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이 많으면 비행기에 못 타는 법
학창 시절에는 열심히 달리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앞을 향해 달리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점점 이렇게 "쉰다"라는 개념과 점점 멀어지는 삶을 사는 것 같다. 우리는 열심히 달리는 만큼 열심히 쉬는 법도 같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창 시절에는 도로가 잘 포장되어 있다. 신호등도 마련되어 있다. 쉬는 시간과 달릴 시간을 지정해 준다. 달릴 방향도 어느 정도는 지시해 준다. 학교를 졸업한 순간 우리는 사방이 뚫린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이제 어디로든 달리면 되는 것이다. 무작정 앞을 향해 달리는 도중, 예상치 못한 쉼표를 마주할 때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쉬는 법은 딱히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갑자기 생긴 이 공백에 초조함을 느끼곤 한다. 마치 정체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이 휴식은 가벼운 조깅을 위한 시간인 것이다. 열심히 달리던 나에게 이제 조깅의 시간이 온 것이다. 달리기를 하면서는 느끼지 못했던 주변의 공기와 자연들을 느끼는 시간인 것이다. 그리고 잊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달리는걸 남몰래 응원하던 사람들도 있다. 잠시 쉬어가는 이 시간은 이들의 존재를 한번 인식하는 시간인 것이다. 달리는 순간에 놓쳤던 가치들과 감정들은 새로운 길을 밝혀줄 수도 있다.
<안경>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사실 좀 졸았다. 그런데 졸면 뭐 어떤가?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영화 평론가도 아니고 영화를 보는데 그렇게 진지하게 온 힘을 다해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의 내용은 크게 없다. 주인공이 휴식을 하러 오는 것이다. 사색을 하러 오는 것이다. 주인공이 이 휴식을 하러 온 곳은 굉장히 고요하고 조용한 곳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주인공이 이 고요함에 적응을 못해서인지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한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며 주인공은 휴식을 취해간다. 극장에 앉아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나에게 휴식을 건네는 영화 같다. 감상과 함께 나는 점점 그 휴식에 빠져드는 기분이다.
주인공이 휴식을 취하게 되는 변곡점이 있다. 주인공이 원래 있던 숙소에 적응을 하지 못해 짐을 챙겨 근처 다른 숙소로 간다. 하지만 다른 숙소에서는 농사일을 시킨다. 이것도 맘에 들지 않은 주인공은 다시 원래 숙소로 돌아가려던 차에 빙수집 할머니를 만난다. 할머니의 자전거 뒤에 타려는데 짐을 둘 곳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짐을 땅에다 두고 자전거를 타고 휴식을 향해 달려간다.
나도 항상 휴식을 꿈꾼다. 앞을 향해 달리는 중에 달콤한 휴식은 언제나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짐을 내려두지 않는다면 이 휴식이 무슨 소용인가? 나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쉬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나의 것을 놓으려고 하지는 않았던 순간들이 있다. 가방에 짐을 계속 넣기만 하면 결국 무거워져 더 이상 못 가게 되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그때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종종 가방을 비워주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가방을 탈탈 털어버릴 필요까지는 없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물건들은 잠시 내려두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휴식은 몸도 마음도 가벼운 상태에서 나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짐을 줄이는 것이 휴식을 위한 첫 번째 단계인 것 같다.
휴식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우리는 성장한다. 흘러가는 시간을 초조함과 불안감으로 채우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되는 것 같다. 물론 세상에 의미 없는 시간은 없지만, 이는 다음 달리기에 분명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므로 이 휴식시간을 잘 보내는 것, 어찌 보면 열심히 달리는 행위보다도 가치 있는 행위일 수도 있다.
별거 아닌 이유들로 쉬어가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날씨가 좋아서, 맛있는 걸 먹어서, 좋은 영화를 봐서, 예쁜 옷을 입어서 등등 말이다. 나는 오늘 날씨가 좋아서 쉬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