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이란 단어가 설레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불합격"이란 단어에 아쉬워하고 슬퍼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지난주 나는 16년 만에 면접이라는 것을 보았다. 아~ 아니구나. 5~6년 전에 아르바이트라도 해볼 요량으로 면접을 본 적이 있었으니 면접이란 경험이 꼭 16년 만은 아니지만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에 이제야 해보는 값진 경험임에는 분명하다. 면접에 대한 첫 기억 때문인가? 면접을 앞두고 긴장이 되었다.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머리는 자르고 가는 것이 좋을지, 어떤 질문이 나올지...
면접을 앞두고 20대에 경험했던 첫 면접을 떠올리게 되었다. 20대 때의 면접은 치열했다. 여름 한낮의 햇볕처럼 '쨍쨍'거리며 무더웠다. 대형 병원의 한 대기실에는 몇십 명, 몇 백 명이나 되는 면접 대기자들이 하나같이 긴장된 얼굴을 한 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있었다. 대부분의 면접생들은 검은 정장 투피스 치마를 입었고, 머리는 뒤로 하나로 묶은 채 그물망에 곱게 넣었다. 꼿꼿하게 허리를 세운채로 입은 중얼중얼, 마치 예상 질문을 받아 연습을 하듯 조그맣게 움직였다.
그중에서도 나는 제일 긴장하며 떨고 있는 1인이었을 것이다. 아침에 약국에 들러 청심환을 2개를 샀다. 그 당시 가난한 대학생이었던 내가 하나에 5000원, 2개에 10000원이나 하는 꽤 비싼 청심환을 살 정도였으니 면접을 앞두고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이른 아침 버스를 타면서 먹었던 청심환 1알은 크게 효과가 없었다. 뭔가 몸의 상태를 차분하게 하는 것 같았지만 어찌나 심장이 빨리 뛰던지 그 쿵쾅거리는 심장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고 꽝꽝 거리는 심장의 소리 역시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기분의 상태와 몸의 상태가 따로 노는 아주 불일치한 경험을 한 셈이다.
면접에 실수를 하지는 않았지만 내 목소리는 바이브레이션이 꽤나 잘 되는 목소리였다. 그 바이브레이션으로 노래를 했더라면 전국 노래자랑에서 못해도 인기상은 받았을 텐데, 아쉽게도 면접 당일에만 나오는 희한한 현상이다. 그만큼 나는 면접을 앞두고는 늘 긴장하는 사람이다. 나이가 들어도 면접이 두렵고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이치 인가 싶다.
나를 거짓으로 보여주겠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대한 나란 사람을 잘 보이고 싶었다. 20대 때에도 그랬고, 40 때인 지금도 그렇다. 평상시에는 꽤 그럴싸한 사람이 아니고 부족함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면접일만큼은, 면접관에게만큼은, 최대한 예쁘게 보이고 싶었고, 꽤 괜찮은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었고, 꽤나 능력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싶었다. 나를 과대 포장해서 보여주려고 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아~ 이 마음이었구나.
이 마음이 면접에서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구나! 꽤 괜찮은 사람으로, 쓸모 있는 사람으로 보여서 그들의 선택을 받고 싶었다. 그들의 첫 번째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게 나의 본마음이었다. 물론 20대에는 꼭 합격해야 해야 돼, 안 그러면 난 먹고살 수가 없어, 안 그러면 난 부끄러워 살 수가 없어, 라는 절박한 마음이 있었으니 그 포장을 더 크게 부풀렸을 것이다. 그러려니 청심환에도 내 심장이 마구잡이로 뛰었을 것이다.
40대의 나는 20대 때의 절박함까지는 아니지만 여전히 나를 더 잘 보이기 위해 겉을 예쁘게 채색하게 된다. 20대 때에는, 때가 되어 나를 먹여 살리기 위한 몸의 절박함이었지만 40대 전업맘, 경단력의 재취업은 보잘것없어 보이고 이제로 쓸모없는 인간이 될까 두려워하는 나의 내면을 살리기 위한 마음의 애절함으로 나를 포장하게 되는 것 같다.
면접 당일 아침에도 정장 치마를 입었다, 다시 정장 바지로 갈아입고, 블라우스를 입었다가 티로 입었다가 다시 블라우스로 갈아입는 등 낯설기만 한 면접 복장에 신경을 썼다. 아침부터 샤워를 하고, 가족들 아침을 챙겨주고, 나도 치장하고, 대충 식탁을 정리한 후 집을 나섰다. 20대의 면접일은 샤워하고 나만 치장하고 나왔을 뿐인데 40대의 면접날은 그렇지가 않다. 아마 워킹맘들은 오늘 내가 경험한 분주한 아침을 매일 하고 있을 것이다.
