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이후

by 재인

초긴장 상태였던 수능이 끝났다. 하지만 입시는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부터 진짜 입시 시작이다. 수능 날 아침부터 마음 졸였던 마음이 오후 4시 35분 시험이 끝나고 20분 뒤 아들의 밝은 목소리를 들으니 스르르 풀리고 말았다. 어찌나 긴장했었는지 목뒤가 빳빳했다. 퇴근하고 집에 오니 아들은 가방만 두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버렸다.


가 채점도 해보고 시험이 어땠는지 얘기도 하고 근사한 저녁도 먹이고 싶었는데 아들과 나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친구들과 맛있는 저녁을 먹나 했는데 결재 알람 온 곳이 PC방인 걸 보니 아이들은 밥보다 게임이 많이 고팠나 보다.

수능 시험은 끝났지만 바로 논술 시험이 있다. 시험이 끝난 해방감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논술까지 끝내고 자유로움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논술 준비는 따로 하지 않았으니 며칠 만이라도 노력해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은 역시 나의 희망 사항이었다. 시험이 끝나고 아이는 정말 하루 종일 잤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내내 속이 탔다.

논술 시험이 있는 날, 오후 시험 일정이라 여유롭게 준비하고 출발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마다 울긋불긋 단풍잎과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떨어지고 있어 늦가을의 정취가 느껴졌다. 지금이라도 내려서 거리를 걷고 싶다는 마음과 바로 시험을 앞둔 아이로 인해 또다시 긴장된 마음이 공존했다.


대학로에 들어서니 사람도 차도 너무 많았다. 차는 도로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나마 여유 있게 출발한 것이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대학교 정문까지는 차가 진입할 수 없었다. 아래쪽 큰 대로변에서 도로 한쪽 차선을 막아 논술 시험을 보러 온 차량을 안내하고 있었다. 경찰들과 학생들이 차량 정리도 하고 시험 보러 온 학생들에게 길을 알려주고 있었다. 도로 옆은 호루라기 소리와 각종 차량 소리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차를 세우고는 바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 아이와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아이를 학교 정문까지 데려다주지도 못하고 헤어졌다.


30분도 넘게 돌아다니다 겨우 주차하고 아이를 혼자 보낸 아쉬운 마음에 학교 정문 앞까지 걸어가 보았다. 양쪽 길가에 쭉 늘어선 은행나무가 너무 예뻤다. 학교로 걸어가는 길에는 분식점, 카페, 편의점, 식당, 24시간 프린트 제본하는 곳들이 있었다. 학교 앞에 도착해 보니 이미 많은 학부모가 있었다. 오랜만에 본 대학 캠퍼스는 내 마음도 설레게 했다.

두 시간을 넘게 서 있을 자신이 없어 근처 카페로 갔다. 차를 한 잔 마시고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찾아보다 시험이 끝나기 30분 전에 다시 학교 앞으로 갔다. 6시인데 이미 해가 져서 어두컴컴했다. 학교 앞은 아까 낮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있었다. 거기에 경찰 인력도 3배 넘게 투입되어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과 지나가는 사람을 정리하고 있었다. 6시 30분, 시험이 끝날 시각에 가까워져 오자 점점 더 많은 인파가 몰렸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한 해 마지막 날 보신각 앞에 몰린 사람들만큼이나 많았다.


한 경찰관이 메가폰을 들고 학생들이 나오면 지나갈 곳을 만들어야 한다고 도로 쪽으로는 서 있지 말라고 부탁했다. 오늘 시험 보러 온 학생은 대략 8 천명 정도 된다고 한다. 와, 그럼 경쟁률이 얼마나 되는 걸까?

경찰 아저씨는 제일 먼저 나오는 아이들에게 대표로 수고했다고 박수를 쳐주자고 제안했다. 드디어 한 명 한 명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학부모들은 마치 다 우리의 아들, 딸 인양 수고했다고 외치면서 박수를 쳤다. 시험을 마치고 나온 아이들은 갑자기 많은 사람이 모여 치는 박수 소리에 놀라 어쩔 줄 몰라했다. 나는 우리 아이를 혹시 놓칠까, 싶어 두 눈을 부릅뜨고 아이를 찾았다. 정말 많은 아이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내 아이를 찾을 수 있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꽤 많은 아이들이 나왔지만, 우리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보니 이미 아이에게 전화가 와 있었다. 마음이 급해 얼른 전화하니 아이의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왜 전화 안 받았냐고, 어디냐고?

나는 순간 나대로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이 많은 사람 속에서 너 찾으려고 까치발을 하고 얼마나 눈에 힘을 주며 찾았는데….

아이를 만났지만, 아이의 찬바람 가득한 기운에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서로 불편한 마음으로 집으로 왔다.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아이는 뭘 먹겠다는 말도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아이가 시험을 못 본 거 같아 기분이 좋지 않은 거 같으니 그냥 두라고 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아이에게 피자 시킬 건데 어떤 거 주문할까? 넌지시 물었다. 대답이 없었다.

나는 아이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괜찮아, 우리 원래 정시 준비하기로 했잖아. 논술은 그냥 옵션이었잖아.”

아이는 무슨 말인가 하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나 다 풀었어.”

“헉, 뭐라고? 10문제 다 풀었어? 그럼 혹시 답안지에 다 옮겨 쓰지 못했어?”

내가 급하게 물어보았다.

“아니.”

“근데 왜 그렇게 화가 났어?”

“엄마가 전화를 안 받았잖아.”


맙소사,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긴장된 마음으로 시험을 보고 나오니 너무 많은 사람들 속에서 엄마는 안 보이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얼마나 당황했을까 싶었다. 나는 진심을 담아 아이에게 전화 못 받아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너를 찾을 생각에 전화 오는지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피자를 주문하고 찾으러 가는 길, 옆에서 남편은 그놈의 성질머리 하고는 하면서 혀를 끌끌 찬다. 근데 난 괜찮다고, 아이가 시험을 잘 봤으면 나에게 얼마든지 화내도 된다고 얘기한다.

수능이 뭐라고? 부모 노릇도 참 힘들다.


이제 모든 시험이 끝나고 결과만 기다리는 날들이 어쩌면 더 애가 탈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이도 나도 일 년 동안 최선을 다했기에 마음은 후련하다.


어느 날 선물같이 네가 나에게 온 것처럼, 올겨울에 너에게도 좋은 선물이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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