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남은 건 시험관 시술뿐입니다.” 내 앞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 순간 나는 그 말이 마치 나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자로서의 너는 끝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앞이 깜깜하고 숨이 막혔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마음의 준비가 되면 다시 오라고 하셨다.
그날 그 방의 온도와 습도 그리고 말없이 남편과 집으로 돌아올 때 그 숨 막히던 자동차 안의 분위기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이 난다.
우리 부부는 3년째 난임부부였다. 솔직히 결혼해서 바로 아기를 가지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바로 아기가 생기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다. 살면서 앞일을 예상할 수는 없지만 아기가 생기지 않을 줄은 정말 몰랐다. 결혼하고 처음 1년이 지났을 때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기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을 때는 3년이 지나 있었다. 산부인과에서 기본 검사를 하고 본격적인 임신하기에 돌입했다. 병원에서 내린 첫 번째 처방은 날짜와 시간이 적힌 합방 쪽지였다. 부끄럽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해서 아기를 가져야 할까. 아니 이렇게 아기를 가지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정해준 날짜와 시간에 맞춰하고 다시 병원에 가서 확인하는 일을 석 달 정도 했다. 병원에서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선생님이 다음 순서는 여자 나팔관 조영술이라고 하셨다. 나팔관 검사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난임 여성 사이에서 엄청 아픈 검사라고 올라온 글이 많아서 겁이 많은 나는 이 검사만은 하지 않기를 바랐었다. 하지만 피해 갈 수 없는 일이었다. 나팔관은 난소에서 배란된 난자가 자궁으로 이동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데 나팔관이 막히면 정자와 난자가 만나기 어렵고 임신 확률이 확 떨어진다. 나팔관 조영술은 이 나팔관이 막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검사이다. 검사를 하기로 한 나는 너무 긴장해서 점심도 걸렀다. 검사 전에 병원에서 미리 진통제를 먹으라고 주셨다. 얼마나 아프면 진통제를 줄까. 나는 더 긴장이 되었다. 검사는 마치 커다란 복사기에 누워 사진을 찍는 거 같았다. 떨리고 아플까 하는 걱정에 창피함마저 들지 않았다. 산부인과에 다니고부터는 이런 부끄러움은 언제나 감수해야 했다. 생각보다 검사가 빨리 끝났다. 너무 긴장을 해서 아픈 줄 모르고 끝이 났다. 결과도 걱정되었지만 일단은 한 고비 또 넘긴 것 같았다.
주위에서 난임이라고 하면 아기를 가진 엄마들은 저마다 다 한 마디씩을 한다. 자신만의 비법이라며 방법을 서슴없이 알려주기도 하고. 누가 여기서 한약을 먹고 아기를 가졌다며 소개를 해주기도 했다. 나는 병원에 다니는 사이에도 임신에 도움이 된다는 한약을 꾸준히 먹었고 그 한방 병원에서 하는 요가 수업도 빠짐없이 다녔다. 조선시대에나 있을법한 달의 정기를 마시는 기도도 해보고, 엄마는 어디선가 아들 셋 낳으신 분의 속옷이라며 구해다 주기도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걸 믿었다고라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그만큼 간절했었다.
이런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기가 생기지 않았다. 결혼한 지 5년이 되었을 때 우리는 마지막 보루인 시험관 시술을 하기로 했다.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나와서 대기실을 보니 나 같은 난임부부가 꽤 많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시험관 시술을 하기로 결정하고 찾은 병원은 우리나라에서 시험관 시술만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듯이 앉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은 마음인 것 같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그 마음.
“어머니 피검사 수치가 300이 넘어요.” 간호사 선생님이 전화로 알려주셨다. 네? 그럼 어떻게 된 거죠? 시험관 시술을 하고 일주일 뒤에 피검사를 하는데 수치가 100이 넘어야 임신일 확률이 높다고 했다. 근데 난데없이 수치가 300이 넘는다고 하자 나는 겁이 덜컹 났다. 뭐가 잘못된 것인가 하고. 간호사는 별다른 얘기 없이 내일 병원에 와서 다시 피검사를 하고 선생님께 진료받으라고 했다. 나는 내일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시술을 하고 기다리던 일주일보다 그 순간이 더 초조했다. 얼른 약국에 가서 임태기를 사 왔다. 분명 두 즐이 임신이라고 했는데 나는 한 줄밖에 나오지 않았다. 임태기가 불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하고 너무 애가 탔다. 이번이 시험관 시술 두 번째이다. 첫 번째를 실패하고 거의 일 년을 쉬면서 몸을 건강하게 만들었다. 첫 번째 시술을 실패하고 나서 영영 아기를 못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입양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양가 어른들이 아직 젊으니 두 번만 더 해 보고 안 되면 둘이 살던, 입양을 하던 하라고 하셨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날이 밝자마자 병원으로 갔다. 피검사를 하고 다시 초조하게 기다리는 시간, 일 분이 일 년처럼 느껴지던 그때 선생님이 임신이 된 거 같다고 하셨다. 그것도 아기집이 세 개나 보인다고. 이건 또 예상에 없던 거라 걱정이 앞섰다. 세 쌍둥이라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변수였다. 아니 시험관 시술로 쌍둥이를 많이 낳곤 하는데 나는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안타깝게 두 개의 아기집이 자연유산이 되었지만 나는 남은 아기를 잘 지켜내어 건강한 아들을 출산했다. 그리고 그 아들이 올해 고3이 되었다. 그는 이제 세상에 나가기 위한 첫 도전을 눈앞에 두고 있고 진짜 얼마 후면 성인이 된다. 요즘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버티고 있는 아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가끔 저 아이가 어떻게 세상에 나왔는지 생각하면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물론 그가 건강하고 무탈하게 잘 자라줘서 고맙지만 오늘은 그를 만나기 위해 이만큼 고생하고 길러 낸 나 자신에게 애정 어린 칭찬을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