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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언 Jan 29. 2024

20대 나, 10대 강아지 (3)

편애받는 기분



미리 말해 두자면 나는 약간의 열등감과 피해의식을 가지고 사는 젊은이다.


요즘 사람들 중에 안 그런 사람들이 또 얼마나 있겠냐만서도 언제나 내 안의 그 못난 감정을 의식하고야 만다.


잘난 가족, 잘난 친척들에 둘러싸여서 나 혼자 공부를 지지리도 못하는, 제법 우울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예체능계로 대학을 진학한 뒤로는 별난 교수님들과 별난 동기들, 그리고 마찬가지로 점점 예민해지고 별난 나 자신에게 지쳐서 점점 우울해지고 못나지는 내 모습이 지긋지긋해질 정도였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 강아지는 내가 제일 좋대. 참 별난 취향이 아닐 수 없다.



편애받는 기분



 어렸을 때는 이 늙은 멍멍이와 나는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옛날에도 딸기는 날 싫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낮 시간에는 다른 가족 방보다는 내 방에 더 자주 들어왔고, 내 가방 위에서 낮잠 자는 걸 꽤 좋아했다. 음. 그때는 그냥 단순히 내 가방을 좋아했던 걸지도.


그리고 지금, 딸기는 노골적으로 나를 편애한다. 가족들 간에 나를 1등 집사로 점찍어두고 다른 가족들과는 차별 대우를 한다. 얼굴 닦기나 눈곱 떼기, 엉덩이 닦기 등 싫어하는 일을 해도 내가 하면 조금 참아주지만 다른 가족들이 손을 대면 질색팔색한다.


애정표현도 나한테 제일 잘 한다고 하고, 여하튼, 차별 당하는 우리 모친과 부친 말씀으로는 아예 텐션이 다르다고 한다. 내가 있는 날과 없는 날은 딸기의 꼬리 각도부터가 다르다고.


이것 참 황송하고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고, 뿌듯하기도 하고. 그리고 열등감만 가득한 내 못난 마음속 한가운데에서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는 나 따위로 괜찮은 거야? 하는 마음과 역시 이몸! 딸기가 나를 제일 좋아하는건 당연한 일이야! 그야, 내가 이 집에서 딸기를 제일 사랑하는걸! 하는 마음이 공존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 우울감의 근원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딸기가 날 이렇게 사랑하는데, 나는 고작 이것밖에 못 해주다니! 학업 때문에 일주일에 3일씩 도시로 나와 지내는 것마저 죄책감이 들 정도다. 마음 같아서는 전부 다 때려치고 집에 처박혀서 강아지만 돌보고 싶은 내 마음을 알까.


딸기가 나를 편애하는 만큼 나 역시 딸기를 편애한다. 못난 자식놈은 부모님 안부보다 늙은 강아지 안부가 더 궁금하다. 나와 있어도 생전 연락 한 번 하는 일 없는데, 딸기 안부는 매일매일 잘도 묻는다. 우리 개 뭐해요? 매일 밤 비슷한 시간에 그렇게 묻고, 답이 돌아올 때까지 집요하게 톡을 보낸다.


사랑하니까. 한 해 한 해 눈에 띄게 기력을 잃어가는 할머니 강아지지만 고맙게도, 나를 제일 좋아하는 마음은 변치 않을 모양이다. 못나고 별 볼 일 없고, 학교에서는 혼나기만 하고 집에서는 밥만 축내는 식충이인데도 내가 좋다는데. 그런 내가 제일 좋다는데. 딸기가 준 사랑에 응당 나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나도 할 말이 있다. 나도 딸기를 사랑하고, 이렇게 밖에 나와서도 하루종일 딸기 생각만 할 만큼 "편애"한다. 이렇듯, 우리는 서로를 편애한다. 그리고 사랑받는 기분은, 사랑하는 기분은 행복하다. 헤어질 날이 가까워오는 만큼 이제는 두렵고 우울함을 동반하지만 그래도 이 사랑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이기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이왕이면 헤어지는 날까지 딸기가 나를 편애해주면 좋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언제나 딸기를 편애할 테지만.


그리고 오늘, 딸기가 옆에 없는 밤. 우리 할망구 강아지의 꼬순내가 그립다. 딸기 사진을 올려둔 SNS에 들어가서 옛날 사진들을 되짚어 보자니 더욱 보고싶어졌다. 두 세 살 정도 젊을 때의 딸기 사진을 보고 있자니 괜히 서글퍼져서 더 보고싶어졌다.


내일 당장 달려가서 또 잔뜩 사랑하고, 사랑받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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