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나

by 재인

어느 날 길을 걷다 느껴진 향기에 문득 뒤를 돌아본 적이 있다. 예전 남자친구의 향기였다. 그가 아니겠지만 나는 눈으로 그 남자의 뒤를 쫓으며 갑자기 밀려든 생각에 잠겼었다. 정확히는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르며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과거의 나와 마주했었다. 노래도 그런 것 같다. 토요일 오전 우연히 틀은 라디오에서 “The time of my life”란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 노래는 영화 더티 댄싱의 OST 중 한 곡인데 마지막에 주인공들이 멋지게 댄스를 완성할 때 나오는 노래이다. 나는 노래를 듣는 순간 나의 순수했던 고등학교 시절 한 친구 집에 모여 아이들과 같이 더티 댄싱 비디오를 보던 장면으로 돌아갔다. 그 시절 그날의 공기, 그 시간의 분위기가 떠오르며 아이들과 숨죽이며 영화를 보았던 그때로. 거기 그 작은 친구 방에 누가 있었는지, 몇 명이나 있었는지, 영화를 보며 무슨 얘기들이 오고 갔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저 슬로 모션처럼 두 다리를 앞으로 모으고 앉아 무릎 위에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영화에 빠져 있던 내 모습만 보였다. 친구가 빌려왔던 그 비디오는 연체일을 훌쩍 넘겼었는데 우린 그 친구네 집에 모일 때마다 그 비디오를 보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엇 때문에 더티 댄싱 이란 그 비디오를 그렇게 많이 반복해서 보았는지 모르겠다.


더티 댄싱이란 영화는 패트릭 스웨이지와 제니퍼 그레이의 주연으로 19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이다. 아빠처럼 의사를 꿈꾸는 부유한 가정의 17세 소녀 베이비네 가족은 휴양지로 여름휴가를 오게 되고 리조트에서 지내는 동안 그녀는 우연히 직원들의 신나고 열정적인 댄스파티를 보게 된다. 그녀는 직원들이 추는 관능적인 춤에 흥미를 보이고 그 모습들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리조트의 댄스 강사에게 춤을 배워보기로 한다. 마침 댄스 강사의 파트너가 예상치 못한 임신으로 중요한 공연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고 베이비는 그를 도와 파트너가 되기로 한다. 열심히 연습한 베이비는 점점 실력이 향상되고 춤을 배우면서 그녀는 댄스 파트너인 조니와 사랑에 빠진다. 어느덧 베이비는 춤을 추면서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 있던 열정을 발견하고 자신이 속한 상류층의 보수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행복을 찾기로 한다. 마침내 공연 날 베이비와 조니는 두 사람을 방해하는 많은 장애물에도 인상적이고 강렬한 댄스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내가 라디오에서 들은 노래는 바로 이 장면, 마지막 둘의 숨 막히는 댄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이다. 그때 우리는 마치 우리가 그 공연 현장에 있는 사람들처럼 같이 숨을 참고 손에 땀을 쥐며 그 장면을 봤더랬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누구도 말하지 않았었다. 우리는 주인공들의 야하게 느껴지던 관능적인 춤사위가 좋았을까? 아니면 우리와 같은 나이 또래의 소녀가 춤을 배우면서 사랑을 하게 되는 점이 좋았을까? 우리가 느낀 점은 각기 달랐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때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릴 정도로 순수했었던 거 같기는 하다. 나는 그 친구들과 아직까지 연락을 하고 지낸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만나기로 했다. 친구들을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너희들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었냐고, 그때 그 영화가 생각나느냐고, 나처럼 더티 댄싱의 주제곡을 들으면 그때 생각이 떠오르냐고. 왠지 생각만 해도 친구들의 재미있는 대답들이 나올 것만 같아 벌써부터 웃음이 난다.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나의 생물 선생님, 그가 조금이라도 야한 얘기를 하면 깍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더 해달라고 조르던 우리들의 모습도, 붙탄 고구마란 별명의 사회 선생님이 복도에 나타나기만 해도 서로 도망치던 모습도, 벚꽃이 예뻤던 봄의 어느 날 점심시간에 모여 교정에서 사진을 찍으며 깔깔대던 모습들도, 그때의 우리들의 모습들이 물 믿듯이 떠오른다. 우리는 같은 추억을 공유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겠구나. 빨리 그녀들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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