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숭숭한 하루

by 재인

며칠째 비가 와서 해를 못 봐서인지 일주일에 마지막 날 피로가 쌓이는 금요일이라 그런지 아침부터 몸이 찌뿌둥하다. 할 일이 많아 6시부터 일어났는데도 오전 시간에 한 것이라 곤 전에 예약해 둔 책을 도서관에 가서 대출해 온 것뿐이었다. 어젯밤부터 뭔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제 다 읽은 책 리뷰도 써야 하는데 갈피가 잡히지 않아 다시 읽어 봐야 할 거 같다. 오늘 방학을 하는 아들은 어젯밤 불쑥 오늘 가져가야 한다며 수시 원서를 내민다. 벌써? 수시 원서를 쓴다고? 2학기 때 쓰는 거 아냐? 샘이 일단 써 오래. 아마 담임선생님이 2학기에 실제로 아이들이 어떻게 원서를 쓰려고 하는지 파악하려고 써오라고 한 거 같았다. 아들도 나도 막상 원서를 마주하고 보니 막막했다. 우리는 정시를 목표로 하기로 하긴 했는데 그래도 마음속에 수시도 포기하지 못했나 보다. 아들은 본인 내신 성적으로는 자신이 목표로 하는 대학을 갈 수가 없으니 쓸 대학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안 쓸 수는 없으니 성적에 맞추기보다는 원하는 대학을 쓰겠다고 했다. 나는 그러라고 했다. 그러면서 혹시 정시에서 목표로 하는 대학이 잘 안 되면 어떻게 할 거니 했더니 그럼 재수해야지 한다. 나는 아이들이 재수하는 것에 대해서 그다지 부정적인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 입에서 재수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갑자기 이제 내가 할 일이 없구나 느껴지기도 했다. 이제 네 몫이구나. 그래. 네가 노력해서 원하는 대학에 가든, 잘 안 되어 재수를 하든 엄마는 네가 선택하는 대로 지지할게. 그렇게 아들과 얘기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아직도 마음에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어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학원에서 한 아이와 단어 시험 문제로 실랑이한 것이 떠올랐다. 그 친구는 내가 맡은 지 벌써 두 달이 넘었는데 매번 숙제를 안 해 오는 데다가 단어테스트를 한 번도 통과 못 했던 친구이다. 어떻게 그렇게 단어를 못 외울까 싶어서 단어 외우는 모습을 봤더니 그 친구는 단어를 외우는 게 아니라 답안지를 외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단어를 왜 외워야 하는지, 영어 공부는 왜 중요한지, 하루를 모면하는 공부가 아니라 진심을 다하는 공부가 되어야 한다고, 나이가 들면 쓸데없는 말이 많아지는 게 맞다.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 아이를 두고 이런저런 아이가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할 이야기들을 구구절절이 하고 아이를 돌려보냈다. 차라리 틀린 단어를 몇 번 쓰게 하고 보내는 게 낫지 않았을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이렇게 서투를 수가 있나. 아직도 아이들의 마음을 아는 것은 힘들다.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이 힘든 것일까? 진심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돌아오는 건 외면일 때가 있고 마음을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다가서면 멀어지는 친구들이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일이 힘든 것이 아니라 사람 마음이 힘든 거 같다. 아이나 어른이나 그 마음 얻기가 참 힘든 것 같다. 그래서 그 아이 마음을 얻지 못하고 어설픈 훈계 따위만 실컷 늘어놓았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서 난 온종일 마음이 어지러웠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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