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도서관에서 이 책을 고른 것은 바로 책 표지 때문이었다. 책 표지에는 에곤 쉴레의 자화상이 실려 있다. 에곤 쉴레는 표현주의 선구자로 강렬한 감정표현과 독특한 스타일로 인간의 내면과 감정을 강조했던 화가로 자화상이 유명하다. 왜 이 책의 표지에 에곤 쉴레의 자화상이 있을까 궁금했다.
인간 실격은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그의 이력을 보니 부잣집에서 태어난 점, 공부를 무척 잘했던 점, 여성과 동반자살을 시도해 혼자만 살아남은 점, 약물에 중독되었던 점,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되고 다시 자살을 시도한 점 등이 진짜 주인공 요조와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주인공 요조는 천성적으로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어릴 적 하녀와 머슴에게 범해지는 잔혹한 일을 당하고 인간을 두려워하게 되고 앞에서는 잘 지내다가도 뒤돌아서며 험담하는 인간의 이중성을 이해하기 힘들어하고 스스로 나약한 인간이라 여기고 고독을 택한다. 하지만 요조는 인간사회에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고 그래서 익살꾼이 되기를 자처하지만 친구에게 자신의 내면을 들키고는 다시 인간과의 관계를 두려워한다. 이후 호리키라는 친구와 어울리면서 술, 담배, 매춘, 좌익 사상을 배우고 점차 타락의 길로 빠지는데 그때 만난 한 여성과 동반자살을 하지만 혼자만 살아남는다. 그리고 힘든 요조에게 다가온 요시코라는 여자와 결혼을 하고 잠시나마 행복하게 산다. 그러나 어느 날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고 요조는 두 번째 자살을 시도한다. 다시 살아남은 요조는 술독에 빠지고 그러다가 술을 끊기로 하고 살고자 약을 처방받지만 이번에는 약물중독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 일로 정신병원에 감금당한 요조는 심한 충격을 받고 스스로를 인간 실격이라 여긴다.
요조는 예민한 성정이었지만 부잣집에서 태어나 잘 생겼고 공부도 잘해 좋은 환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릴 적에 잔혹한 일을 당하면서 인간을 이해하기 어려워했고 그럼에도 인간답게 살려고 노력했지만 그때마다 주위 사람들이 요조에게 안 좋은 영향을 주었다. 어릴 적에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요조가 익살꾼으로 가면을 씌우며 살아가는 것을 친구가 모른 척했더라면, 호리카라는 나쁜 친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내의 불륜을 알지 못했다면, 정신병원에 감금당하지 않고 치료를 받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거짓이 난무하고 온갖 부조리와 혼돈이 가득했지만 그는 누구보다 세상에 속하기를 원했는데 세상은 그를 사회 부적응자로 몰아가고 결국 그가 스스로를 인간 실격이라 여겨 세상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너무나 많은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요조도 조금은 이기적으로 많은 가면을 쓰고 살았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때로는 너무 순수하고 곧은 마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는 거 같다.
책을 다 읽고 보니 작품 속 요조와 자신의 모습을 왜곡된 형태로 표현하여 그가 느끼는 불안과 고독을 잘 보여준 책 표지에 실린 에곤 쉴레의 자화상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거 같다.
요조는 인간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낸 자신을 인간 실격이라 여기지만 어쩌면 때에 따라 가면을 바꿔 쓰고 살아가는 우리가 인간 실격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