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by 재인

나는 아침마다 몸무게를 잰다. 그날 몸무게에 따라 내 하루 기분이 정해진다. 당연히 몇 그램이라도 빠진 날은 기분이 좋고 몇 그램이라도 더 찐 날은 기분이 좋지 않다. 나는 평생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삶의 많은 부분을 내려놓고 받아 들었지만 몸무게만큼은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아니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집착일까? 나는 몸무게가 늘어서 좋지 않은 각종 성인병을 들먹이며 나를 합리화한다. 살이 쪄서 좋을 일은 없다고.

어렸을 때는 키도 작고 조금 마른 편이었다. 중학생이 되고 부쩍 키가 많이 자랐다. 고등학생이 되고서는 중학교 친구들이 못 알아볼 정도로 몸무게가 늘었다. 갑작스럽게 큰 키와 체중이 나는 잘 적응되질 않았다. 나는 내가 마음속으로 아직 작다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엄마와 옷 가게에 갔을 때다. 나는 의식 없이 작은 사이즈 옷을 만지작거렸고 그때 엄마가 내 손을 민망할 정도로 짝 치시면서 “넌 이제 그런 옷 안 맞아.” 하시는 거다. 나는 창피하고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음에 눈에 들어온 옷은 약간 공주풍 원피스였는데 초등학교 때는 즐겨 입던 종류의 옷이었다. 엄마는 이번에는 큰 소리로 “넌 이제 이런 옷은 안 어울린다고” 하시는 거다. 아주 옛날 일인데도 이렇게 기억이 나는 것은 그때 일이 내게 무척이나 서운했었나 보다. 아마 엄마는 기억도 못 하실 거다. 그때 나는 엄마가 조용히 말해줬으면, 아니 슬쩍 다른 옷이 더 예쁘다고 권해줬으면 어땠을까 한다. 그게 내가 바라는 엄마의 모습이었지도 모른다.

대학에 가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나의 다이어트는 계속되었다. 열심히 살을 빼고 나면 어느새 다시 찌고, 빼고 찌는 그런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지금까지 쭉 조금은 마른 몸매로 사는 우리 남편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른 사람은 싫다면서 내가 다이어트하는 것을 반대한다. 예전에 젊었을 때는 그래도 그런 말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사람들은 살이 찐 사람들을 보면 평소에 게으를 것 같고 음식도 무척이나 게걸스럽게 먹을 것 같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얘기는 편견일 뿐이다. 살이 찐 것과 게으른 것은 별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날씬한 사람을 좋아할까?

빌 설리번의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에 보면 그는 유전자로 사람의 식습관에서 연애하는 방식, 공포를 느끼는 이유, 우울한 이유, 중독에 빠지는 이유, 하물며 정치 성향까지 많은 것들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의 행동양식 대부분은 유전자에 기인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살이 찌는 것도, 다이어트에 성공하지 못하는 것도 모두 유전자 때문인가?

우리가 초콜릿 같은 달달한 간식에 사족을 못쓰는 이유는 GLUT2 유전자가 결여되어서이고 몸에 안 좋은 정크 푸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태어나기 전부터 DNA 속에 프로그래밍되어서란다. 우리가 치즈케이크 같은 고칼로리 음식을 먹으면 포만감을 넘어 오르가슴에 가까운 쾌락을 주고 DNA는 우리가 고칼로리 음식을 아주 맛있다고 느끼게 한다고 한다.

그는 식사를 한 후에 찾아오는 만족스러운 기분은 지방세포에서 분비하는 랩틴이라는 포만 호르몬 때문인데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으면 식욕 조절이 안되고 아무리 먹어도 포만감을 느끼지 못해 비만이 된다고 한다. 또는 랩틴 호르몬이 결핍되어 있는 경우나 뇌에 랩틴의 효과에 내성이 생겨서 더 이상 적절히 반응하지 않을 때에도 비만이 된다고 한다. 나는 이 중 어디에 해당이 되는 걸까?

그는 식욕은 자신의 통제력을 벗어난 부분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자제력의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소한 습관부터 그 사람만의 루틴이나 행동들이 모두 유전자로 설명 가능하다는 것은 너무 놀랍지만 한편으론 참 씁쓸한 생각도 든다. 그러면 인간이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것 같지만 결국은 유전자의 의도대로 산다는 것 아닌가? 그래서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인 유전자라고 한 걸까?

이제 나는 내가 고칼로리 음식을 갈망하는 이유도, 커피 없이 못 사는 이유도, 남보다 술에 더 취하는 이유도 알았다. 이대로 유전자의 의도대로 살 것인가?

빌은 책의 마지막 장에서 인간이 나만 중시하는 원초적인 욕구에 저항함으로써 이기적인 유전자를 극복하고 타고난 본성이 아닌 학습한 본성에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다이어트는 매번 어렵고 식욕을 참다 보니 없던 식탐이 생기고 다이어트를 그만두는 순간 어김없이 요요가 찾아온다. 지금은 다이어트 휴지기 상태라 몸이 다시 원래 형태로 돌아왔다. 다시 쪘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제 섣불리 음식을 제한하는 다이어트는 안 하려고 한다. 몇 달의 노력이 2~3일 후면 돌아오는 이런 반복적인 상황도 지겹고 까짓 2. 3kg가 무슨 대수야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좀 편히 지내보려고 한다. 그러나 유전자의 의도대로 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 의지대로 내 몸을 관찰하고 내 방식대로 내가 학습해 온 것들을 따르는 삶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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