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내가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가는 곳이다. 꼭 가야지 해서 가는 것은 아니고 해마다 크고 작은 전시회가 있어서 자연스레 가게 되는 곳이다. 바로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이다. 아이가 어릴 때 많이 데리고 다녔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가 더 애정하는 곳이 되었다. 전에는 특별 전시회만 보고 오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상설 전시관도 둘러보고 야외도 산책 겸 거닐어 보곤 한다. 실내에 볼 것도 많지만 야외도 굉장히 넓고 시야가 뻥 뚫려있어 날씨가 좋으면 서울타워도 한눈에 보인다. 박물관에 온 것 중에 아마 오늘이 제일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여름방학 중이라 어린이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성인들이 더 많았다. 그것도 외국인이 정말 많았다. 요즘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장소 중 한 곳이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이라고 한다. 2024년 전 세계 박물관 관람객 순위 8위를 기록한 국립중앙박물관은 2025년 상반기 관람객 수가 전년 동기 대비 64% 증가한 270만 명을 기록하여 용산 이전 개관 이후 20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 중이라고 한다. 이렇게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이유는 아마 방탄소년단 RM이 방문한 사유의 방 때문일 것이다. 나도 오늘은 특별전 관람을 끝내고 상설관 2층에 있는 사유의 방에 가보았다.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조용하게 관람하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너나 할 거 없이 다들 사진을 찍는 통에 그 소음도 만만치가 않았다. 문득 그 와중에 사람들은 왜 이렇게 사진을 찍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이 많은 사람들은 정말 사유의 방에 반가사유상이 보고 싶어서 온 걸까? 아님 요즘 핫한 곳이라고 하니까 사진을 찍으러 온 것일까? 저마다 사진을 찍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내가 온 곳을 기억하고 싶어 찍기도 하고, SNS에 올리기 위해 사진을 찍기도 하고 나처럼 카톡 사진을 바꾸기 위해 찍기도 한다.
그런데 전에 인간이 문자를 발명하고 글을 기록함으로써 인류가 발전했다는 어느 책 내용이 떠올랐다. 우리가 인류 역사를 구분할 때도 문자로 기록되어 문헌상으로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시대를 역사시대라고 한다. 기록한다는 행위는 무언가 후대에 남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진을 찍는 행위도 무언가 기록하고 남기기 위한 인간의 본능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에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밝힌 것처럼 우리는 각자 많은 생각과 선택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우리 인간도 유전자를 복제하기 위한 기계는 아닐까? 그래서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건 아닐는지. 물론 도킨스는 책 말미에 인간의 본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오해되어 인간은 이성과 문화를 통해 유전적 본능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도 오늘은 왠지 우리가 유전자에 의해 지배당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계속 맴돈다.
사유의 방에서 너무 오래 머물렀나 보다.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 나를 지긋이 내려다보는 듯한 부처님은 지금 무슨 사유 중이실까? 언뜻 웃고 계신 것도 같은데. 그 미소가 참으로 우아하다. 나도 본능적으로 사진을 찍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