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맘의 고민은 산더미이지만 전적으로 믿어보렵니다.
재취업의 합격 소식을 듣고는 기쁨과 동시에 찾아온 녀석이 있다. 바로 '걱정'이다. 당장 입문 교육 일주일이 걱정이다. 입문 교육은 본사의 교육 센터로 가서 일주일간 아침부터 저녁까지 업무에 필요한 지식들을 교육받는 것이다. 그래도 참 배려 깊게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나의 첫 직장에서는 3주간인지 한 달간인지 교육관에 갇혀(?) 교육을 받았는데, 그래도 아이 엄마들이 대부분 인터라 이것을 최대한 배려해준 교육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회사 측의 배려에도 걱정이 되기는 마찬가지이다. 한 번도 아이들을 혼자서 두고 어딜 가본 적이 없는 전업맘이다. 내 아이들이 미워 죽을 것 같아도 슈퍼로 잠깐 도피하며 그 상황을 피해보려고 했을 뿐, 아이들에게서 떨어져 어디를 가본 적이 없다. 그러니 하교 후 아이들만 있는 시간, 학원을 오가는 거리가 걱정이 된다.
'간식을 잘 챙겨 먹을 수 있으려나?'
'혹시 나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지?'
'학원은 진짜 혼자서 갈 수 있을까?'
'집에 와서 혼자 있는 시간에 아이가 외로워하면 어떻게 하지?'
'엄마 없다고 제멋대로 아이스크림 먹고, TV만 보고 있으면 어떻게 하지?'
등등의 사소한 것들의 걱정거리가 대부분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녀오면 늘 엄마가 있었던 집이었고, 심지어 둘째 아이는 하교할 때 늘 학교 앞까지 데리러 가고, 학원에 데려다주며 기다렸다 같이 걸어오기를 반복했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엄마의 재취업으로 인해 이전과 전혀 다른 자신들의 시간을 보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이들에 대한 믿음보다는 불신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다.
아이들에게 자율성을 주며, 자기 주도성을 키워주는 육아를 하겠다고 하면서도 난 늘 아이들 옆에서 많은 부분을 챙겨주었다. 엄마인 내가 보기에는 너무도 어리고 부족해 보이는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초등 5학년인 딸아이도 아직 혼자서 버스나 지하철을 타 본 적이 없다. 혼자서 큰 대형 마트를 가본 적이 없으며, 규모 있는 문방구를 가본 적도 없다. 늘 나와 함께였다. 아이들의 안전을 이유로 난 늘 아이들 곁에 있어주는 엄마였다.
그게 워킹맘은 해줄 수 없지만 전업맘이 해줄 수 있는 특혜라고 생각을 했었다.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알아야 하고, 알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다. 아이들 역시 그런 엄마를 답답해하기보다는 좋아했다. 그래서 집 앞 놀이터를 가더라도 함께 가기를 원했고, 내가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에도 함께 가기를 원했다. 나와 아이들은 그렇게 보이지 않은 끈으로 서로를 묶어두고, 서로에게 만족해하고 안심했다.
아이들이 언제든 엄마의 냄새가 맡고 싶으면 안아줄 수 있는 거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정서에 그만한 것은 없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엄마가 없는 자리가 크면 아이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길 것처럼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소문들이 더 크게 들렸던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그런 소문들을 이유 삼아 전업맘으로서의 나의 업적을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알리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정 엄마는 나와는 다른 워킹맘이었다. 늘 일을 놓아보신 적이 없으신 분이시다. 직장에 다니신 것은 아니시지만 시골에서 논, 밭, 바다일까지 닥치는 대로 하며 돈을 직접 버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셨다. 전라도 끝자락 시골에 사시기도 하시지만 70이 넘은 나이에도 일을 놓지 않고 있기도 하다.
"다음 주에 우리 애들만 집에 잘 있을지 모르겠어."
"그러게. 한 번도 지들끼리 없어 나서, 걱정이 되긴 허겄다."
"그러니까. 애들끼리 잘 있겠지? 학원이며 간식도 걱정이고, 집에 혼자 있는 시간들이 걱정이네."
"잘허겄지. 인제 애들 많이 컸잖어."
"그르게. 이제 보니까 혼자서 수영 다니고, 학원 다니는 애들도 꽤 있더라. 워킹맘들 아이들은 다 스스로 해내고 있을 텐데 말이야."
"암만. 니들도 그랬잖어."
"하긴. 나도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밥해놓고 엄마, 아빠 기다렸으니... 그래도 혼자서 숙제 다 하고 그랬어."
"잘할 것이다. 그동안 니가 잘 봐놓았잖아."
생각해보니 나의 어린 시절은 엄마가 바빠서 집에 계실 때도 있었지만 안 계실 때도 있었다. 물론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계시기는 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집에 어르신들이 없으니 더 야무지게 내 일을 챙겼던 것 같다. 학교에 다녀와서 숙제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저녁때가 되면 방 청소와 밥 하기 등을 스스로 해냈다.
그때의 엄마도 어린 나와 내 동생만 놓고 일을 가실 때 불안해하셨을까?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친정 엄마는 서운할 정도로 걱정을 하지 않으셨다. 고등학교 때 도시로 나와서 살 때도, 대학 때 혼자서 타 도시로 옮겨 살 때에도, 직장 다닐 때 반지하 방을 얻어 살 때에도 크게 걱정을 하지 않으셨다. 왜 그러셨을까? 그건 아마 나를 전적으로 믿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믿음을 나도 알기에 나는 엇나가지 않으려고 더 애를 썼던 것 같다.
나도 내 애들을 믿어봐야겠다. 마냥 어린애 같다는 그런 생각 말고, 진짜 아이들을 신뢰해봐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동안 나는 아이들을 내 품 안에 머물게 하면서 "적당히" 키워온 것 같다. 적당히 아이들을 믿어 주고, 적당히 자유를 주고, 적당히 간섭하면서 적당한 육아를 하면서 스스로 만족했던 것 같다. 어쩌면 전업맘에서 재취업 맘, 워킹맘이 되어 가는 과정이 캥거루 맘의 육아를 벗어버릴 수 있는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첫날과 마지막 날 편지를 써볼 생각이다. 처음 자립이 낯설고 긴장될 아이들과 또 잘 해낼 아이들을 격려하며 칭찬하기 위한 편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