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학기 동안 목요일마다 도서관에 다녔다. 목요일 아침마다 에세이 수업이 있어서이다. 처음 수업은 지난 계절에 처음 들었는데 생각보다 좋아서 이번 계절에도 신청하게 되었다. 사실 이 수업하고 소설 쓰기 수업 둘 다 하고 싶었는데 소설 쓰기 수업은 오후에 시간이 잡혀 있어서, 요즘은 화요일과 목요일 일주일에 두 번 오후에 수업을 나가고 있어서 신청하지 못했다.
에세이 수업은 일주일에 한 권 정해진 책을 읽고 그 주제에 맞는 에세이를 한편씩 써오는 것이 과제이다. 강제성은 없으나 모두 쓰기에 열망이 있는 사람들이 모였기에 다들 과제를 해오는 편이다. 목요일에 모이면 우선 읽고 온 책에 대해 돌아가면서 얘기를 한다. 그리고 2~3명씩 돌아가면서 본인이 써 온 에세이를 읽고 다 같이 합평한다. 이때 모두 지켜야 할 룰이 하나 있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절대 폄하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선생님이 이 수업을 처음 시작할 때 모두에게 부탁한 조건이다. 여기 모임 사람들은 책을 좋아하고 쓰기를 하고 싶어서 모인 사람들이지, 현재 작가이거나 작가 지망생은 아니기 때문에 서로에게 좋은 피드백만 해주기로 한 것이다. 근데 사실 이 조건은 첫 수업에는 없었다. 물론 그런 조건을 선생님이 말하지 않았어도 서로의 글에 대해 지적하는 일은 없었다. 우리 모두 글쓰기에 초보이고 아마추어였으니까.
아마 이 일 때문에 선생님은 두 번째 에세이 수업 첫날 이런 규칙을 얘기했을 거다.
첫 에세이 수업 때 일이다. 우리는 모두 필명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선생님이 필명을 가지고 글을 쓰면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다고 해서 각자 마음에 드는 필명을 하나씩 정했다. 처음 각자 소개하며 필명을 말했는데 한 분이 필명을 꼭 만들어야 하냐고 정색했다. 보통 이런 모임에서는 사람들이 대부분 긍정적인데 이렇게 부정적으로 나오니 나조차도 당황했다. 선생님은 침착하게 꼭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고 얘기했다. 그분은 자기소개를 하면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얘기했다. 가령 본인이 쓴 작품이 드라마 공모전 최종 단계까지 간 적이 있다.라고 얘기하는 걸 보니 자기가 글 좀 쓴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나 보다.
다음으로 책 얘기를 돌아가면서 하는데 그분이 대뜸 책의 소제목을 보면 그럴듯한데 막상 내용은 없다며 제목을 보고 낚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에세이는 이렇게 쓰는 게 아니라고. 헐. 대박. 이미 책으로 나온 작가의 책에 대해서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 있지? 내 마음에 안 들 수는 있지만. 그건 쓰는 사람으로서도 독자로서도 예의가 아니지 않나? 나는 이 상황을 선생님이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했다. 선생님은 이번에도 침착한 말투로 선생님이 책이 마음에 안 드셨을 수도 있어요. 그러면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차분하게 말씀하셨지만, 속으로는 좀 당황하고 화도 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이제 각자 쓴 에세이에 대해 합평하는 시간이었다. 다들 좋은 얘기만 오가는 훈훈한 자리, 그래서 서로에게 응원받는 자리였다. 근데 그분이 또 첫 문장이 마음에 안 든다. 무슨 얘기를 하는 글인지 모르겠다. 나라면 이렇게 안 썼을 것 같다.라고 했다. 갑자기 겨울비를 온몸으로 맞은 듯 분위기가 싸해졌다. 속으로 이번에도 선생님이 참을까? 했는데 선생님이 이번에는 단호하게 다른 분의 글이 마음에 들지 않으셔도 여기는 지적하고 합평하는 자리가 아니니 그런 말은 삼가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분이 얼굴이 울긋불긋 되더니 짐을 싸서 나가버렸다. 그분이 나가자 모두 웅성웅성,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선생님이 저분 이제 안 오시겠죠? 하시면서 한숨을 내쉰다. 아, 그 자리도 참 만만치가 않구나. 세상에 쉬운 일이 없어. 하는 생각이 밀려 들어왔다.
사실 나도 그분이 다시 오지 않으시길 바랐다. 혹시 내 글에는 뭐라고 타박할까, 싶어 내내 가슴을 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분의 글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도대체 어떻게 글을 썼을까 궁금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렇게 그분이 빠진 나머지 분들과 별 탈 없이 수업을 끝까지 마쳤다. 그리고 다음 학기에 다시 보기로 했다.
지난번의 약속과 달리 두 번째 학기 에세이 수업에는 나만 다시 오게 되었다. 선생님은 반갑게 맞아 주셨고 다른 분들이 한 명도 안 오실 줄 몰랐다고 하니 선생님은 원래 이런 모임이 다 그래요. 하면서 웃으신다. 두 번째 에세이 수업에 오신 분들은 대체로 연령대가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은 것은 좋았는데 사람들 모두가 말이 너무 많았다. 한번 얘기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도무지 중간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각자 써온 글을 읽고 합평하는 시간이었다. 첫 번째 분의 글에는 슬픔이 많이 묻어났다. 하지만 왜 그렇게 슬픈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드신지에 대한 내용이 없어 좀 궁금해요.라고 했더니 그분이 본인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혼한 얘기부터 친한 친구에게 사기를 당하게 된 이야기까지, 첫 만남에 이런 자리에서 듣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 얘기였다. 그러더니 이분이 얘기하면서 본인 설움이 밀려오는지 갑자기 우시는 거다. 맙소사. 마치 이곳은 글쓰기 모임이 아닌 그룹 상담소 같은, 마침 자리도 둥글게 원 모양으로 앉아 있어서 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치유의 글쓰기인가? 선생님은 원하지 않으시면 꼭 얘기하실 필요는 없다고 했는데 그분은 괜찮다고 하시면서 가정사 얘기를 계속하셨다. 수업을 끝내고 나오면서 계속 수업을 들어야 할지 고민했다.
나이가 드니 집과 직장, 늘 만나던 친구들과 지인들이 내 인간관계의 폭이다. 그게 불만인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내가 너무 좁은 세상에 살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런 모임에 나오기도 하지만 또 드는 생각은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하지만 나랑은 안 맞는다.이다. 나이가 들수록 포용력이 생겨야 하는데 점점 싫은 사람은 만나지 않게 되니 자연히 좁은 세상에 갇히는 느낌이 든다.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두 번째 에세이 수업에는 결석을 많이 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 마음속에 불편한 마음도 한구석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선생님이 내주신 과제는 매주 꼬박꼬박 해서 제출했다. 그래서일까? 에세이 수업을 두 번 들으며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 수업은 끝났지만 나는 계속 쓰고 있다.
잘 써서 쓰는 게 아니라 계속 쓰다 보면 좋아진다.라는 말을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