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렸을 때 서대문 형무소에 가본 적이 있다. 그날은 8.15 광복절 날이었고 아이에게 그 당시 우리나라가 처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간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막상 입구에서 들어가지 못했다. 고문받는 장면이라든지 옥사 안에서의 사람들의 모습들이 생각보다 너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었고 실제 교도소로 쓰였던 곳이라는 점이 분위기도 무겁고 좀 무섭기도 했다. 가끔 독립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정말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떤 점이 그분들을 이끌었고 고문을 받으면서도 어떻게 그 고통을 견디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감히 짐작할 수는 없지만 아마 우리나라의 독립을 향한 신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신념이란 사전적 의미로 굳게 믿는 마음이란 뜻이다. 믿음이란 어떠한 가치관, 사람, 사실들에 대해 다른 사람의 동의와 관계없이 확고한 진리로서 받아들이는 개인적인 심리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나는 최근에 독립운동하셨던 분들만큼이나 신념이 강하신 분을 보게 되었다.
지난주에 3일동안 영어 교육을 다녀왔다. 내가 일하는 학원에서 쓰는 영어 프로그램 본사에서 하는 교육이었다. 젊은 시절 적지 않은 교육을 받아 봤기에 또 영어 교육을 받아야 하느냐는 생각에 좀 귀찮은 마음이었다. 교육 전에 핸드폰을 포함한 가방을 사물함에 넣고 자리에 앉았다. 책상에는 물 한 컵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무슨 교육을 이리 힘들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시 정각에 이사라는 분이 단상에 올라 교육을 시작하는 오프닝을 하셨다. 이어 대표님이 등장하셨다. 65세라는 나이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 동안에 자그마한 체구를 가진 여성분이셨다. 더 놀라운 것은 이분이 등장하셨을 때 나를 제외한 나머지 분들의 열띤 환호였다. 흡사 공연장에서나 봄 듯한 과한 박수 소리와 환호 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완전 90도 인사, 이런 인사를 본 적이 있나? 나는 사람들의 과장된 태도와 조금은 지나침에 놀람을 넘어서 약간의 거부감마저 들었다.
대표님은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신기할 정도의 당당한 카리스마를 가진 분이셨다. 왠지 이분 앞에선 모두가 기가 눌리는 기분이었다. 분위기를 잔뜩 깔고 처음 꺼내신 얘기는 죽음에 관한 얘기였다. 우리는 항상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해서는 늘 준비하지만, 막상 죽을 준비는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잘 죽을 준비도 필요하다고 하셨다. 결론은 잘 죽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교육 첫날 오프닝 멘트로는 좀 아니지 않나 하고 살짝 기분도 나빴다.
그리고 시작한 파닉스 교육, 나름 파닉스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고 영어 발음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대표님의 강의는 나를 새로운 영어로 안내하는 것 같았다. 음성학 강의라고 하는데 입 안에서 영어 소리가 나는 지점을 정확하게 알려주셨고 따라서 발음을 해보니 정말 이전과는 다른 소리가 나왔다. 그동안 내가 왜 원어민의 발음이 안 되는지 순간 깨닫게 되었다. 강의 내내 대표님이 돌아다니시면서 질문을 해대서 너무 긴장되고 대답을 바로바로 안 하면 지적을 하시니까 좀 무섭기도 했지만, 많이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1시간의 점심시간이 끝나고 다시 교육이 시작되었다. 본부장님들의 파닉스 강의 시연이 이어졌다. 이 프로그램은 영어를 못하는 사람도 영어를 가르칠 수 있다는 모토로 대표님이 책을 쓰셨고 누가 가르치던 아이들에게 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점에서 이 교재로 특허까지 받으셨다고 한다. 대표님의 교재에 관한 자부심이 어마어마했다. 처음에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칠 때 마음에 드는 교재가 없어 직접 책을 쓰게 되었고 그 후 교육에 대한 강의가 들어오면서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 자부심과 영어 교육에서만큼은 내가 제일이라는 신념이 40년간 한 길을 걷게 하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3일의 교육 시간이 무척 길게도 느껴졌고 너무 빡빡한 일정에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도 아주 힘들었다. 근데 들어 보니 이 교육을 많게는 10번 이상 받으신 분들도 있다고 한다. 들을 때마다 자신이 리셋되는 기분이 들어 초심을 잃지 않고 일할 수 있다고도 했다. ‘정말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 이분들 또한 영어 교육에 대한 열정과 대표님에 대한 믿음이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약간 거부감으로도 다가왔던 사람들이 대표님에게 하는 과도한 환호와 열띤 인사가 3일 동안 대표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많이 상쇄된 것 같았다. 역시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뭔가가 있었다.
대표님이 말하는 성공의 키워드는 능력이 아니라 태도였다. 무슨 일이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제일 중요한데 그건 바로 마음가짐, 즉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태도는 인사에서 나온다고 한다. 하긴 옛 어른들도 그런 얘기를 하셨다. 인사만 잘해도 먹고 산다고. 그녀가 강조한 또 한 가지는 아이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기였다.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라는 얘기가 있다. 우리가 눈빛으로도 아이들의 기를 죽이고 아이들을 때릴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얘기다.
나는 처음에 이 교육을 꼭 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교육받으면서도 내가 이 자리에 온 것이 잘한 일인가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3일간의 교육이 끝나고 내 생각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교육을 받고 나서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 보았다.
아이들을 누구보다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 주고, 영어를 잘 가르치는 게 아니라 잘 알려주는 안내자 역할을 해주고, 부족한 아이에게는 응원해 줄 수 있으면 어떨까?
그동안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받은 것이 많다. 가끔은 그런 것이 당연하다고도 생각했다. 지금부터는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려고 한다. 애정도 주고 기쁨도 주고 용기도 주고.
나는 아직도 배울 게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