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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May 09. 2023

40대 주부의 학습된 무기력

  비가 온다. 집에 있는 것도 좋지만 집이란 공간에서 주말까지 있는 건 내게 가혹할 것 같아서  집 근처 카페로 나섰다. 잔잔한 음악이 깔려있는 밝은 빛의 핑크빛 카페. 이곳의 구석에 자리 잡아 앉는다. 커피에 샷 추가를 해서 괜히 위를 자극시켜 본다. 위든 뇌이든 내 신체 어떤 한 조직을 자극시키면 좀 나을까, 하고 말이다.

  

  책을 읽어도 변화 없고, 유튜브에서 강의를 들어도 내 삶에는 변화가 없다. 마음의 움직임이 간혹 있기는 하지만 아이들 밥을 하기 위해 일어나고, 일어난 김에 청소하고, 아이들을 돌본다. 다시 잘 수 없어 책도 읽고, 취미생활이란 것도 해본다. 아이들 관리도 느슨해진다. 이제  내가 타이트하다고, 내가 의욕이 넘친다고 그대로 끌어지지 않음을 안다. 그러니 내 안의 '의욕'이란 단어는 이미 바닷물에 젖어 파도에 찢기고 씻겨 내려가진 것이다.

  그래도 살고 있으니, 시간이 내게 아직은 삶을 허락해서 내 것이 되었으니 몸을 움직여본다. 그냥 있지는 못한다. 몸이라도 움직여야 정신이란 게 함께 움직이니 말이다. 이상하다. 몸이 먼저 움직일 때는 마음에 작은 생기가 생긴다. 하지만 마음이 먼저 움직일 때는 대부분이 몸의 움직임을 제한시킨다. 우울이라는 명목으로.


  남편의 편히 살라는 배려가 오랜 세월.. 내게 독이 되고 있음을 느낀다. 아이들의 양육을 핑계 삼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다. 내 나름의 노력을 한다. 사랑도 주고, 칭찬도 해주고, 간식도 챙겨주고, 밥도 챙겨주고, 엄마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늘 있어준다. 그게 엄마의 헌신이며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노력한 만큼 아이들이 크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육아는 성적표가 아님을 몰랐다. 그동안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시간들을 보내왔으니 육아도 그런 것인 줄 알았다. 육아를 하면 할수록 성과를 측정할 수 없는, 다른 가치의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내 아이가 영재가 아니고, 내 아이가 남들에 비해 앞서가는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게 느낄지도 모르겠으나 10년 넘게 육아를 해보니, '사람'을 키우는 것이지 '잘 나온 성적표'를 만드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을 알기까지(사실은 머리로는 충분히 인지하게 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난 무수히 많은 육아 도전을 했고 실패했으며, 육아 외에도 여러 자기 계발을 위해 애써왔으나 성과가 없었다. 물론 그 이유가 육아에 더 시간과 관심을 들여야 하니 내 개발에 혼혈의 힘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쨌든 나는 날마다 실패를 경험하며 살고 있다.  선택에 의한 정해진 실패였다.

  의욕을 앞세워 뭘 배우도 늘 제자리걸음이다. 육아를 성적표라고 생각했을 때에는 매일의 작은 실패들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음을, 내 밝았던 영혼을 좀먹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점점 의욕이 생기는 것 자체에 죄책감을 갖게 되었고, 이유 없는 눈치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주변에 숨기게 되었다. '어차피 며칠, 몇 달짜리일 거야.'라고 뒤에서 수군거릴까 봐!

  이걸 보고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하는 것일까? 난 이 단계를, 지금의  모습을  부인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도 사람이 살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고, 그럼에도 이 무기력증에서 벗어나가려 애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누구에게? 나 자신에게! 그리고 인정해주고 싶다. 그럴 수 있다고. 내 자신에게 관대해서가 아니라, 용기를 주고 싶어서이다.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을 것이다. 남편, 자식, 내 부모님, 시부모님이 내 의욕과 꿈, 그리고 실패, 무기력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겠는가? 가족도 이러하니 내 지인들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입만 아프다.  그러니 가여운 나에게, 지쳐 쓰러져있고, 자꾸 안 될 것 같다는 나에게... 나라도 용기를 줘야 하지 않겠는가?

   힘들 때는 내가 내려갈 수 있는 가장 밑바닥의 감정도 느껴보게 내버려 두련다. 그래야 일어날 힘도 생기겠지. 그래도 이렇게 글이라도 쓸 생각을 하고, 글을 읽을 힘이라도 있으니 난 참 희망적이라고 작은 소리로 내게 속삭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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