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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언 Jan 21. 2024

20대 나, 10대 강아지 (2)

우리집 강아지 귀여워




딸기는 귀엽다. 엄청 귀엽다. 모든 반려인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우리집 강아지는 귀엽다. 어릴때도 그렇지만 나이가 든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우리집 강아지 귀여워.



강아지는 귀엽다. 어린 강아지의 사랑스러움은 말해 무엇하며, 다 성장한 강아지가 보이는 활기는 누구나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훈련받은 아이들이 보여주는 개인기 영상은 모든 SNS에서 큰 인기를 끌고, 가구를 뜯고 인형을 박살내며 산책 나가선 진흙탕에 몸을 굴려버리는 그 익살스러움이란. 견주는 비명을 지르지만, 그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애정은 결코 숨길 수 없다.


그렇다면 노년기의 강아지는? 당연히, 그들은 늘 그랬듯 사랑스럽다.


반려동물에 관한 인식이 서서히 바뀌며, 최근에는 SNS에 노년기에 접어든 반려견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보인다. 인기 많은 셀럽견들이 더이상 어린 강아지가 아니며, 노환에 따른 각종 질병을 앓게 되었으며, 종종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 소식 역시 심심찮게 날아든다. 노견을 모시는 나는 그런 소식을 볼때마다 괜히 마음이 시큰하다.


나이가 들면 당연히 강아지도 변한다. 매일 병원에 다니고, 걸어서는 산책할 수 없어서 늘 안겨 다니게 되고 생김새 역시 변한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사랑스럽고 귀엽다. 아프고 힘든 몸으로도 견주 옆에 붙어있으려는 녀석들을 보면 사랑스럽다못해 애틋한 마음까지 든다.


이쯤되어서 우리 노견 자랑을 해보시겠다. 굴러다니는 솜뭉치같던 어린 시절은 사실 기억이 잘 안난다. 왜냐면 나도 어렸기 때문에. 딸기가 가장 활발한 하룻강아지였던 시절 나는 이제 10살이 된 천둥벌거숭이였다. 나는 온몸에 흙을 묻히고 다니며 바보같이 웃던, 지저분한 시골 꼬맹이였으나, 그때도 딸기는 유난히 예쁘고 도도했다. 미치 귀족가의 영애처럼.


새하얀 털에 새카만 눈동자와 코, 동그랗고 균형잡힌 얼굴과 작은 몸. 이제는 털은 살짝 바랬고 숱이 적어졌으며, 눈동자는 탁해지고 이빨이 빠져 얼굴이 살짝 비대칭이다. 성격도 조금 변했다. 잘 때만 엄마 옆으로 달려가고 그 외에는 독립적이던 녀석이었는데 완전 응석꾸러기가 됐다. 그리고 잘때는 꼭 혼자 자신의 침대에서 잔다.


그래, 뭐. 당연히, 젊고 아름다울 때보다는 못생겨진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노견은 노견만의 사랑스러움이 분명히 있다. 나는 빠진 이빨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딸기의 분홍색 혀가 귀여워서 참을 수가 없다. 약간 비대칭으로 자리잡은 귀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쫑긋 움직이며 내 말을 경청하려 할때는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 주먹으로 바닥을 쾅쾅 내리찍고 싶을 정도로 귀엽다.


예전보다 추위를 많이 타게 되어서 이불을 꼭 덮고 자려 하는데, 좋아하는 쿠션 위에서 담요에 파묻힌 채 고개만을 빼꼼 내밀고 나를 바라볼때는, 당장 달려가서 뽀뽀를 퍼붓고 싶은 걸 참기 힘들어진다. 그러다 잠이 들면 도로롱 도로롱 작게 코를 골고, 한참 잠에 빠져들었을 때 톡톡 건들면 하지말란 듯 꿈틀대는게, 자꾸만 치근덕대고 싶어진다.


그 상태로 강아지의 몸을 발랑 뒤집어 배를 보이게 하면 자연스레 고이 접히는 앞발이라던가, 귀여운 점을 대보자면 끝이 없다. 쿨쿨 자다가 입맛을 쩝 다시고 눈만 떠 내가 옆에 있는 것을 보고는 다시 게으르게 잠들어버리는 과정 하나하나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 나는, 산책나갔을 때 이따금 마주치는 분들이 건네시는, "아이고, 강아지가 다 늙었네. 어쩌냐."하는 말에 "그래도 예쁘고 사랑스러워요."라고 당당히 대답한다.


물론, 딸기가 언젠가 아예 거동을 하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나는 이 애가 귀여워 못 살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왜냐면 내 강아지는 귀엽기 때문이다.


노견은 어린 강아지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그들의 느긋함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색 바랜 눈동자에서는 가끔 지혜마저 느껴진다. 상태가 점점 악화되어 더 이상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되더라도, 이 애가 그러했던 아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반려인들은 그 추억으로 평생을 살 수 있다.


물론 노견을 돌보기란 쉽지 않다. 아니, 그냥 대놓고 말해서 진짜 힘들고 빡세다.


조금만 잘못해도 탈이 나는 건 일쑤고 매번 병원을 들락거리니 지출이 상당하다. 노견용 고급 사료와 간식, 영양제 값도 나가고, 치매가 심해진 아이들은 평생 함께 살아온 주인조차 알아보지 못할 때가 있다. 꾸준히 약을 먹여야 하는데 강아지는 약 먹는 이유를 모르니 매번 전쟁을 치른다.


대소변을 못 가리게 되고 한밤중에 짖거나 목적지 없이 어슬렁대며 돌아다니고, 서클링하는 치매 증세 때문에 견주를 불면증에 시달리게 만든다. 심한 마음고생은 반드시 따라붙는다.


그런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견주는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망각하게 된다. 혹은 과거에 그렇게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는데, 어째서 이렇게 변해버린 건지 절망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하루라도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은 이유가 뭘까.


답은 하나 뿐이다. 내 강아지가 귀여우니까.


귀엽다는 말은 많은 것을 함축하지만, 노견의 귀여움을 만드는 것은 역시 그간 쌓아온 사랑일 것이다. 눈을 초롱초롱 반짝이며 귀엽게 고개를 갸웃대던 강아지도 이 애고, 더이상 눈이 보이지 않고 치매 증세로 서클링을 하는 것도 이 애다. 그간 내 옆을 지켜 왔고 내 가장 친한 친구, 가족 역할을 자처했던 애. 나한테 과분한 사랑을 주고, 내 사랑을 받았던. 그러니 어찌 귀여워하지 않을 수가.


굳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을 리마인드하는 것은 역시 미래의 날 위해서다. 딸기가 늙어간다는 사실에 슬퍼하고 지쳐서 딸기가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것을 망각해버리면 안되니까.


우리집 강아지 귀여워. 귀여웠고, 지금도 귀여우며, 앞으로도 귀여울 것이다.





*23년도에 작성한 글을 수정해 재업로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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