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는 엄마는 롱스커트를 즐겨 입는 우아하고 부드러운 엄마였다. 항상 나긋하게 말하고 친구처럼 모든 걸 얘기할 수 있는 엄마, 잘못한 일이 있어도 화내기보다 다정하게 타이르는 그런 엄마, 물론 나도 엄마가 되고 보니 안다. 그런 엄마는 없다는 것을.
어릴 적에는 그런 엄마를 바라며 내가 마치 소공녀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나중에 진짜 엄마가 데리러 온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면 또 신기하게도 하기 싫었던 공부도 하게 되고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다.
우리 엄마는 자주 아프고 화가 나 있는 적이 많았다. 어렵고 무서워서 가까이 다가가기도 힘들었다. 그렇다고 아빠가 다정한 편도 아니었다. 아빠는 가정에도 관심이 없고 자식들에게도 애정이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부잣집 큰아들로 태어나 어려움 없이 학교에 다니고 직장을 얻고 부모가 정해주는 여자와 결혼을 한 사람이다. 젊었을 때는 그 시절 돈 있는 남자가 흔히 하듯 노름도 하고 여자도 있었던 것 같다.
23살 어린 나이에 시집온 엄마는 층층시하, 시할머니, 시어머니, 시아버지, 많은 고모, 삼촌들을 거느린 대가족을 위해 밥을 하고 빨래하고 하루 종일 허리 한번 펼 수 없었던 그 고된 일을 혼자 했다. 하지만 엄마가 더 힘들었던 것은 아마 아빠의 무관심이었을 거다. 그게 아빠로서는 배려라고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엄마는 꽤 서운했을 것 같다. 엄마가 쉴 수 있었던 공간은 오로지 화장실이었다고 한다. 그때 당시의 화장실은 집 밖에 마련된 재래식이었다. 그 냄새 나는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있었을 20대 젊은 엄마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내가 기억하는 친할머니는 내 생일 때마다 카스텔라로 경단을 만들어 주시던 다정한 할머니인데 엄마에게는 왜 그렇게 모질게 하셨을까. 집에서 같이 살았던 고모는 3명이었는데 그 중 첫째 고모에게는 피아노를 배우고 용돈이나 선물도 가장 많이 받았고 둘째 고모랑은 고모가 내 간식을 뺏어 먹어서 자주 싸우고 했던 기억이 난다. 막내 고모에게는 공부도 배우고 고모가 대학 때 지방으로 내려가 떨어져 있게 되면 편지를 많이 주고서 받았다. 대학생이 초등학생 조카랑 편지를 주고서 받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그 당시 막내 고모는 내게 멘토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원수나 다름없는 고모들이었다.
수업이 없는 날에는 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보낸다. 중간에 아이 밥도 챙겨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수업하러 나가는 날보다 집에 있는 날이 더 바쁘기도 하다.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좀 더 편해질 거 같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더 많아질 거라고 기대한다.
나와 달리 엄마는 당신에게 주어진 많은 시간을 버거워한다. 하는 일은 없고 잠은 점점 짧아지니 하루 24시간이 너무 길게만 느껴지는 거다. 어느 날은 어떻게 전화 한번을 안 하냐고 버럭 화를 내기도 하고 어느 날은 자식 키워봐야 다 소용없다고 하소연한다. 자식은 세 명인데 왜 늘 나에게만 이러는 건지.
그런 엄마를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럴지 싶었다. 책 한 권만 있어도 하루가 행복한데 엄마는 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지 않을까. 나는 나중에 아이에게 짐이 되는 부모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수업을 대폭 줄이니 지출은 같은데 수입은 줄고 당연히 쪼들린다. 혹시 돈 나올 구멍이 있나 각종 보험 만기 날짜를 확인해 보고 적금을 깰지 생각도 해본다. 마침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 엄마는 내가 요즘 힘들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래서 가끔 용돈을 주신다. 이 나이에 엄마에게서 받는 용돈은 마음이 참 무겁다. 엄마는 내일 용돈 보내 줄 테니 마음 끓이지 말고 사고 싶은 거 있으면 사라고 하신다. 너는 나 닮아서 사고 싶은 거 있으면 사야지, 안 그럼 병 나. 하신다. 안 그래도 며칠 마음을 졸였더니 약을 먹어도 편두통이 낫질 않는다. 엄마는 꼭 나를 보고 있었던 것처럼 말한다. 갑자기 눈이 흐려지더니 눈물이 맺힌다. 고마운데 엄마한테 고맙다는 얘기도 못 했다.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내가 엄마를 그동안 많이 오해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다정한 엄마가 되고 싶었을지도 모르는데. 엄마도 우아하게 살고 싶었을 텐데. 엄마에게 주어진 무겁고 고된 삶이 엄마를 독하게 만들고 더 강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또다시 울컥한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는 일이 젊었을 때는 어렵고 또 받아들인다 해도 묵묵히 살아가기는 어려운 일 같다. 엄마는 어떻게 자기 삶을 받아들이고 살게 되었을까?
무엇이 엄마를 계속 인내하고 살게 했을까? 결국 자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제야 엄마 마음이 어렴풋이 이해된다. 엄마가 넘었을 수많은 고비에 대해서, 엄마가 겪어야 했을 많은 아픔에 대해서.
나는 이제 엄마 삶을 응원하기로 한다.
그리고 엄마에게 남은 삶은 무탈하고 편안한 나날이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