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원 나들이

by 재인

2주 동안 남편을 졸라서 온 곳이었다. 근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한낮이고 더워도 너무 더웠다. 올여름은 역대급 더위라는 등, 저녁에도 25도를 넘는 누적 열대야가 올 7월에 21일을 넘어섰다는 등, 8월은 7월보다 더 더울 거라는 등, 지구는 진짜 해마다 점점 더 더워지고 있고 그나마 올해가 가장 시원한 여름일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말들이 들려오는 여름이었다. 그리고 한낮 기온이 37도에 다다르는 날 나는 식물원에 왔다. 그것도 표를 끊고 식물원 온실관에 들어와 있었다. 온실관 천장은 온통 유리로 되어 있어서 내부 온도는 아마 40도가 넘을 거 같았다. 아니 50도가 넘으려나. 아무튼 온실관에 들어선 순간 사우나 한증막보다 더한 열기가 느껴졌다. 남편은 이런 날 식물원에 오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이게 혹시 벌칙 아니냐고 계속 투덜거렸다. 더울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모른 나도 덥긴 마찬가지고 그래도 내가 우겨서 온 거라 뭐라 할 수도 없고 민망하니 그저 헛웃음만 나왔다. 그래도 놀라운 건 나 같은 사람들이 꽤 많았다는 거다.


내가 이 더위를 뚫고 식물원에 온 이유는 바로 “모네가 사랑하는 식물들”이란 주제로 이벤트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동안 취미로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다니면서 그림을 좀 보았었는데 보다 보니까 내가 인상파 화가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수련 시리즈로 유명한 모네를 좋아한다는 것을. 그래서 언젠가는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 가서 직접 수련 시리즈를 보고 싶다. 암튼 모네가 사랑하는 식물들도 볼 수 있고 모네의 자취를 느껴보고 싶어 오게 된 것이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남편에게 말해주니 그는 또 네가 언제부터 모네를 좋아했냐고 빈정거린다. 그러면서도 둘러보다 거기 서봐, 아니 저쪽으로, 이쪽은 역광이네, 여기 앉아 봐 하고 내 모습들을 사진 찍어준다. 온실관은 마치 열대우림에 와 있는 듯 예쁜 곳들이 많았지만 역시나 더위 때문에 즐기지는 못했다. 간신히 한 바퀴 돌고 어린 왕자의 바오밥 나무까지 보고는 얼른 그곳을 탈출했다. 나처럼 이곳에 온 사람들도 이렇게 더울 줄은 몰랐던 것처럼 온실관에 있는 다양한 식물들을 구경하기보다는 빨리 나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드디어 실내로 돌아오니 좀 살 거 같았다. 더위를 식힐 겸 카페에서 커피 수혈을 하고 나서는 곳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SNS에서 볼 때는 사진 찍을 스폿도 많고 너무 예뻐 보여서 와 보고 싶었던 건데 막상 와 보니 그런 스폿은 몇 군데 없고 행사 자체도 그리 크지 않았다. 역시 SNS만 보고는 믿으면 안 되는 건데.


야외에 주제 정원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물 위에 팔레트란 주제로 모네의 수련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 왔으니 더워도 한 번 가보자 하고 다시 더위와 맞서보았다. 시간이 어느덧 5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한낮의 태양은 꺾일 줄 모르고 당당히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실내에서 땀을 식혔고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마셔줬는데 밖으로 나가자마자 땀이 쏟아졌고 양산 안으로까지 해가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이 정원의 크기가 얼마만큼인지 잘 모르겠지만 다 돌아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되었다. 우린 들어간 지 5분 만에 포기하고 다시 나왔다.


좀 아쉬운 마음에 실내를 다시 들러 보다가 식물 굿즈샵을 구경했다. 지난주에 물을 너무 많이 주었는지 뿌리가 썩은 것 같은 선인장과 몇몇 식물들을 다 처분해서 거실은 조금 휑해 보였다. 식물을 좋아는 하지만 잘 키우지 못해 버릴 때 미안하기도 하고 아깝기도 해서 다시 식물을 들여놓지 말아야지 했지만 막상 이런 초록 초록한 식물들이 잔뜩 있는 곳에 오니 다시 식물이 사고 싶어졌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다양한 크기와 색깔 그리고 갈라진 잎들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몬스테라였다. 귀한 것은 굉장히 비싸다고 하던데. 나도 잘 키워서 식테크를 해볼까. 하는 마음이 살짝 들었다. 다음 본 것은 처음 보는 것 같은 식물인데 이름이 파피루스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종이 대용으로 사용했던 바로 그 파피루스다. 생긴 모양이 대나무처럼 길게 쭉 뻗은 가지 위에 잎은 잔가시처럼 길게 길게 나 있는데 얇은 가시 잎이 바늘처럼 뾰족해 보이지는 않고 부드러워 보였다. 6~10월에는 꽃도 핀다는데 꽃말이 귀족적인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실내 공기정화 효과가 좋고 습도 조절 또한 뛰어나다고 하니까 사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였다. 게다가 키우던 식물들을 다 정리하고 거실 한쪽 면에 세워 둔 노란색 자작나무숲 그림 앞에 놓으면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서둘러 결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땀을 흠뻑 흘렸고 내내 남편의 궁시렁거리는 소리를 들었고 생각보다 부족해 보이는 행사에 살짝 쿵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파피루스를 데리고 집으로 가는 길은 어쩐지 뿌듯하기조차 했다. 마치 너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이번에는 잘 키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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