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많은 사진 중에 내가 가장 마음에 든 사진이 있었다. 계단 양쪽으로 교복을 입고 있는 앳된 얼굴의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대여섯 명의 남학생들이 진지하지만 내가 보이기엔 귀여운 모습으로 급하게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사진이다. 난 사진 속 아이들의 모습이 좋았는데 사진의 제목을 보고는 빵 터졌다. 이 사진의 제목은 바로 “결전의 날”이다. 아이들은 도대체 무얼 하러 가는 걸까? 아이들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흥분하고 결연하기까지 한 모습일까? 어떤 상황에서 이런 사진이 나오게 된 것인지 정말 궁금했다.
사진이 가지는 힘은 순간을 포착해서 추억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하는 게 아닐까 싶다. 혹시 지금 이 아이들이 사진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때 왜 이런 얼굴이었는지 기억이 날까?
가끔 젊은 시절 찍었던 사진들을 보면 그때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내 모습이고, 내 사진이었는데 지금 보면 나 참 젊었구나. 하는 생각에 그때 그 사진 속 내 모습이 예뻐 보인다. 아마 그 시절 내 젊음과 추억 때문이겠지.
그래서 요즘은 되도록 사진을 많이 찍으려고 한다. 지금의 내 모습들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