붐비는 지하철을 타고 면접을 보기 위해 들어선 건물에서는 드라마 '미생'에서 보았을 법한 일반 직장인들이 많았다. 정장 바지에 와이셔츠, 넥타이를 맨 남자들과 하이힐과 정장 치마, 실크 블라우스를 입은 세련된 차림의 여성들과 함께 탄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마치 완벽하게 외계인으로 느껴졌다. 그들은 지금의 삶이 꽤나 자연스러울 텐지만 전업맘이 보는 그들은 상당히 멋진 프로들로 보였다. 나를 신경 쓰지 않고 하는 회사 이야기, 업무 이야기는 멋스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전업맘, 경단력 10여 년 동안 나는 촌뜨기가 되어버렸다. 사회라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가정이라는 산골에서 살아와 때 묻지는 않았으나 촌스럽고 대화 내용도 폭넓지 않은 그런 산골 아주머니가 된 것이다. 전업맘을 비하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내 모습은 그랬다. 비교 대상이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이라면 말이다.
면접관 앞에서 긴장할 줄 알았다. 실제로 면접관을 기다리면서 책을 펼쳤다 닫았다를 몇 번 했던 것 같다. '또각또각' 멋스러운 구둣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벌떡 일어나 인사를 했다. 그렇게 면접은 시작이 되었다. 40분이 넘도록 이 얘기 저 얘기를 묻고 답하였다. 내가 경험했던 20대 때의 면접의 분위기와는 너무 달랐다. 편안한 분위기였으나 불합격을 예고한 분위기였다.
"음...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에요? 너무 어리지 않나요? "
아~ 불합격 이유 첫 번째구나!
"음... 이런 쪽 일을 한 번도 안 해보셨군요. 그럼 꽤나 힘드실 텐데..."
아~ 불합격 이유 두 번째구나!
"석 달은 페이가 너무 적은데, 일은 적응하느라 힘드셔서 많이들 그때 포기하시더라고요."
아~ 이건 나 스스로 이쯤 해서 포기하라는 권유인가? 그래도 꽤나 예의 있는 면접관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학부모님들 상담이 있어서 스트레스받아해요. 상담 같은 건 안 해 보셨죠?"
아~ 불합격 이유 세 번째구나!
대화 속 질문들에서 나는 나의 불합격 이유들을 찾아냈다. 이건 불합격을 암시하는 질문 들일 테니... 그렇게 모처럼만의 면접이라 설레면서도 즐거웠지만 힘이 빠지는 시간을 마치고 건물 밖을 빠져나오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봤냐"라고. 20대 때에는 지금의 남편이 나의 남자 친구였다. 20대의 그때에도 남편도 똑같이 전화를 했었다. "잘 봤냐"라고!
떨림과 설렘, 긴장감, 두려움은 20대 때도 40대 때도 같은데, 질문의 내용이 다르고, 걸림돌이 다르다. 20대의 나는 내 능력이 나의 걸림돌이었는데, 40대의 나는 아이들과 내 능력이 걸림돌이다. 하지만 20대의 나도, 40대의 나도 면접을 보고 난 후, 아쉬움은 비슷하다. A 질문에 B라고 얘기할 것을... 그리고 합격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 역시 같다.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불편한 정장을 벗고는 냉장고에서 이 반찬, 저 반찬을 꺼내 밥을 먹었다. 양푼에 비빔밥을 해 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면 더 초라해 보일까 봐 그것만은 못하겠더라. 그래도 정규직으로는 오래간만에 보는 면접인데 불합격했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아이들과 남편에게 뭐라고 얘기를 해야 하나... 밥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몰랐다. 경제적 인간으로 살아보려는 게 쉽지 않은 것이구나, 새삼 느끼며 남편이 더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상하다. 집에서만큼은 내가 능력자이다. 돌아오자마자 부엌을 치우는 것, 세탁실을 정리하는 것, 집안 정리하는 것, 아이들 공부 스케줄 관리해주는 것, 아이들 모르는 것에 대답해주는 것 등은 자신 있게 척척 하고 있다. 내 우물 안 세상! 이 세상이 전부라면 나는 정말 만능자인데! 오후가 또 정신없이 지나갔다.
오후 5시 무렵, 한 통의 메시지가 왔다. "안녕하세요. 금일 면접 결과 합격으로 안내드립니다....."
캬오~~~ 합격, 합격이란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저 진짜 합격한 거예요? 진짜죠?"
"네. 합격이십니다. 말씀드렸듯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에요..........(블라블라 블라)"
와우~~~ 합격이라니. 남편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고, 아이들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 이제 엄마 일한다고! 일하는 엄마라고!
전업맘에게도 "합격"이란 소식은 참 반갑다. 합격 소식이 너무도 즐겁다. 이렇게 보면 마음만은 아직 젊은가 보다. 20대와 40대가 따로 없는 순간이 있는 것 같다. 합격이라는 소식을 들을 때는 적어도 나는 20대도 40대도 아니었다. 취준생도 경단녀도 아닌 그냥 한 인간인 것이다. 감사하다, 다시 가슴을 뛰게 해 주었음에...
그리고 전업맘, 경단녀의 '다시 사회인'을 축하하고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