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의 첫 기억

by 재인

홍콩에 처음 갈 때는 5월이었다. 잠이 안 오는 어느 날 밤 홈쇼핑을 보다가 충동적으로 예약한 여행이었다. 언제고 취소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예약을 하고도 잊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 주말 체험수업이 끝나고 같이 온 엄마들과 밥을 먹던 중에 우연히 나와 같은 여행을 예약한 엄마가 있었다. 갑자기 그 엄마는 안 그래도 아들과 둘이 가려고 예약을 했지만 아무래도 가족이 아닌 아들과 둘만 가는 여행이 걱정이 되어 취소할까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니랑 같이 가면 나 갈 수 있을 거 같아요. 했다. (내가 그 엄마보다 4-5살 정도 많았던 거 같다.) 그 엄마는 엄마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고 가끔은 말을 옮기기도 해서 나는 그 엄마와의 여행이 탐탁지 않았다. 그녀는 나와의 우연을 너무 반가워했고 같이 가기로 오래전부터 약속이라도 한 듯 들떠 있어서 생각해 볼게 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그렇게 그녀의 흥분에 못 이겨 남은 여행 잔금을 입금하고 각자 6학년 되는 아들들을 데리고 홍콩에 가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주자고 하면서.


나는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의 첫 풍경을 꽤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도착했을 때의 공항의 냄새, 기온과 습도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 등을 보며 며칠간의 여행이 어떨지 생각해 보곤 한다.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의 첫 느낌은 공항 내부인데도 무척 덥고 습하다는 거였다. 입국 심사 줄은 너무 길어 시간이 가도 줄지가 않았다. 비행시간에 비해 공항에서 빠져나가는 시간이 너무 길다 보니 벌써 지치는 기분이었다. 이것이 홍콩에서의 여행이 쉽지 않겠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드디어 공항에서 탈출했다 생각할 때쯤 내리쬐는 태양과 숨 막힐 정도로 습한 공기가 나를 덮쳐왔다. 오전에 도착했기에 도착하자마자 저녁까지 쭉 이어지는 코스들이 무슨 극기 훈련처럼 느껴졌다. 다행히 아이들은 둘의 여행에 신나 보였고 잘 따라다녔다. 아마 나랑 둘의 여행이었다면 아들은 벌써 입이 나오고 툴툴거렸겠지만. 그런 걸 보니 여행 오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홍콩섬에서 몇 군데 관광지를 돌고 센트럴 소호에서 멈춘 가이드가 이곳에서는 에그타르트를 꼭 먹어봐야 한다고 했다. 날은 덥고 아무 생각 없이 따라다니다 맛본 갓 나온 따끈한 에그타르트는 너무 황홀한 맛이었다. 바삭한 겉 질감과 노오란 달걀노른자가 조화롭고 부드럽게 한 입에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이어서 마신 묵직한 바디감과 찻 잎의 향기가 은근하게 풍겨오는 달지 않은 진한 아이스티 한잔은 잊을 수 없는 조합이었다. 그날 홍콩에 도착한 이래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기분이 좋아져서일까. 이후 일정은 즐겁기까지 했다. 그 유명한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에서 아이들과 사진도 많이 찍고 기념품도 샀다.

우리는 3박 4일 일정에 하루 자유시간이 있었는데 여행 오기 전 계획하기로는 아이들과 디즈니랜드에 가기로 했었다. 그런데 35도가 넘는 온도와 습한 공기 때문에 도저히 디즈니랜드에 갈 수 없을 거 같았다. 그녀와 나는 아이들을 설득해서 그냥 호텔 수영장에서 놀면서 음식을 시켜 먹자고 했다. 둘이 여행을 한다는 것 자체가 좋았을까. 아이들은 좋다고 했고 혹시 몰라 챙겨 온 수영복은 그 쓸모를 다하게 되었다. 거의 텅 빈 수영장에서 전세 낸 것처럼 아이들과 실컷 놀고 피자와 치킨을 시켜 먹고 잘 익은 망고도 까 먹고 우리는 발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멋진 풍경, 우리나라와는 다른 모습들을 보고자 해외로 여행을 왔건만 정작 호텔에서의 하루가 제일 즐겁게 느껴졌다. 이럴 거면 그냥 호캉스를 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름조차 생각나지 않는 사원들, 긴 줄을 한참이나 섰다가 빅토리아 피크 트램을 타고 도착해 많은 인파를 뚫고 보았던 형형색색으로 반짝거리고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홍콩의 야경, 영화 주인공과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었던 미드 레벨 엘리베이터, 쿠키를 좋아하는 내가 환장해서 잔뜩 샀던 제니 쿠키, 편의점에서 발견한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진주 팩과 달리 치약, 쾌적했던 호텔 수영장, 어린아이 얼굴만한 커다란 망고 그리고 피곤을 싹 풀어주어 모두가 숙면을 하게 만들었던 발 마사지까지 홍콩에서 더웠던 기억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나쁜 기억은 사라지고 좋은 추억만 남아있다. 아들은 친구와 함께 했던 그 홍콩 여행을 아직도 얘기한다. 그리고 그때는 몇 년 후에 내가 다시 홍콩에 오게 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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