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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May 09. 2023

사춘기 Vs 우울증

  딸아이는 초등 6학년이다. 언젠가부터 말투와 행동이 참 예쁘지 않다. 예쁘게 예쁘게만 키우고 싶었으나, 사춘기란 바람 앞에서는 툭툭거리는 말투와 마른 나뭇가지의 끝자락처럼 거친 말투가 매일 매 순간 화살처럼 날아다닌다. 사춘기... 그게 그렇게 큰 바람이었던가? 인생에서 이렇게도 아픈 시기였던가?

  내 아이에게서 나타나는 이런 행동과 말투를 한 번도 상상하거나 예상해보지 못했다. 예민하기는 해도 고분고분하는 아이였고, 엄마를 좋아하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엉덩이가 무거워 책도 즐기는 아이였으며, 잘하고 싶은 욕심도 있고 생활 습관도 좋아서 이대로만 하면 참 좋겠다,라고 생각을 했었다. 머리가 특출 나게 좋지는 않지만 엉덩이 힘과 끈기는 좋으니 크게 걱정이 없었던 아이였다. 조금 느린 행동과 노력에 비해서 낮게 나오는 성과가 아쉽기는 했지만 가끔 야단을 쳤을 뿐, 남들에 비해 크게 소리 내지 않고 키웠던 것 같다.

  그래서 딸아이의 심리는 굉장히 안정적이라고 믿었고, 당연히 사춘기는 남의 일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그게 나의 오산이었다. 학습 또한 엄마표로 이것저것을 하며 꼼꼼히 잘해왔다고 믿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코로나가 터졌다. 다니던 학원도 다 끊고, 학교에 등교하는 날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유난히도 확진자가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학교 대면 수업보다는 온라인으로 하는 비대면 수업 일수가 더 많았다. 그렇게 딸아이는 3,4,5 학년을 지냈다. 그러는 동안 그냥 놀기만 할 수가 없어서 엄마표로 집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자기 주도를 위해 엄마 주도형으로 학습을 하게 된 것이었다.

   계획을 짜는데 아이의 동의를 얻었고, 아이가 크게 힘들지 않은 범위 내에서 학습을 진행했다. 나는 엄마표를 잘 해내기 위해 여러 육아서, 교육지도서를 보았다. 유튜브에서 교육 전문가들이 하는 여러 방송도 보았다. 그러면서 내가 그리는 엄마표 학습 방법이 생겼다. 그래서 아이와 그것을 나름대로 잘했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성과가 바로바로 나오지 않은 아이라서 여러 고민을 하며 열심히 해보려고 했다.

  그러다 아이가 5학년 2학기가 되기 전쯤 영어 학원을 원해서 영어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영어 학원을 보내면서도 아이가 학원에서 많이 배우고 오길 원해서 교육비의 중요성에 대해 틈나는 대로 이야기를 했다. 우리 부부의 가치관이라고 하면 가치관이랄까? "학원비는 진짜 필요할 때 쓰자.", " 초, 중등 때부터 달리지 말자."였다. 그래서 아이가 원하는 것들을 바로바로 사주는 것은 금했으며, 경제적 절제에 대해 많이 일러주었다. 학원비도 그중 하나의 항목이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원해서 학원을 다니고 귀한 학원비를 쓰고 있으니 열심히 해라, 숙제는 했니, 지금은 어느 범위의 수업을 받고 있니, 수업 때는 어떤 방식으로 수업을 하니, 등등의 질문과 관찰을 하게 되었다. 그게 답답해서였을까? 아니면 6학년이 되면서 주변 아이들의 말투가 그렇게 변하면서 함께 변하는 것일까? 내 아이는 짜증도 자주 내고, 공부보다는 거울 앞에 있는 시간이 많고, 핸드폰을 보는 시간이 많아졌으며, 혼자서 딴짓하는 시간이 많이 늘었다. 그냥 많이 는 정도가 아닌 그냥 시간의 절반 이상으로 그렇게 보내고 있다.

  집중하는 시간이 3학년때보다도 더 짧아졌으며, 실력은 4학년 시절에서 멈춰버렸다. 게다가 거실 공부를 하다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더 이상 방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 간식을 찾으러 나올 때나 화장실을 가려고 할 때만 나온다. 화장실에서도 기본 30분, 샤워는 기본 40분 이상이다. 집에서 내 딸을 부르는 시간, 횟수가 늘어났다.

  

   아이가 이렇게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시간 관리에는 거의 0으로 상태인 아이를 보면 '이러다 진짜 어떻게 되려고 그러나?' 싶은 마음에 야단도 치게 되고, 허공에 대고 아이 이름을 수시로 부른다.  집이 넓다는 이유로 소리 지르듯 아이를 부르기도 한다.  거친 행동, 말투를 이유로 매도 때려보았다. 결국 한두 대이지만 엉덩이 매를 때렸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아이의 행동과 말투는 점점 사춘기 아이의 전형적인 형태로 변해갔다.

  나는 엄마로서의 무능력감을 느끼며, 우울감이 쌓여갔다. 심지어 최근에는 의욕도 없어짐은 물론이거니와 주의집중력도 많이 낮아지면서 해야 할 일들을 자꾸 놓치게 되었다. 아이들 문제를 포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말이 포기이지 어떻게 포기가 되겠는가? 자꾸 방 안으로 들어가는 아이를 감시하는 감시자가 되어버리고 있다. 아이의 이름을 수시로 부르고, 뭐 하고 있니? 등등을 입에 달고 있는 듯한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런 내 모습이 나도 싫어지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생각과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했기에 내 노력과는 상관없이 아이가 이렇게 되었나,라는 생각에 우울감이 오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우울감을 넘어 우울증 중기의 증상도 보이고 있다. 우울증 자가 검사를 해봤더니 중증 정도의 우울증 점수가 나왔다. 집밖으로 나가는 것을 싫어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까지 꺼려하게 되었다. 의욕은 사라지고, 집안일도 겨우겨우 해내고 있다. 아이의 이런 모습을 고쳐보겠다며 일을 그만두면서부터 우울증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아이의 모습을 더욱 관찰할 시간이 많으니 답답함이 극에 닿았다.

   

   답답하니.. 몇 마디의 말을 적어본다. 두서도 없는 글들...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아이를 믿고 내버려 두는 것이 맞는 것인지... 참 모르겠다. 아마 아이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탓인 것 같다. 아직 가보지 않은 미래이니, 이러다 아이가 귀한 시간을 그냥 보내게 될까 불안한 마음이 다. 머리로는 '나나 내 아이나 이 시기를 잘 이겨낼 거야.'라고 생각해 보지만 왜 진정한 믿음이 생기지 않는지... 이런 내가 답답하기만 하다.

  엄마라는 역할이 너무도 힘들고 어려움을 매일, 매 순간 느끼며 살고 있는 요즘이다. 그래도 좋은 엄마, 지지해 주는 엄마는 되고 싶고, 지금의 아이의 모습은 인정해주지 않으니 이 얼마나 모순적인 태도인지 모르겠다.

  흔한 말로 "사춘기와 갱년기가 싸우면 갱년기가 이긴다."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나의 우울증을 이겨내야한다는 것을 안다. "사춘기 Vs 우울증"은 싸움의 대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서로를 이해하고 이겨내야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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