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원 May 12. 2023

오늘, 엄마로 살기 위해  "우울"을 말한다

  난 실패한 엄마이다.

  난 우울한 엄마이다.

  하지만 우울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다.

  그래서 오늘 하루를 살기 위해,

  난 "우울"을 이야기한다.

  정면으로 당당하게 싸우고 싶기 때문이다.

  싸울 힘이 생긴 것을 보니, 이제 밑바닥에서 벗어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내게 육아라는 것은 어렵고 버겁기만 하다. 많은 책들과 정보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것도 해야 할 것 같고 저것도 해야 할 것 같은 불안감!  더 좋은 정보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게다가  내 아이의 주변 아이들이 앞서 쭉쭉 나가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이리저리 못하고,  이 시대에 적응도 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나를 자책하게  된다. 그런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퇴적되면 나는 나 스스로를 "실패한 엄마", "진 엄마"가 된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라는 생각이 든다. 무능력한 엄마 탓에 내 아이가 뒤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니 내가 나로 사는 것보다 누군가의 엄마로 사는 게 이렇게 힘들 수가 없다. 학생일 때도 힘들었고, 간호사였을 때도 힘들었다. 하지만 잘 이겨냈다. "잘"까지는 모르겠지만 애써 이겨냈다. 나 한 사람만 다루면 되니 말이다. 내 잠 줄이면 됐고, 나만 독기 품으면 됐으니까. 내 감정이 약해질 때면 자극제를 찾아 약해진 감정을 일으켜  세우면 됐으니까. 그런데 육아는 다르다.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팀워크이다. 엄마는 리더가 되기도 하고 조력자가 되기도 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렵다. 말은 이토록 쉬운데, 그냥 뱉어낼 수 있는 말이 왜 이렇게 실천하기가 힘든지...

  

  아이는 내 욕심대로 자라지 않는다. 내가 육아를 공부하면 할수록, 내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내 아이에 대한 잔소리와 실망, 핀잔은 늘어난다. 아이의 표정이 일글어지고, 입이 삐죽 나오는 모습을 볼 때면 내 마음 역시 무거워진다.

 '공부, 그게 뭐라고 이렇게 아이를 아프게 하나!'

단단하지 못한 엄마는 이렇게 저렇게 아이를 놓아준다. 아이들의 공부 실력이 썩 좋지는 못할 수밖에. 그러면 그것을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으로 탓하며 아이를 나무란다.......

이 얼마나 정신병적인 행동이냔 말이다.


  "공부 감정을 잃지 않도록 난 아이가 힘들지 않도록 할 거야."

 "평생 공부해야 하는 거잖아. 그러니 지금 달려서 질리게 하면 안 돼."

 "공부 안 한 거치고는 나오잖아. 머리가 좋은 거야. 그럼 나중에 잘하겠지."

 "공부는 결국 자기가 하는 거야. 본인이 맘을 먹어야지. 그때를 기다려줄래."

숱한 말들이 내 마음을 친다. 그러면 기다려주면 될 것을...  마음은 그렇게 먹으면서도 실력이 늘지 않은 아이에게는  또 한바탕 쓰레기 같은 말들을 쏟아낸다.

"공부 안 하고 딴짓하더니..."

"야~~ 이 점수로 뭘 어떻게 할래?"

"이렇게 공부할 거면 말어. 그냥 얼른 딴 길 찾아봐."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난 또 다다다다, 미친 듯 잔소리를 해댄다. 그러고는 다시 교육 유튜브를 듣고 상위권 아이들은 어떻게 공부했는지 공부법을 엿본다. 내 아이도 저렇게 됐으면 좋겠다,라고 생각을 한다. 어느 부분에서도 손색없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욕심을 갖게 된다. 그런데 내 들끓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이는 헛짓을 하고, 딴짓을 한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간식을 찾으러 다니기 바쁘다. 자기의 공부에 관여하는 것을 기분 나빠한다. 사춘기의 툴툴거리는 말로 쏘아붙이듯 말을 하면 나는 비로소 나와 아이의 현실을 자각한다.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짐을 느낀다.


  난 실패한 엄마구나.

  난 무능력한 엄마구나.

  난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는 엄마구나.


사실 나는 알고 있다.

내 아이가 현재 중위권  아이라는 걸 인정하면 되고,

공부에 흥미가 없는 아이이고,

문해력이 떨어지는 아이이며,

수학적 해결 능력이 조금 낮은 수준의 아이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나의 이 무기력증, 우울감을 벗어날 수 있음을...


그런데 나는 받아들이는 걸 힘들어하고 있다. 심지어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조차도 말이다. 이러니 심리적 패배감, 우울감의 웅덩이는 더 깊어질 수밖에. 이대로 가는 것이 결국 득이 되지 않음을 안다. 그래서 벗어나보려고 한다.

행복한 아이로 만들기 위해.

엄마의 목표가 아닌 아이의 목표를 세우도록 돕고 지지해 줄 수 있도록.

아이가 실패할 수 있도록.

아이가 서러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그러기 위해서 난 오늘 내 우울을 이야기하고, 이 우울이 시작된 지점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무엇이 잘못되었지를 생각해 본다. 벗어나야 하기에. 나와 내 아이를 불행한 아이로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매거진의 이전글 40대 주부의 학습된 무기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