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

어색한 발걸음 속 피어오르는 서툰 감정들

by 진민

드디어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라는 프로그램을 다 봤다. 거의 3주에 걸쳐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누가 좋았고 누가 별로였고 식의 리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인물들이 연애라는 목표를 향해가는 과정에서 느낀 나의 감정들을 되새겨보고 싶다.




25살이 된 나는 아직 모태솔로이다. 이 점이 내가 이 프로그램에 더욱더 빠져들게 만들어주었던 것 같다. 이들의 나이도 나보다 2,3살 정도 많은 사실상 또래라고 말해도 될 정도의 사람들이다. 이들이 왜 모태솔로인지, 그것을 탐구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이들이 연애를 하기 위해 만난 어색한 공간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에 집중하였다. 이들은 분명 연애, 즉 이성과의 만남에 있어 서툰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서툰 감정을 아주 조심히 꺼내 펼쳐 보인다. 본심과 다르게 강하게 보이고 자하며, 때로는 자신의 말이 상대방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지 깊게 고민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런 그들의 행동들이 나오는 감정의 메커니즘이 공감이 되기도 하고 나를 되돌아보게 되는 점도 분명 있었다.




마치 한 편의 성장드라마를 보는 기분이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처음으로 수많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의 연애관에 대한 확신과 동시에 자신에 대해 좀 더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일단 사랑이란 무엇일까? 나는 일정 수준을 넘어선 정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정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저 사랑이라는 목표에 도착할 만큼의 정이 살짝 부족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 부족한 정을 채우기 위해 제주도에서 8일간 함께 지내게 된다. 12명의 출연자가 모두 연애를 목표로 나온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연애는 하나의 목표일 뿐 그 목표를 향해 가는 이들은 어색하고 낯선 감정들을 헤쳐나가며 한 발짝씩 성장해가고 있다. 어색한 감정들은 가시덩굴처럼 거슬린다. 그리고 불편하다. 현재의 익숙한 감정들로 살아가는 삶은 편안함과 동시에 안정감을 주기 마련이다. 그 안정감 속에서 나는 점점 패쇠적이게 된다. 어색한 감정들의 가시들에 상처받기 싫어서 나는 더 웅크려지고 있다. 이런 감정들에 무뎌진 나를 상상하며 새로운 만남을 꿈꾸지만 나의 맘은 왜인지 작은 송풍에도 쉽게 긁히곤 한다. 그리고 작은 상처에 나의 마음은 다시 또 주저하게 되는 것 같다.




어릴 때 할아버지집에 가면 항상 나만의 아지트를 짓곤 했다. 그 아지트 속에는 오직 나만 들어갈 수 있었다. 나만의 공간이었고 나를 나타내는 공간이었다. 허술해 보이지만 그 안은 완전히 포근했고 따뜻했다. 어릴 때의 습관 때문인지 나는 마음속에 계속 아지트를 짓는 중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아지트 속에서 나오기를 꺼려하는 것 같다. 내가 만들어놓은 아지트는 아직도 나의 마음속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아지트라 표현했지만 사실 안에는 텅 비어있다. 아지트 속 빈 공간의 중심에 나 혼자 자리 잡고 있다. 마음속 허무의 공간은 참 단단히 자리 잡고 있다. 허무라는 감정은 긍정보단 부정에 가까운 감정이라 생각한다. 자기 파괴적이고 퇴폐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동시에 무시할 수 없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 비어있는 허무의 공간에 손님을 받아들이는 행위가 아닐까 싶다. 정이라는 감정으로는 뚫을 수 없던 그 단단한 벽이 무너지는 순간 더 이상 허무라는 공간은 풍부함으로 꽉 차는 것이다. 평상시에 그 공간은 낯선 사람에게 쉽게 열리지 않는다. 엿보기도 힘들 만큼 두껍다. 나는 그 두꺼운 벽뒤에 숨어 안정감을 계속 추구해 간다. 처음이 힘들지 한번 말 열리면 누구에게도 쉽게 열릴 문이란 걸 알지만 아무 누구에게나 열리고 싶지 않은 마음도 공존한다.




우연 혹은 운명이라는 이름을 가진 만남이 언젠간 나의 마음을 두들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자연스레 마음이 열릴 것이라고 항상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들은 생각만치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물론 한순간에 지나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터라 그저 스쳐가는 인연으로 여겼을지 모르겠다. 운명론적 사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나의 운명론적 사고는 막연히 운명을 바라고 기다리는 것이 아닌 후천적인 사고방식이다. 지나간 것에 대해 운명이 아니었음을 바랄 뿐이다. 연애에 관해서도 비슷한 거 같다. 어찌 됐든 지나가버린 인연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 방법으로 운명을 대입시키는 평이었다. 우리는 이루어지지 않을 운명이었어라고 다짐하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이 선택도 어찌 보면 상처받기 싫은 나의 나약한 태도에 포함되는 것 같다. 완전히 떠날 순간 받을 상처가 두려워 먼저 운명이라는 변명으로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이 한 편의 성장 드라마 속에서 새로운 감정들의 소용돌이에 부딪치며 나아가는 이들을 보며 나약했던 나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었다. 감정의 다양성은 곧 창의력으로 표현될 것이다. 새로운 감정, 만남을 위해 감수해야 할 수많은 상처들을 두려워만 하지 말고 이들처럼 맞서 일어서 보는 것, 이들은 모태솔로이지만 나약하지 않은 어른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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