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안 작가 북 콘서트

by 재인

나는 보통 북 콘서트에 가기 전에 그 작가의 책을 읽고 가는 편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좋아하는 작가의 콘서트에 가기 때문에 책은 다 읽은 상태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처럼 모르는 작가에다가 작품도 읽지 않고 당일에 가게 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아침에 북 콘서트가 있다는 문자를 받았고 마침 오늘 별다른 스케줄도 없어서 가보기로 한 것이다. 모든 것을 계획한 대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무런 정보 없이 움직이는 오늘 같은 날은 나름 모험일 수 있다. 북 콘서트를 하는 장소는 동네에 한 독립서점인데 대표님이 발이 넓으신지 거의 매주마다 북 콘서트를 하신다. 뿐만 아니라 필사 모임, 독서 모임도 여러 개 꾸려가고 계신다. 이곳은 몇 달 전에 우연히 동네 산책 나왔다가 발견한 나에게는 보석 같은 장소이다. 전에 한 출판사 편집장님이 오셔서 하신 글쓰기 특강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글쓰기 특강 수업도 좋았고 같이 수업 듣고 커피 마시며 얘기 나눴던 사람들도 좋았다. 그래서 오늘 번개로 참여했지만 기대감을 가지고 왔다. 서점에 도착해서 대표님과 간단한 근황 토크를 나누고 오늘 콘서트 작가님의 책을 구입해 자리에 앉았다. 앞에 계신 분이 작가분이신 것 같았는데 젊은 여성분이셨다. 나는 아직 책을 읽어 보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책을 가지고 가서 미리 싸인을 부탁드렸다. 다행히 작가님은 오히려 고맙다고 하시면서 정성스러운 글씨로 “빛과 사랑 안에서 안온한 날들 되세요.” 하고 사인을 해주셨다. 싸인 하나로도 참 따뜻한 분이구나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도착하고 시간이 되자 북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사회자가 진행을 맡아 주셨다. 사회자는 책을 읽고 책에 관한 10가지 질문을 가지고 오셨다고 하셨다. 이 책은 작가분이 결혼 1년 6개월 만에 남편이 갑자기 사고로 와상환자(무의식, 침대에 누워서 생활하시는 환자)가 되어 지금까지 3년간 남편을 24시간 돌보며 쓴 이야기이다. 나는 시작 전에 첫 장을 읽어 보았는데 벌써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해서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평소 신지 않던 신발을 신고 나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신발이 뉴스에서 남편의 모습으로 확인하게 될 지표가 될 줄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비보는 소리 없이 오고 있었다.”


고개를 드니 사회자가 물어보는 질문에 작가님은 무덤덤하게 대답을 이어 가고 계셨고 작가님은 여기 오기 전에 혹시 북 콘서트를 하면서 본인이 울게 될까 봐 걱정을 했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동안 너무 많이 울어서 괜찮나 보다 하시면서 웃으셨다. 사회자가 그래도 힘들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제일 도움이 되었냐고 물어보자. 작가님은 별게 없고요. 그냥 실컷 울었어요. 하신다.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울었다고 한다. 쌓아 두지 않고 그때그때 울고 싶으면 울어서 풀었다고 한다. 그래도 울어서 해소가 되었던 거 같다고 하신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 나로서는 가늠이 안 된다. 평소에도 나는 내가 많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기에 누구를 돌본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범주에 없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더욱이 작가님이 병원에서 하시는 오전 5시부터 남편의 세수, 식사, 소화, 재활치료, 목욕, 식사, 석션, 밤새 2시간마다 체위 변경 등 24시간의 일들을 들어 보니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작가님이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이런 육체적인 노동보다 정신적인 공허함이었다고 한다. 나 자신을 잃어가는 것이야 말고 참 힘들고 극복이 안 되더라고. 그래서 그때부터 돌봄을 가족과 나누어 맡아서 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가지게 된 시간에 잠을 자고 체력을 보충하고 운동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그리고 글을 쓰게 되어서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되었다고. 작가님의 직업은 특수학교 교사라고 한다. 현재는 다시 일도 하고 계시고 남편 돌봄은 가족들과 함께 하고 계신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병원에서 가끔 보는 남편이 예전처럼 애절하지도 때로는 밉지도 않다고 하신다. 작가님은 본인에게 일어난 일이 이유가 있을 거라고. 앞으로도 본인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가겠다고 하신다. 아직 40대 초반의 젊은 작가님은 참 단단한 사람 같아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아픈 시간들을 견디었을까 생각하니 또 마음이 아파온다. 주어진 시간이 모두 끝나고 질문 있으시냐고 하자 한 분이 일어나 "혹시 작가님, 안아 드려도 되나요?" 한다. 작가님이 당황하자 사회자님이 그럼요. 끝나고 스페셜 시간으로 드릴게요. 하신다. 그리고 진짜 작가님과 허그시간 드릴게요. 주저하지 말고 나오세요. 나는 쑥스러워서 손만 잡아 드리려고 했는데 어느새 내 한 손은 작가님 등 뒤로 가 토닥거리고 있었다. 모두가 아무 말 없이 작가님과 허그를 했지만 여기 모인 모두가 한마음 아니었을까? 작가님이 우리가 겪는 아픔과 고통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고 했던 것처럼 오늘 이 시간이 작가님에게 작은 위로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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