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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안부

by 재인

어릴 적에 통과 의례처럼 겪는 사춘기를 겪지 않거나 제대로 보내지 않으면 성인이 되고 나중에 갱년기에 고생을 한다는 얘기가 있다. 어떤 어른들은 다소 일찍 철든 아이들을 보면 안타까워하신다. 이 두 가지 얘기는 모두 그 나이 때에 겪어야 할 것을 겪고 자신의 감정표현을 제때 할 줄 아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주인공 해미는 어릴 적에 가스 폭발 사고로 하루아침에 언니를 잃는다. 엄마, 아빠 모두 너무 상실감에 빠져 힘들어하시는 것을 보며 해미는 자신의 슬픔까지 드러낼 수 없어 감추게 되고 그때부터 자신의 감정을 숨긴다. 부모님은 자신들의 슬픔을 추스르지 못한 채 따로 떨어져 살기로 하고 해미는 엄마와 동생과 함께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왔다가 의사가 된 이모가 있는 독일로 가게 된다. 새로운 언어와 낯선 환경에서 해미는 불안감을 느끼지만 엄마에게 잘 적응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를 눈치챈 이모는 해미에게 아무리 네가 의젓하고 씩씩한 아이라도 세상에 혼자 감당해야 하는 슬픔 같은 건 없다면서 언제든 힘들면 꼭 이모에게 말해야 한다고 혼자 짊어지려고 하면 안 된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인 파독 간호사를 엄마로 둔 레나와 한수라는 친구를 소개해 준다. 해나는 그들을 만나면서 점차 안정감을 찾게 된다. 독일어도 점차 늘어가고 독일 생활에 즐거움을 느끼는데 어느 날 한수가 엄마가 뇌종양에 걸렸는데 마지막 소원으로 엄마에게 첫사랑을 찾아주고 싶다고 도와달라고 부탁을 해온다. 세 친구는 선자 이모(한수 엄마)의 첫사랑을 찾아 나서는데 한국에 외환위기가 닥치고 해미네 가족은 급박하게 한국으로 귀국하게 된다. 사춘기에 맞이한 다시 새로운 환경, 빡빡한 한국의 교육환경에 해미는 또다시 불안감을 느끼고 그때 한수로부터 엄마가 위독하다고 온 전화에 해미는 자기도 모르게 첫사랑을 찾았다는 거짓말을 하게 되고 선자 이모에게 거짓 편지를 보낸다. 그 일로 해미는 본인이 한 거짓말에 죄책감을 느끼고 그 후로 독일에서 오는 친구들의 연락을 받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 신문사에 다니다 퇴사한 해미는 40대가 되었고 우연히 20대 때 해미와 인연이 엇갈렸지만 해미 곁을 맴돌던 우재와 재회한다. 해미는 우재와의 만남에서 뜻밖에 한수를 보게 되고 본인이 지금까지 끝내지 못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된다. 그날부터 해미는 다시 선자 이모의 첫사랑 찾기를 시작하며 몰랐던 사실들을 깨닫는다. 어린 나이에 언니를 잃고 큰 슬픔으로 상처받고 치유되지 못했던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런 자기 자신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마침내 한 걸음 나아가기로 한다.


어릴 적 세 친구들이 선자 이모의 일기장의 이니셜을 보고 첫사랑을 찾아 나설 때에는 추리소설인가 했다가 우재와의 연예소설 같기도 했다가 해미가 긴 터널에서 걸어 나와 이제 밝은 빛으로 다가가는 걸 보니 성장소설 같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누구에게는 따뜻한 온기를 나눠주고, 누구에게는 말없는 위로를 건네주는 소설 같기도 하다. 선자 이모가 해미가 쓴 가짜 편지에 대한 답장에 쓴 이 말이 얼마나 좋은지 며칠째 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나를 위해 너의 편지를 전해준 아이들의 마음이 나를 며칠 더 살 수 있게 했듯이,)

다정한 마음이 몇 번이고 우리를 구원할 테니까”

나도 오늘은 나의 지인들에게 다정한 마음으로 눈부신 안부를 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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