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선생님”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목소리로 힘껏 선생님을 불렀다. 아니 그렇게 큰 소리는 아니었을 거다. 그 당시 나는 6학년이었는데 몸짓도 작고 수줍음이 아주 많은 초등학생이었으니까. 그렇게 몇 번 선생님을 부르다 운 좋게 선생님이 대문을 열어 주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내 목소리는 선생님에게 닿지 못하고 대문 앞에서 30분 정도 서성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태반이었다.
그때 나는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어린 학생이었는데 영재다. 재능 있다.라는 소리는 듣지 못했어도 피아노를 너무 사랑하고 아니 어릴 적엔 피아노밖에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피아노에 푹 빠져 살던 아이였다.
당시에는 부산대 피아노과 교수님께 레슨을 받고 있었는데 레슨은 일주일에 한 번 선생님 집에서 이루어졌다. 선생님 집은 대문에서 안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좁은 긴 마당으로 기억자로 꺾여 있었다. 지금도 가끔 선생님 댁 대문 앞이 생각이 난다. 그러면 그곳에서 선생님을 부르다 한참을 서성이곤 했던 내 모습도 같이 떠오른다.
그런데 선생님 집 대문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선생님만 불렀던 이유는 바로 새 때문이었다. 선생님 집 마당에는 항상 고양이와 새가 있었다. 나는 어릴 때 동물을 무서워하는 편이었다. 강아지나 고양이 그리고 날개 달린 새는 더욱 무서워했다. 그래서 어찌해서 고양이를 지나쳐 마당으로 들어섰다 해도 집 안채 처마에 앉아 있는 새는 도저히 혼자 지나갈 수가 없었다. 그러면 다시 대문으로 돌아 나와서 열심히 선생님을 불렀던 거다. 하지만 대문에서 안채는 너무 멀었고 당연히 내 작은 목소리는 선생님에게 들리지 않았다. 그때는 선생님에게 새가 무서워서 집으로 혼자 들어갈 수 없다는 말도 못 할 정도로 소심했다. 레슨을 못 받고 집으로 되돌아가면 엄마한테 혼이 날것이 뻔했는대도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리고 엄마한테도 새 때문에 선생님 집에 못 들어갔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중학교에 가게 되면서 내 피아노 레슨은 끝이 났다. 나는 어렸지만 피아노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과 진짜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라고 인지했던 것 같다. 앞으로 피아노를 전공하려면 넘어야 할 산들에 대해 어렴풋이 알았고, 그건 너무 힘들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 또한 했던 거 같다. 그럼에도 내 유년 시절의 모든 것이었던 피아노를 손에서 놓는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누가 하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나는 스스로 내 재능 없음을 알아본 것일까?
어린 시절의 한 부분을 차지하던 나의 피아노를 엄마가 이사하시면서 처분하시게 되었다. 결혼하고도 친정에 가면 피아노를 깨끗이 닦고 피아노 소리가 괜찮은지, 조율이 필요한지 꼭 확인했었다. 그리고는 피아노 의자 속에 있던 악보들을 꺼내 받침대에 올려놓고 하농부터 소곡집까지 차례대로 피아노를 치곤 했었다. 물론 손가락은 예전 같지 않았지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내 세계로 빠지는 혼자만의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젠 그마저도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오늘은 유난히 피아노 소리가 그립다.
피아노 의자에 앉아 하농으로 손가락을 풀고 체르니를 치던 내 모습이 그리운 건지.
요즘 즐겨 듣는 손열음 피아니스트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를 들으며 마음을 달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