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둘기가 무서워

by 재인

오늘따라 약속 시간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하지만 여유 있게 도착하리라 생각했던 나의 생각이 비둘기 때문에 꼬이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서 지하철까지 가는 길은 번화가라서 크고 작은 음식점들도 많고 상가들도 많다. 그러다 보니 늘 비둘기들이 거리에 진을 치고 있다. 그래서 비둘기를 마주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은 운이 좋은 편이다. 나는 비둘기를 극도로 두려워한다. 비둘기를 포함한 날개 달린 조류들 모두 무섭다. 보통의 새부터 닭이나 오리까지도. 그나마 참새는 크기가 작아 좀 괜찮지만. 특히나 푸드덕거리는 날갯짓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지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생각만 해도 머리카락이 쭈뼜서고 몸서리치게 싫다.

나 같은 사람들을 보통 조류 공포증이라고 한다. 많은 여성들이 비둘기를 무서워한다고 하지만 나는 만약 방안에 비둘기와 둘이 있다고 상상을 하면 무서운 정도가 아니라 공포스럽기까지 한다. 내가 꾼 꿈 중에 가장 최악인 것은 누군가가 내 방에 몰래 비둘기를 넣어 놔서 비둘기들이 판을 치고 방을 날아다니는 꿈이었다. 나는 거의 기절 직전이었다. 꿈이었지만 생생했고 나는 그 후로도 이런 꿈이 혹 현실이 되지 않을까 불안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래서 비둘기가 길에 있으면 늦더라도 멀리 돌아가거나 비둘기가 날아갈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다. 길에서 비둘기를 힐끗거리며, 대치하고 있는 상황을 누가 보기라도 한다면 그때 내 모습이 얼마나 웃길지 가끔 생각한다.


나는 언제부터 비둘기를 무서워하게 되었을까? 아니 왜 비둘기를 그렇게나 무서워할까? 어떤 이유가 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보통은 이런 공포증이 생기는 원인은 비둘기에게 공격을 당한 안 좋은 기억으로 인한 트라우마적 요인이나 가족 중 공포증 보유자나 불안장애 유전자가 있는 유전적, 환경적 요인이 있다고 한다. 나는 둘 다 해당 사항이 없다. 이유가 없지는 않을 텐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특별한 일은 없다. 혹시 내가 기억을 못 하는 어릴 적 비둘기에게 공격을 당했었나.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비둘기에 대한 공포가 생겼나. 아님 내가 모르는 우리 부모님이 불안장애를 갖고 계셨을까.


며칠 전에 읽은 스콧 스토셀의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라는 책에서 내 공포증의 원인에 대한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불안 유전자 때문에 불안증, 신경중, 그리고 공포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이 모든 증상이 어려서부터 발현이 되었고 그래서 그는 개인 상담 치료, 집단치료, 인지 행동 치료, 약물치료, 자극 감응 노출 치료, 최면 치료, 명상 등 현존하는 거의 모든 치료를 받았지만 드라마틱한 효과는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이런 자신의 병을 알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병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자신이 받았던 치료들을 기반으로 책을 쓰게 되었다.


그는 어릴 때 안정 애착을 이루면 어른이 되었을 때에도 불안 정도가 낮고 건강한 친밀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반면에 양가 애착 관계(불안전 애착)를 가진 아이는 어른이 되어 불안을 더 크게 느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 연구 결과를 보면 내가 안정 애착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내가 생각할 때 나는 불안 정도가 보통 사람들보다 높다고 느낀다. 걱정도 많고 늘 어떤 상황에 대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쓰는 편이다. 그래서 양가 애착 관계일 가능성이 높은데 여기에 정서적으로 늘 부재하는 아버지가 불안을 더 가속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뭔가 들어맞는 것 같다. 나는 부모님과의 관계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좋다고 말할 수도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기억에 나는 부모님이 어려운 존재였던 거 같다. 늘 내 편에 서 주시는 대도 그랬다.

조류 공포증으로 일상생활이 힘들고 심할 경우 공황발작 증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다행히 나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치료 방법을 알아보았다.

치료는 공포의 근원을 분석하고 이완하는 기술훈련과 사진에서 모형, 실제 비둘기로 이어지는 노출 치료, 그리고 불안 완화를 위한 항우울제를 처방하는 약물치료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방법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노출 치료 방법은 너무 끔찍했다. 그럼에도 공포증 치료는 노출 치료를 많이 하고 있고 효과도 꽤 좋다고 한다. 평생을 각종 불안과 공포증을 안고 살고 있는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의 저자인 스콧 스토셀도 구토 공포증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노출 치료를 받았다. 이 치료는 일부러 구토를 유발해서 환자를 간이 떨어질 정도로 겁에 질리게 하여 환자가 그 공포를 이겨 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치료라고 하는데 그는 결국 구토는 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불안감이 더 커졌다고 했다. 사실 이 방법은 잔인하고 지나치다고 느껴지지만 그 치료율이 85%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도 비둘기를 노출하는 것으로 치료를 한다면 아마도 그 증상이 더 심해져서 공황발작이 올지도 모르겠다.

“종의 기원”의 다윈은 4년 9개월 동안의 비글호 항해로 그가 생물학적 연구를 펼치는 데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지만 그의 몸은 심각한 불안증과 구토 공포증을 앓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온갖 어려움에도 책을 출간했다. 작가이자 시인인 새뮤얼 존슨은 신경계통 질환을 앓았는데 우울한 지성인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그는 병적 우울에서 벗어나 정신을 온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게으름과 나태가 불안과 광기의 온상이라는 생각에 매달렸고 꾸준히 일하고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는 등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싸우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소설 “라셀라스”, 시 “인간 소망의 헛됨”을 포함한 뛰어난 작품들을 남겼다. 이 외에도 자신의 병을 극복하고 좋은 작품들은 남긴 작가나 예술가 들은 많다.

병을 극복하려고 노력해야 할까? 아니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열심히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저 비둘기는 열심히 피해 다니고, 길에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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