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기억

by 재인

내가 그녀를 처음 본 것은 대학교 4학년 한 학기만을 남겨놓은 여름방학 때였다. 여름방학 때부터 한 일 년 동안이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나답지 않은, 누가 들으면 너 맞아? 하고 되물을 그런 시기였다.


그 해 여름방학에 나는 그 당시에는 군청이었던 그곳에서 아르바이트하게 되었다. 대학 생활 내내 방학 때마다 놀고먹기만 하는 내가 답답한지 아빠가 군청에 넣어 주신 거였다. 나는 지적과 라는 곳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지적과는 토지, 건물 등 부동산 관련 기록을 관리하고 지적 측량 및 토지 이용 정책을 지원하는 행정 부서이다. 나는 지적과 중에서도 민원실에서 일했기 때문에 주로 토지나 건물을 알아보기 위해 토지대장이나 건축물대장을 민원 들에 열람시켜 주거나 발급해 주는 일을 했었다.


오전 9시가 시작되자마자 민원들이 끝도 없이 밀려 들어왔기에 일은 정말 신속하고 정확하게 해야 했다. 토지대장은 주로 B3, B4 사이즈로 커서 민원이 원하는 부분을 빨리 찾아 필요한 부분만을 A4로 사이즈로 복사해야만 한다. 민원실에는 나와 같이 일하던 또래 친구들이 서너 명 있었는데 각자 잘하는 파트가 있었다. 토지대장을 지번을 보고 누구보다 빨리 찾아내는 A, 필요한 부분만을 깔끔하게 복사를 아주 잘하던 B, 복사한 토지대장을 민원실로 재빨리 옮겨주던 날다람쥐 C, 그리고 민원인에게 토지대장을 설명해 주고 전달해 주는 일을 했던 바로 내 친구 D. 그리고 복사하고 남은 토지대장을 다시 제자리에 정리하는 일을 맡은 나까지 모두 다섯 명은 환상의 콤비였다.


민원실에 토지대장을 떼러 오는 사람들은 주로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이었는데 미정이는 이 어르신들 눈높이에 맞춰 설명도 잘하고 너스레도 잘 떨어 민원실의 마스코트라고 불렀다. 가끔은 본인이 실수해 놓고도 큰소리로 윽박지르거나 민원 서비스가 엉망이라거나 하면서 말도 안 되는 떼를 쓰는 어른들이 있었는데 그때도 미정이는 어찌나 어른들 비위를 잘 맞추는지 우리 계장님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아무튼 누가 하나 일을 못 하는 친구가 없었고 각자 맡은 일을 잘 해냈기에 다른 부서장들은 은근히 우리 계장님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만난 D와 나는 서로를 알아보았는지 며칠 만에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리고 늘 단짝 친구에 목말라했던 내게 D는 진짜 단짝 친구가 되어 주었다. 쉬는 날 D와 늘 가는 곳이 있었다. 바로 클럽이었다. 토요일 오후 D와 쇼핑을 하고, 쇼핑한 옷으로 한껏 치장하고 클럽에 갔다. 클럽에서 흘러나오는 귀가 울리는 듯한 쾅쾅대는 음악 소리가 좋았고 무엇보다 춤이 좋았다. 몸치인 나였지만 그때는 D랑 자주 다니고 D에게 가끔 코치를 받아서인지 좀 봐줄 만했다. 그리고 가끔은 남자에게 춤 잘 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진짜다) 우리는 부킹은 하지 않았는데 그때 서로 만나는 남자친구가 있어서였다. 가끔은 카페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D는 소위 골초였는데 그때는 그게 왜 그리 멋있어 보였는지. 나는 담배를 배우려고 해도 안 되어 속상하기도 했다.


D는 어른들이 볼 때 좋은 영향을 주는 친구는 아니었다. 아니 대놓고 노는 친구라고 할 수 있었다. 할 수 있는 일탈이란 일탈은 모두 하는 그런 친구. D의 부모님은 D를 아주 애지중지하셨다. 늦둥이 외동딸인 D를 키우면서 많이 예뻐하셨다. D가 부모님께 반항하고 일탈하게 된 것은 그녀가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이다. 나는 어렸지만 나름대로 그녀를 이해했고 그래서 그녀의 일탈에 동참하곤 했다. 그녀와 같이 쇼핑하고 (그때는 정상적인 옷은 사지 않았다) 클럽에 가고 술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남자와 잠자리는 하지 않았다. 물론 그녀는 아니다. 아마 그건 그녀가 순진하기만 했던 나에 대한 배려였을지도 모른다.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그렇게 여름이 지나고 가을, 겨울까지 정신없이 놀며 보냈다.


그리고 어느새 졸업하게 되었다. 대학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어울리게 되면서 D와는 조금씩 멀어졌다. 대학 친구들과 취업 걱정을 하며 현실을 인정하게 되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 우리는 만나지 않게 되었고 그렇게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나중에 D가 그 남자친구와 결혼했다는 얘기를 들었고 아들을 낳았다는 얘기가 마지막 소식이었다.


가끔 그때를 돌이켜보면 마치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정말 내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 이후로 다시 단짝 친구가 없다. 나는 D와 둘만이라는 감정이 좋았던 것 같다. 서로의 남자친구보다도 더 자주 만나던 사이, 짧은 기간이었지만 모든 걸 공유했던 사이, 어쩌면 내가 D를 밀어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D를 밀어내지 않았으면 지금 우리는 계속 만나고 있을까? 그때 우리 환상의 콤비들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지내고 있을까?

유난히 예쁘고 고왔던, 첫 미팅에서 만난 남자와 잘 되어 결혼까지 한다고 했던 A는 지금 잘 살고 있을까? 수원으로 이사 간다고 한 것 같은데. 공무원 시험 준비를 계속한다고 했던 모델처럼 크고 늘씬했던 동생 B는 공무원이 되었을까? 모델이 되었을까?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은 밤이다. 이십 년도 훌쩍 지난 시절이 갑작스레 생각나는 건 아마도 가을이 오고 있어서일까.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녀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그녀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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