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창

by 재인

읽기란 책이나 글 또는 다양한 매체의 문자로부터 의미를 파악하는 인지적 과정으로 지식습득과 사회적 소통, 정보공유의 핵심 수단이다. 우리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텍스트 자체를 읽고 못 읽고의 얘기가 아니라 읽고 이해했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읽는다는 것은 다 이해한다는 뜻일까?

그녀는 상처를 통해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왜 생긴 능력인지는 모르지만, 우연한 기회에 본인의 능력에 대해 알게 된다. 보육원에서 자란 그녀는 사회에 나와 힘든 시기를 견디다 어린 시절 그녀를 도와준 적 있는 오언을 찾아가게 된다. 겉으로는 사업가지만 어두운 세계에 몸담은 오언은 그녀의 능력을 알아보고 그 힘을 이용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녀에게 부족함 없는 삶을 살게 해 주고 한없이 따뜻하게 보살핀다.


오언은 그녀를 배려하고 존중하고 그녀의 마음을 얻고자 했다. 그녀도 오언에 대한 마음의 문이 열릴 무렵 그녀가 좋아하는 기타 선생님이 죽는다. 오언이 죽인 것은 아니지만 그의 죽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오언에게 그녀는 깊은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오언은 본인의 몸에 상처를 내면서까지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길 원하지만, 그녀는 온몸으로 거부한다.


“농담이 얼마나 흥하는지는 말하는 사람의 혓바닥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귀에 달려 있지”

“ 공정한 재산권 행사를 위해 각서를 쓴 대로 일 파운드의 살을 베어내야 한다면 역시 실행에 옮겨야겠지.”

“달콤한 물을 마시려면 설탕이 녹기를 기다리라.”

“그것이 지금이라면 앞으로는 오지 않을 테고, 다음번이 아니라면 지금 오겠지요.”


오언은 사회 통념상 나쁜 사람이지만 셰익스피어를 논하고, 신은 그냥 하나의 오래된 질문이라고, 죽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 누구도 답을 알아낸 적 없는 질문이라고 말하는 그를 왠지 미워할 수 없을 것 같다.


오언은 그녀가 그에게 주어진 지극한 가장 어려운 질문이라고 했는데 그건 사랑을 말하는 걸까? 버나드 쇼의 “피그말리온”에서 결국 일라이자는 히긴스 교수를 사랑하지 않는다. 갈라테이아도 절대로 피그말리온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녀도 풍족한 삶을 살게 해 주었지만, 발목에 비단 끈을 메어 버린 나이팅게일처럼 자유를 옭아맨 그를 사랑하지 않았던 걸까?

그녀가 계속 읽어주길 원했던 그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마지막에 그녀에게 전한 말은 무엇이고?


구병모 작가가 보여주는 사랑은 너무 어렵다. ‘아가미’에서 강하가 곤에게 보여준 관심이 그랬고 ‘파과’에서 조각이 강 박사 가족에게 보여준 애정이 그랬다.


“상처 없는 관계라는 게 일찍이 존재나 하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상처는 사랑의 누룩이며, 이제 나는 상처를 원경으로 삼지 않은 사랑이라는 걸 더는 알지 못하게 되었다. 상처는 필연이고 용서는 선택이지만, 어쩌면 상처를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 세상에는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중 하나는 거짓말”에서 김애란 작가는 말했다. 누군가 또는 무언인가를 잃는 상실을 통해서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고. 그렇다면 그녀가 말하는 사랑은 상처를 통해서인데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은중과 상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