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육아의 길.
"언니, 생일 축하해요! 와~~ 즐겁다. 이렇게 밤에 나와보고."
"야~ 고마워. 생일이라고 이렇게 만나주고."
"에이~ 이 핑계로 이렇게 우리만의 시간을 가져보지요. 난 오히려 언니가 오늘 태어나줘서 고맙네."
실없지만 진심인 대화들을 오가며 소맥으로 가득 채운 잔을 가볍게 부딪혀본다. '짠' 소리가 맑다. '솔'음은 되려나? 우리에게 '오늘은 애들 생각 말고 즐거운 수다 타임을 갖자. 해방의 시간을 가져보자'라고 친절하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전업맘이 즐거운 시간을 가져보자,라고 해도 기껏해야 남이 해주는 안주에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맥주를 가져다주는 것을 즐기는 것뿐이다. 결혼 전에는 당연하게 누렸던 것들이 결혼 후에는, 특히 전업맘이 된 후로는 당연한 게 아니다.
자발적으로 부엌을 차지하게 되었다. 음식 준비부터 음식 하는 것, 식탁 세팅하는 것, 식사 중 부족한 것들을 나르는 것, 식탁을 치우는 것, 설거지하는 것 등 모든 것이 내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다. 딱히 남편과 역할을 나눈 것은 아니지만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안일은 내 몫, 바깥일은 남편 몫이 되어버렸다. 그게 합리적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집안일에 특화가 되어 있고, 남편은 바깥일에 뇌가 세팅이 되어 있다고 믿게 된 것이다. 누가 준 믿음이었는지, 그것은 알길 없지만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동안 난 그렇게 내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나와 같은 전업맘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바로 누군가가 해주는 밥을 식탁에 앉아서 얻어먹는 시간이다. 게다가 뒷정리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일이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작은 일들이 행복이라는 것을 전업맘이 되고서야 알게 되었다. 왜 친정 엄마의 밥을 그리워하는지, 왜 호캉스를 원하는지 말이다. 친정 엄마의 음식이 그리운 건 내가 요리를 하지 않고도 내게 가장 친근한 맛을 찾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캉스를 하는 이유는 주방에 내가 없어도 내 가족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고, 내가 청소기를 들지 않아도 내 가족들을 쾌적한 환경에서 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얼마 만에 누군가에게 대접받는 술상이란 말이냐. 거품이 적당히 올라온 소맥을 한 모금 마시면서 그 시원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입만 시원한 것이 아니었다. 혀의 감각 기관에서 보내는 목축임의 시원함이 뇌의 신경 세포체를 통해 전달받기로는 해방으로 받아들여졌다. 감각과 사고는 다르다는 것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던가? 오늘만큼은, 아니 이 시간만큼은 나를 즐기리라, 내 육체가 편하도록, 맘껏 게으르도록 내버려두리라 마음먹었다.
"야~ 나 오늘도 딸이랑 한 따까리 했다."
"아이코, 왜요? 잘하잖아요."
"뭘 잘해. 모르는 소리. 아~ 모르겠어. 갈 길을 잃은 것 같아!"
"왜요, 언니. 잘하고 계시면서... 그리고 우리도 부모 노릇을 배운 적이 없는데 그건 다 그럴 거예요."
"그런가? 나만 그러는 것 같아. 내가 보기엔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더 잘할 것 같은데, 애는 안 하네. 속 터지지. 그런데 그걸 야단치다가도 공부가 전부는 아닌데, 하면서 나 혼자서도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을 해."
"그렇군요. 요즘 많이 힘들구나, 언니가."
"응. 사춘기가 되어가니까 진짜 더 모르겠어. 내가 너무 무능력하게 느껴져."
점점 육아의 길을 잃어가고 있는 위기의 전업맘들이다. 워킹맘보다는 아이들에게 더 시간을 들이고, 신경을 쓰고, 정보를 더 찾아서 잘 키울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어린 시절에는 얌전히 잘 따라와 주던 아이들에게 더 기대를 걸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강해질수록 아이들과 부딪히는 시간들이 많아짐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그게 단순히 아이의 반항이라고 생각했다. 살아도 30년 더 많이 산 내가 더 잘 알 것이라는 착각으로 아이를 수레에 태워 끌고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자꾸 그 수레를 멈추려고 한다. 고작 시속 20km밖에 되지 않는데 말이다. 20km/h에도 멀미가 나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