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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Dec 11. 2023

엄마사람의 시간 계획표는 있으십니까?

   "오늘 오후 계획표를 짜보자. 시간대별로 할 일을 계획해서 칠판에 적어봐."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에게 매일 하는 말이다.


  아이들에게는 계획표가 있어야, 하루 목표가, 일주일 목표가 있어야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시간 귀한 줄 알게 된다고 얘기한다.  예비 중1, 초등학교 6학년 생 딸은 이 말에 시끈둥한다. 아들은 그냥 무심하게 내 말을 흘린다. 하지만 나의 몇 번의 권유, 아니 협박에 아이들은 거실벽 한편에 붙여져 있는 블랙 칠판에 3시부터의 시간표, 계획표를 적는다.  그러면 나는 만족해한다. 만족이라는 단어보다는 안도라는 어휘가 맞을 듯하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허트로 쓰는 시간을 줄일 수도 있겠다는 마음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이 시간표를 적었다고 해서 그대로 다 지키는 일은 절대 없다. 특히 큰 아이는 자기 고집이 센 아이인 데다, 사춘기 문을 열고 들어온 아이라서 내가 세세하게 터치하면 싫어하는 기색을 역력하게 보이기 때문에 일일이 다 간섭할 수 없어 자신의 생각대로 시간표를 과하게 짜놓는다. 그러니 지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니 매일매일 시간표대로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하지만 첫째 아이는 그것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엄마의 성화에 마지못해 채워만 놓은 의미를 두지 않는 시간표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 왜 굳이 시간표를, 계획표를 짜라고 하나요?라는 질문이 나올 법도 할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매일 아이들에게 시간표, 계획표를 고집한다. 시간표, 계획표를 짜는 행위 자체가 바로 내 하루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만 쉬어도 시간은 흘러간다. 

째깍째깍....  째깍째깍.....  째깍째깍...  째깍째깍....



    아이들의 시간만 그런 것은 아니다. 엄마 사람인 나의 시간도 그렇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3시에서 4시가 되어있고, 곧 5시가 되어 있다.......  이렇게 곧 잠들 시간이 되어있다. 그런데 실상을 보면 말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뭔가를 한다. 유튜브를 보기도 하고, 네이버 검색을 하기도 하고, 화장실에서 멍하니 있기도 하고, 청소를 하기도 있다. 하지만 잠들 시간이 돌아와서 오늘의 내 하루를 살펴보면 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낸 사람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이 느끼는 건... 내가 의미 없는 시간을 많이 보냈다는 뜻이다. 

    엄마의 시간은 그냥 흘러도 되는 걸까? 집정리하고 청소하고, 집안일을 하고, 가족들을 위한 식사 준비만 하면 엄마의 시간은 제대로 흘러가는 것일까? 물론 시간에는 문제가 없다. 엄마 사람인 나는 나의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마냥 아깝다. 가족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집안일을 하는 것은 중요한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나의 시간이 이렇게만 보내진다면 이 시간은 낭비하는 시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나 유튜브를 보고 있으면 정말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간다.

     가끔은 잠깐 교육 정보를 얻겠다고 본 유튜브를 이어 이어 보다가 결국 아이들 하교 시간이 되기도 한다. 유튜브를 켜놓고 집안일을 하기는 하지만 주로는 처음에 의도했던 교육 정보 외의 드라마 짤이나 연예인 뒷얘기 방송을 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럴 때면 난 어김없이 뻑뻑해진 눈을 깜박이며 나를 자책하기 시작한다. 왜 오전 시간을 이렇게 보냈을까? 운동을 해야 하는데 못하고. 그렇다고 청소를 깔끔하게 한 것도 아니고, 책을 읽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면서 나를 자책해 봤자 괴로움만 쌓일 뿐 행동의 변화가 없다. 

    그때 생각했다. 

    '내가 내 삶에, 내 한 달에, 내 일주일에, 내 하루에 대한 목표가 없구나. 육아를 하니... 아이들 없는 시간은 시간이 귀한 줄 모르고 함부로 쓰고 있구나. 내 하루에 대한 목표를 세워야겠다, 내 하루에 대한 목표를 세워야겠구나.' 

시간표는 아이들만을 위한 방학 숙제가 아니다. 시간 계획표를 세우는 것은 모든 연령에 아울러져 필요한 활동이다. 아이들에게는 목표를 세워라, 시간 계획표를 짜봐라 한다. 목표가 있어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모르느냐 잔소리를 해댄다. 아이들의 시간만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나는 나의 시간을 어느 누구보다도 허술하게 낭비를 하며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하는 잔소리를 내게 해보았다. 유튜브로 하루 2시간을 썼다며 큰아이를 나무랐는데 3시간이나 유튜브를 보는 내게 호되게 야단을 쳤다. 정신 차리라고. 이대로 의미 없는 시간들을 보내서 뭘 이루겠냐고? 주부로 살면서 영원히 사회와는 단절된 채 살 거냐고? 이렇게 무능력하게 시간을 보낼 거냐고? 엄마 사람의 시간 계획표가 어느 누구의 시간 계획표보다 하루 계획표보다 아이들에게 더 의미를 주고 감동이 되도록 살 수 있는 거 아니냐며 나를 나무랐다. 


     엄마 사람의 시간 계획표, 하루 목표, 하루 성공, 일주일 목표, 일주일 성공이 아이들에게는 살아있는 본보기, 옆에서 함께 동행하며 보는 책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엄마 사람이니, 엄마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이지 않은가? 더 이상 의미 없는 하루를 보내서, 내 하루에 미안해지고 싶지가 않다. 꼭 대단한 성공을 하지 않아도 되고, 꼭 유명해지지 않아도 된다. 꼭 뭔가를 이루지 않아도 된다. 그냥 내 하루에 의미 있는 최선을 다 하며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나는 오늘부터 엄마 사람 시간 계획표를 짜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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