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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May 15. 2023

엄마의 우울증을 벗어나고 싶어서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 남편과 몇 마디의 말을 나눈 것 같은데... 술을 많이 마신 것도 아니고, 기분이 썩 우울하지도 않았다. 토요일 저녁, 외식을 하고 아이들이 가고 싶다는 코인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래 몇 곡 부르고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몇 마디의 말을 주고받았는데 그 내용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내 9살 아이들 내게 왔다. 이것저것을 묻는 아들이다.(이 질문 내용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 입은 대답을 하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눈을 비비며 눈물을 닦았다. 아들은 그런 나를 바라보며 질문을 이어갔고, 나는 계속해서 답을 했다. 그리고 화장실로 가, 세수를 했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 소리 없던 눈물에서 소리가 조금씩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옷장을 정리하는 듯 쭈그리고 앉아서 울었다.  아들은 이런 날 혼자서 내버려 두면 안 되겠다는 듯 날 따라다니며 말을 했다.

  "얼른 가서 너 할거 해. 엄마 옷 정리 좀 할게."

  "응."

대답하고 나가는 아들이 언제 들어올지 몰라서, 붙박이장 안으로 들어갔다. 입을 막고 울었다. 혹시 내 울음의 소리가 너무 커질까 봐.

  내 눈물이 왜 시작했는지 모르겠고, 크게 슬픈 계기가 있었던 것도  크게 감동받은 것도 없었다. 그냥 흐리기 시작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붙박이장 속에서 어린아이마냥 쭈그리고 앉아 우는데, 낯설었지만 편안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어린 아들이 엄마를 찾았다.

 "엄마? 엄마? 엄마?"

숨바꼭질의 술래가 된냥 숨은 친구들 찾듯 엄마를 찾는 아이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왔다. 여전히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닦고 입을 막고 있었다. 새나가는 울음소리를 막고 싶었다.


  "엄마 여기 있었네?"

 날 찾은 아들은 왜 우느냐, 왜 거기 있느냐를 묻지 않았다. 그러고는 거실로 나갔다. 아들에게 얼마나 미안하던지... 난 눈물을 닦고는 주방으로 나갔다. 식탁에 앉아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도 꼭지 틀어진 눈물은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감출 수 있었다. 책 내용이 너무 내 마음을 말해줘서 그렇다고, 그래서 눈물이 난다고 말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아들은 끝끝내 내게 묻지 않는다. 하지만 난 이런 내 모습이 어린 아들에게는 보여주지 말아야 할 행동 같아서, 이 우울증을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 정신적인 이 부분을 벗어나고자 몸을 움직여본다. 일요일에는 지인을 만나기도 하고, 이것저것 얘기도 해본다.

   반캠핑을 핑계 삼아 외부로 나가고, 맑은 공기도 마셔본다. 아이들을 안아주기도 하고, 남편에게 안겨도 본다. 하지만 지인 가족과 도란거리며 얘기하면서 이 우울증이 들통날까 봐 두렵기는 했다. 애써 일부러 몸을 움직여 이 일 저 일을 해보았다. 휴일 하루를 이렇게 보내고 나면 일주일의 이틀은 살아갈 수 있겠지 싶어서 말이다.

  생일 아침이다. 하지만 기쁘거나 설레거나 침울하거나 슬픈 느낌 따위는 없다.  아무 느낌이 없다. 무미한 무색의 하루다. 아이들을 등교시킬 때에도 생기가 없다. 이런 엄마의 모습에서 어서 벗어나서 밝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밝았던 모습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깔깔깔 웃었던 기억이 나질 않고,  로봇이 되어 그냥 오늘의 맡겨진 일을 오늘도 겨우겨우 해나갈 것 같다.

  그럼에도 조금씩 조금씩 내 세상의 이 잿빛을 푸른 하늘로 열리게 하고 싶고 색을 입혀주고 싶다. 그래서 지금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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