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동안 배운 낭독의 마지막 수업의 의미로 우리만의 낭독회를 하기로 했다. 그동안 여러 번 보았던 책의 내용 중 각자가 원하는 분량과 파트를 정해 사람들 앞에 서서 낭독하기로 한 것이다. 어젯밤까지 연습하다 늦게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갑자기 아이가 엄마, 코피! 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아이를 진정시키고 코를 막아 주면서도 혹시나 아이가 아파서 학교에 못 가면 어떡하지, 낭독회는 꼭 참석해야 하는데 하는 걱정이 아이보다 앞섰다. 낭독을 배우면서 뜻대로 되지 않는 마음에 나 스스로 느끼는 고비가 많았지만 그래도 유종의 미는 거두고 싶었다. 다행히 아이는 코피가 멎었고 학교에 등교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서둘러 외출준비를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오늘 내가 낭독할 부분의 내용이 떠올렸다. 카페를 대여해서 낭독회를 한다고 하는데 모든 사람들 앞에서 낭독을 해야 한다는 것이 왠지 부담스러웠다.
카페에 도착하니 그래도 석 달 동안 얼굴을 봤다고 낭독회에 모인 사람들이 다 친근하게 느껴졌다. 선생님도 도착하시고 도서관 사서샘이 우리를 위해서 지난번에 찍은 사진을 넣은 현수막도 만들어 주셨다. 카페 분위기도 좋고 한쪽에는 나에게 낭독이란 ooo이다. 를 써 보는 코너도 마련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즐겁고 업된 기분이었는데 샘은 차분히 낭독을 진행했으면 한다고 하셨다. 나는 순서를 정할 때 뒤 차례면 기다리는 게 너무 긴장될 거 같아 네 번째로 낭독을 하기로 했다. 낭독이 시작되고 처음엔 조금 어수선했지만 곧 몰입이 되기 시작했다. 다들 무대 앞에 나오니 떨려했으나 각자 연습해 온 부분을 잘 해낸 것 같았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고, 나는 매번 아이들 앞에 서서 수업하는 사람인데도 이게 뭔지 떨리기 시작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낭독이 시작되었다. 나는 떨렸지만 그래도 연습을 많이 해서인지 별 실수 없이 잘 마칠 수 있었다. 근데 내가 낭독이 끝나자 샘은 많이 웃으셨다. 내가 평소와 다른 톤으로 연기를 하듯 낭독을 한 것을 두고는 애썼다.라고 하시면서 별말은 안 하셨는데 나는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끝냈을 때는 좋았다고 하셨는데 내가 끝냈을 때는 좋았다가 아니라 애썼다니. 이건 무슨 뜻일까? 내가 평소와 달리 톤을 많이 올려서 했는데 그게 별로였을까? 늘 지적받았던 부분을 잘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걸까? 아니 그저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도대체 왜 웃으신 걸까? 설마 비웃음은 아니겠지? 이런저런 생각에 서운한 마음이 가득 차버려 남은 다른 사람들의 낭독은 잘 들리지 않았다. 마지막을 잘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기분이 왜 이리 꿀꿀한지 모르겠다. 열심히 연습했지만 오늘 칭찬을 못 받아서 그런가? 나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지 다른 사람 칭찬이 왜 필요해? 왜 칭찬에 집착하는 거지? 내가 만족하고 즐겼으면 되지 않나 하고 나 자신을 달래기 시작했다.
낭독순서가 모두 끝나고 기념사진까지 찍고 낭독회는 마무리되었다. 시간이 되는 사람들은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했는데 난 내키지 않아 집으로 향했다.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데 누가 옆으로 쓱 오더니 “낭독회 하신 분이죠?” 하면서 말을 건다. 자세히 보니 오늘 같이 낭독회에 계셨던 분이었다. 우리는 가는 방향이 같아 어느새 같이 걸어가게 되었다. 그분은 나에게 아까 낭독 잘 들었다고 하시면서 내가 감정이 풍부한 거 같다. 아까 낭독하실 때 보니 청중을 끄는 카리스마가 있으시다. 목소리가 차분하고 좋다고 하시는 거다. 내가 네? 하고 반문하자 이 책을 원서로도 읽으셨다면서요? 참 대단해요. 영어 잘하는 거 참 부러워요. 하신다. 마치 오늘 내가 낭독샘에게 듣고 싶었던 말을 아는 것처럼 그분은 그렇게 내가 듣고 싶었던 칭찬을 해주셨다. 우리는 한 정거장 거리를 걸으면서 짧은 시간이지만 낭독을 시작한 계기, 그동안 낭독하면서 힘들었던 일 등 비교적 많은 얘기를 나눴고 지하철역에 도착하자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그리고 그분과의 대화로 인해 나의 오늘 찜찜했던 마음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참으로 기이한 경험을 한 기분이었다.
집으로 오면서 생각을 해봤다. 도대체 나는 왜 낭독이 하고 싶은 걸까? 낭독은 배울수록 더 어렵기만 하고 꼭 배워야 할 이유도 없는데. 낭독을 통해서 나를 드러내고 싶은 걸까? 글을 쓰는 것처럼 낭독을 하면서도 나의 어떤 부분이 치유되고 있는 걸까?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내가 납득할 만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왜 낭독이 하고 싶은지 이유를 알 때까지 낭독을 계속해보려고 한다. 낭독을 잘할 수 있는 때가 오면 혹시 알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희망을 가지고 그날이 오기를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