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과 1/2

영화란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

by 진민

로마에 갔을 때 씨네시타라는 영화박물관을 갔다. 영화를 좋아했지만, 내가 알던 이탈리아 영화인은 '로베르토 베니니'가 유일했다. 그럼에도 로마 중심지에서 꽤 떨어진 곳에 있는 영화박물관을 향했고 너무 썰렁한 주변 분위기에 한동안 영업을 안 하는 줄 알았다. 돌아가려던 차 주인에게 물어봤고 입장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걸 들었다. 딱히 할 일도 없던 터라 입장시간을 기다렸고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영화 박물관으로 향했다.


가이드투어는 어차피 못 알아들을 것 같아 혼자서 구경을 했다. 죄다 이탈리아어와 영어로 도배된 박물관이었지만 영화라는 것을 태마로 했다는 점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고 뭔지도 모른 채 빠져들어 보았다.

본관을 다 보고 옆에 별관을 갔는데 '페데리코 펠리니'만을 위한 전시장이 있었다. 그의 일대기부터 시작해 그의 영화들이 쭉 나열돼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급히 왓챠피디아에 그의 이름을 검색해 봤지만, 모두 처음 보는 영화들이었다. 나는 고전영화들을 별로 안 좋아하던 터라 그의 이름을 알리가 없었고, 크게 관심 없던 나는 보는 둥 마는 중 흘겨 지나갔다.




그런데 오늘, <8과 1/2>를 보았다. 1963년도의 작품이고 흑백영화라 안 보려고 했는데 마침 그 이름'페데리코 펠리니'가 눈에 들어왔다. 로마에서, 왜인지 모르게 뇌리에 박혔던 이름이다. 그의 영화를 한 번도 찾아보지 않았지만 그 별관의 존재 이유에 대해 궁금했었고, 그 궁금증을 해결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영화란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


영화에 대한 영화는 언제나 환영이다. 이 영화는 펠리니의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그의 예술가적인 고뇌가 아주 잘 담겨있는 것 같았다. 이 영화에서는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의 경계에서 영화라는 매체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영화란 무엇을 담아내야 하는가?


주인공은 영화감독이다. 그는 영화 아이디어가 막 샘솟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속에서는 그 아이디어와 현실이 구분 없이 펼쳐진다. 마치 꿈과 환상 같은 장면들과, 냉혹한 현실이 크게 구분 없이 동일시되는 듯 전개된다. 그렇기에 구조상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단순한 극 영화처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수필처럼 봤다. 수많은 등장인물들 간의 대사와 갈등이 중심이 아니다. 주인공을 통해 투영되는 펠리니의 시선, 그의 내면을 따라가는 것이 이 영화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시선 속에서 그가 느끼는 감정들, 고민들이 결국 이 영화의 핵심이었다.


그의 주된 고민은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가?이다. 그는 어떤 주제를 생각해 두고 그 주제에 대해서 평론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동시에 제작사는 그의 영화제작에 맞춰 온 힘을 기울인다. 하지만 평론가는, 그의 터무니 없는 아이디어에 반하는 의견을 제시한다. 무의미함을 강조하면서, 그에게 핀잔을 준다. 동시에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는, 납득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그는 제시하길 바란다. 제작사는 세트장도 만들며, 많은 사람들을 뽑고 카메라 테스트도 하며 펠리니의 영화제작을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펠리니는 그 어떤 대답도 주지 않는다. 누가 배역을 물어봐도, 내용을 물어봐도 절대로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어찌 보면, 그의 머릿속에는 영화가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안에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어, 진정한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도 영화 안에서 만큼은 영원한 사랑을 할 수 있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펼쳐질 수 있어. 하지만 그의 이런 이상적인 영화 관점은 평론가의 검열에 하나둘씩 지워진다. 그렇게 그의 영화는, 텅 비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을 통해 감독은 자신을 투영하고, 평론가로 등장한 인물 역시 감독 자신의 또 다른 자아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의 마음속의 영화는 무자비한 자기 검열 속에 하나둘씩 지워져 가고 있었다. 격변의 시대 속, 할리우드에서는 대량의 자본이 들어간 영화가 쏟아지는 가운데, 시대가 요구하는 '현실적인 영화'들과 그 현실을 넘어선 비논리적, 무의식적 세계에 대한 표현 욕망이 감독이라는 존재 안에서 마구 충돌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그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내가 과연 무슨 영화를 만들 것인가.


하지만 이 고민들과 동시에 현실적인 문제들까지 겹쳐지기 시작한다. 다음 일정이 있는 배우, 이미 지어놓은 세트장까지 제작사는 이런 우유부단한 감독의 모습이 답답해할 지경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영화를 포기한다. 그리고 평론가와 마지막 이야기를 나눈다. "무의미한 작품들이 무수히 쏟아지는 환경 속에서 특색 없는 무의미한 이런 작품은 창작보다 파괴가 더 옳은 선택이다"라는 말과 함께 그의 포기에 긍정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다면 영화란 무엇을 담아내야 하는가? 무의미한 작품이란 무엇일까?


무의미한 상황에 의미를 찾으려는 행위는 결국 허무라는 감정으로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의 영화는 결국 허무함으로 끝나버렸다. 마치 후련한 듯, 마치 당연한 듯, 포기하였다. 하지만 결국 페데리코 펠리니의 예술가적 고뇌는 수많은 질문을 거쳐 우리에게 이 <8과 1/2>라는 영화로 도달했다.


이 영화는 무엇을 담아냈을까?


그저 그의 시선과 감정들이, 그의 꿈과 환상을 통해 보인다. 그가 느낀 고통스러운 창작의 고통 또한 이 영화로 승화되어 스크린 너머의 관객에게 답답함과 공감을 동시에 건넨다.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오케스트라는 우리를 마치 그 창작의 둘레에 가두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렇게, 정말 무의미해 보이는 그의 비논리적 상상과 꿈은 우리 앞에 '영화'라는 이름으로 상영되고 있다.




영화란 결국 무엇인가?


의미와 무의미, 현실과 초현실, 이 모든 것은 영화 안에서 공존할 수 있다. "무엇을 표현할까"가 아닌 표현된 모든 것이 영화가 될 수 있는 것이다. <8과 1/2에서> 펠리니가 던진 영화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수많은 영화들 사이에 끊임없이, 동시에 그리고 영원히 되풀이된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영화를 좋아하고 꿈꾸는 한 아이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비쳐주는 것 같이 느껴진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