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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Jun 30. 2022

사춘기 누나 동생, 냥이

- 진정 날 웃게 하는 이는 너뿐!

   "언니~ 오늘 같이 산책할래요?"

   "그래, 그래. 우리 애기 자는 동안 산책하자. 산책하고 우리 집에 가서 우리 애기 봐도 돼."

 우리 애기... 친한 지인네에 애기가 생겼다.  외동딸을 키우는 지인네에 예쁜 둘째가 생긴 것이다. 애기... 이 단어만으로도 아기 냄새가 나고, 보드라운 느낌에 기분이 좋다. 지난주 친한 언니는 차로 30여분 달려가 냥이를 입양해왔다.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 그것이 가벼이 생각하고 즉흥적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먼 길을 차로 달리며 아마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이 결정이 옳은 것일까? 난 동물을 그렇게 사랑하지 않는데, 이런 내가 애완동물이란 걸 키워도 되는 것일까? 뭐 이렇게까지 생각하나,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난 이해한다. 책임감이 유독 강한 사람들은 하나를 결정할 때 누구보다도 더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는 것을.

  초 5학년쯤이면 아이들의 말대꾸가 본격화되며, 엄마의 잔소리를 적당히 씹어준다. 엄마를 무시하듯 말이다. 엄마의 주도하에 했던 공부들도 슬슬 자기 주도하에 느슨하게 하게 된다. 초 5의 여자아이들은 하이톤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종종 나오기도 한다. 소프라노 연습을 이런 식으로 하게 되는 것인 걸까? 이쯤 해서의 엄마들의 반응은 뭐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특히나 첫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라면 더더욱! 이런 아이들의 변화가 너무도 낯설기에 놀래서 저절로 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엄마의 언성은 높아지고 아이의 짜증은 늘어난다. 점점 이런 상황이 싫고, 싫으니 아이의 단점만 크게 보이니 더 문제이다. 분명 내가 낳은 내 딸인데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머리를 안 감는 것도 밉고, 아침잠 많은 것도 밉고, 느릿느릿 행동하는 것도 밉고, 먹은 그릇 그대로 두는 것도 밉다. 애도 어른도 점점 웃을 일이 줄어든다. 가끔 주말에 개그 프로를 보면서 잠깐 웃는 것이 전부이다.

  초 5학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러면 큰일이다. 그럼 본격적으로 사춘기에 돌입하고, 그 중심에 이르면 그때는 정말 답이 나오지 않는다. 냉동고보다 더 추운 집안 분위기는 어쩔 거며, 갱년기를 준비하는 엄마들의 마음 상태에 불을 붙일 게 뻔한데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가 고민이다.  엄마와 딸의 대화가 점점 단절되고 있다. 엄마와 아이들만 이런가? 남편의 퇴근 시간에 되살아나는 엄마의 한숨 소리는 이미 현관문을 넘어갔다. 미간의 주름만 늘고, 점점 아이를 키우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는 못할망정 불행하기까지는 말아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에 비참한 느낌마저 든다. 그 사이에서 불편하기는 남편도 마찬가지이다. 집에 왔는데, 왜 더 노동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들지? 이거 이상한데? 이런 생각에 남편 역시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난 그냥 최선을 다했는데... 내가 내 애한테 못해준 게 뭐라고... 대화는커녕 웃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아이와의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어 남편과 술 한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얘기를 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남편도 애를 키워보는 것이 처음이니, 나와 상황이 다를게 무엇이란 말인가? 커가는 아이를,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기 위해 악을 쓰는 아이를 너 자신을 알지 말라고, 그만 커도 된다고, 어른이 되지 말라고 성장을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시간이라는 것은 일방통행이라 참 안타까운 일이다.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집순이, 집돌이 부부는 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주말 캠핑을 다니기로 했다. 캠핑 장비들을 하나하나 장만할 때마다 아이의 반응이 하나하나 나오기 시작하니, '그래, 이게 방법인가 보다.' 라며 기대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열심히 먹고만 올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잠자리가 불편한데 오자고 했다는 딸의 반응에 다시 가족의 분위기는 싸해지게 되었다. 부드러워지고 싶은데, 웃고 싶은데, 딸과는 결국 웃을 수 없는 것인가? 사춘기가 원래 이랬던 것인가? 내가 사춘기 때도 그랬었나? 일단 캠핑은 좋은 해결책이 아님을 느끼게 되었다. 플랜 A는 잠시 접어두고 다른 플랜 B를 생각하게 되었다. 오랜 고민 끝에 찾아낸 해결책이 '애완동물을 키우기'였다.  

  그런데 플랜 B는 고민이 많이 된다. 왜냐하면 생명체이지 않은가? 플랜 A인 캠핑처럼 안 맞는다고 그만두거나 버릴 수 없는 노릇이기에 고민을 오랫동안 하게 되었다. 가족으로 들이는 것인데, 우리 가족에게 맞을지도 걱정이고, 인간 새끼인 내 자식도 이렇게 힘든데 동물 새끼를 내가 키워낼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라면 뭐라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갓난 애를 키우듯 고생할  각오를 하고 애견샵으로 향하게 된 것이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태어난 지 두달도 안된 이 냥이 녀석이 요물이었다. 이 녀석이 거실로 오면 세 의 가족이 거실로 움직여 웃고 있고, 냥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웃으며 반응하며 딸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학교에서 돌아와서도, 학원에서 돌아올 때도 "엄마, 아드리앙(수컷 고양이의 이름) 잘 있어?" 라며 다정하게 묻는 딸에게 "웅. 지금 낮잠 실컷 자고 일어나서 혼자 잘 놀고 있네." 하며 부드러운 솔~음으로 얘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애인과 헤어져 슬퍼하는 친구에게 "야~ 사랑은 사랑으로 해결해야 돼. 내가 좋은 녀석 소개해줄게."라고 말한 적이 있다. 생명체의 문제는 생명체로 해결하는 것이 맞나 보다. 태어난 지 두 달 밖에 되지 않은 이 고양이 녀석이 집안의 분위기를 단시간에 바꿀지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생명체의 놀라움이며, 사랑을 주고 싶고 받고 싶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은 힘이 놀라운 것이다.  어쩌면 사춘기 누나 된 딸도 고양이를 핑계 삼아 엄마에게 부드럽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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