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이 친구들의 이야기가 들린다. 주로는 어느 학원을 다니고 어떤 레벨이다,라는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6학년밖에 안 된 아이의 삶인데도 참 힘겹게 느껴진다. 상위권을 향해 (내가 보기에는) 이전에도 달렸지만그때는 쉬엄쉬엄 했고,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달린다는 아이들. 그들의 생각에서 나온 말일지, 아니면 부모님들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경주마처럼 달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유독 이런 친구들의 소식이 계속해서 들린다.
숨이 차다. 아이들의 이런 소식만으로도 숨이 차고 답답하다. 나 역시 그런 중, 고등학생 시절과 대학 시절을 겪었는데 엄마가 되어 옆에서 지켜보자니 숨이 가빠온다. 아이들은 오히려 당연히 해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달리겠지만 나는 왜 이 소식과 현실이 버겁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우리 애도 열심히 달리게 해 봐야지,라는 결심을 할 마음의 힘이 없다.
카카오톡의 프로필을 훑어보던 중 자식들의 상장을 올려놓은 이의 메인 사진을 보게 되었다. 결과가 참 달콤한 집이다. 늘 학원이며 영재원에서 받은 상장들이 수시로 변하여 올라오니 그 결과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부러운 집이다. 자매가 3명인데 3명이 모두 잘하니 그 집에는 어떤 비법 같은 것이 있을 것만 같다.
또 다른 집이 있다. 초등 2학년때부터 영어를 어찌나 잘하는지 언어 천재가 아닐까, 생각했던 집이 있다. 초등 3~ 4학년 때 이미 토플 주니어에서 최고 실력을 인정받았고, 5학년때는 성인 토익에서도 고득점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았으니 천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영어뿐만이 아니다. 수학이며 뭐든 참 잘한다. 영재반은 계속해서 들어가 수업을 받고 있다. 참 부러운 집이다.
또 다른 한 집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앞서 나갔던 친구이다.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말이면 말, 외모면 외모. 어디 한 군데 빠지는 곳이 없는 아이였다. 부모님의 좋은 유전자만 쏙쏙 다 가지고 태어난 것 같은 아이이다. 그런데 4학년이 되면서 치고 올라오는 친구들 속에서 자신이 보통이라고 생각하고, 공부가 하기 싫다고 선언한 아이가 되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놓을 수 없기에 어찌어찌 끌어가며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영재반에서 활약 중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 이야기이다. 아이들의 교육하면 빠질 수 없는, 내 주변 집들의 이야기이다. 부모님들의 만족과 기쁨이 큰 만큼 기대도 클 것이라 예상이 된다. 이 가정들의 공통점은 굉장한 공부량을 아이에게 강요했고, 아이가 잘 따라왔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학원표로 쭉 달려온 집도 있고, 부모님표로 힘들게 하면서 학원의 도움을 받은 집도 있다. 쉼 없이 달려오면서 여전히 해내고 있고, 앞으로도 잘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공부량의 절대적인 기준이 없지만 짐작되는 수준은 있다.
이렇게 학업적으로 앞서 쭉쭉 나가는 아이들을 볼 때면 무슨 배짱인지 느슨하게, 학원도 보내지 않고, 집에서 힘들게 시키지도 않은 우리 집 아이들에 대해 불안한 마음이 앞선다. 결과야 말할 것도 없다. 열심히 한 적이 없으니 대단한 결과를 내본 적이 없다. 다만 완전히 끈 놓고 놀지는 않았으니 겨우겨우 중위권의 선에 맞춰 앞으로 앞으로 나가고 있는 중이다.
아무리 태어나는 순간부터 앞만 보고 나아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요즘 아이들의 너무도 이른 경쟁과 교육 진도, 교육량 앞에 정신을 못 차리겠다. 내 기준이라는 것이, 엄마로서의 줏대라는 것이, 실오라기 같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내 나름의 신념이라는 것이, 불화산 같은 요즘 교육열에 쉽게 무너지려고 한다.
모두가 최상위권을 향해 절력질주 하고 있는데, 내가 뭐라도 된냥 반대파에 서며
'내 아이는 학원에 의지해서 기르지 않을래.',
'내 아이는 아이 의지 없이 엄마의 의지만 있는 과도한 경쟁은 안 시킬래.'
'나는 헬리콥터맘이 되거나 타이거맘이 되지 않을 거야.'
'느리지만 그게 옳은 것일 거야.'
라고 하며 살아왔었다.
대신 아이들을 코칭하기 위해, 내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공부했다. 책도 많이 읽고, 유튜브의 여러 교육 전문가의 말도 듣고 했다. 그러면서 내 나름의 기준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학생을 앞둔 지금 내 아이는 부인할 수 없는 중위권 실력이고, 부모님 주도하에 학원표든 부모님표이든 열심히 한 아이들은 이미 상위권 혹은 최상위권을 달려가고 있다. 심지어 우리에 비해 고강도의 학습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여유 있어 보인다. 이제는 크게 여유 부릴 시간이 많지 않아 보이는데, 너무도 큰 격차에 멘탈이 흔들리고 있다.
처음에는 그동안의 내 노력이 하나도 소용이 없었구나,라는 생각에 한탄스러웠다. 조금 지나니 내 아이를 탓하게 됐다. 내 아이가 뛰어난 아이가 아니라서 그런 거라며. 현재 내 아이의 실력을 부인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고, 내 노력을 비난받고 싶지 않아서 아이를 탓했던 것 같다. 그런 다음에는 내가 '수박 겉핡기식'의 육아를 한 것은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뭐 하나 똑 부러지게 못해서 그럴까?'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데 내 오만 때문에 그걸 알려고도 하지 않아서 그런가?'
'내가 무능력한 엄마라서 그런 것일까?'
'혹시 내가 아이들을 망가트리고 있는 건 아닐까?'
수도 없이, 이것저것 많은 이유들을 대며 나를 자책했다.
이 아이들의 지나치게 빠른 공부 속도가 정상이 아닐 텐데, 어느새 이제 나 또한 '그것이 맞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하며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숨 막혀하며, 답답해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 중학 수학 3학년까지 끝내 나야 한대, 중학 들어가서는 고등 수학을 3번을 돌아야 한대... 여전히 들려오는 이 미친 진도에 숨이 턱턱 막히고,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를 생각하며 혼자서 옷장 속으로 들어가 숨죽이며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