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스스로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워킹맘.
일어나지 않을 많은 고민들과 걱정들을 뒤로한 채, 드디어 워킹맘의 시작을 위한 스위치가 켜졌다.
"입문 교육" 그것은 내게 '이제 너는 워킹맘이 되는 거야.'라고 말해주고, 우리 가족들에게도 '이제 엄마는 일하는 사람이야.'라고 말해주는 공식적인 과정이었다. 본사에 출근하여 일주일간 10am~ 6pm까지 받게 되는 교육 과정. 본사는 강남이므로 나는 집에서 8시에는 출발을 해야 했다. 8시 출근인 셈이다. 음... 괜찮은걸! 아이들끼리만 있는 오후 시간대가 문제이지 아침 시간은 내가 아침을 해줄 수 있고, 남편 도시락도 챙겨줄 수 있고, 또한 나도 가볍게 아침을 먹고 갈 시간 여유는 있으니 이쯤이면 할만하겠다,라고 생각을 했다. 이 얼마나 큰 나의 오산이었는지...
아침 8시에 집에서 나가기 위해서는 나는 6시에 일어나야 했다. 전업맘일 때에는 오전 10시 혹은 11시, 어느 때든 씻어도 되는 것을 이제는 아침에 일어남과 동시에 샤워를 해야 했다. 그리고 남편 도시락을 준비하고, 식구들의 아침 준비를 하고, 아이들과 남편을 깨워야 했다. 잠이 덜 깬 아이들은 입맛이 없는 것인지, 아직은 더 자고 싶은지 손동작과 동시에 입의 근육도 참 느리게도 움직인다. 느린 속도로 아이들이 그들의 몸과 정신을 깨우는 동안, 나는 아이들의 준비물이 빠지지는 않았는지 확인을 하고, 물병을 준비해준다. 그 사이 싱크대와 주방은 폭격을 맞은듯한 광경이 된다. 야채를 씻었던 볼, 프라이팬, 채, 도마, 칼, 요리용 나무젓가락, 과일칼, 과일 껍질.... 식탁은 조촐하게 옹기종기 모인 몇 개의 접시뿐인데, 왜 부엌은 이리도 방대하게도 어질러지는 것인지... 이를 정리하고 나면, 아침 요기를 하는 시간이 7시 50분! 5분 만에 후다닥 먹고는 양치질을 하고는 집을 나선다. 2시간이지만 정신없는 시간이다. 이 구체적인 시간과 행위에 대해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주부는 가족을 먼저 챙겨야 나의 일을 시작할 수 있음을...
주부는 나의 하루의 시작도 준비해야 하지만, 가족 구성원의 하루 시작도 준비해줘야 한다는 것을 전업맘일 때에는 크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눈을 뜬다고 아침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있었다. 나와 같은 주부들은 내가 나를 도와 아침을 시작하게 했고, 남편과 아이들은 나의 도움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때로는 야단으로 아침을 무겁게 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하루는 경쾌하게 혹은 무덤덤하게 맞이하기도 한다. 하루를 여는 분위기가 어찌 되었든 주부는 분명 가족들의 아침을 책임지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워킹맘이 되기로 한 첫날에!
8am. 집에서 나와 지옥철을 경험하게 되었다. 드라마에서나 보았던 지옥철. 어깨와 어깨가 딱 달라붙을 수밖에 없는 그 틈에서 은근한 보이지 않는 눈치 게임을 하게 됨을 알게 되었다. 집에서 본사까지는 지하철로만 1시간 20분. 중간에 갈아타기는 하지만 지옥철에서 지옥철로 갈아타는 것일 뿐, 상황은 매한가지였다. 계속 한 자세로 서있으려니 다리가 아팠다. 무겁게만 느껴지고, 이제 나이도 속일 수 없는 탓인지 움직이지 않고 뻣뻣하게 서있는 무릎은 굳어가는 느낌마저 들었다.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자리를 차지하여 앉는 것밖에는 없다는 것을 출근 이튿날 알게 된 것이다.
지하철에 들어서자마자 어떤 사람이 가장 먼저 내릴 것 같은지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대놓고 둘러볼 수도 없다. 보는 듯 안 보는 듯 스캔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놈의 촉은 늘 틀린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늘 '아~ 이놈의 촉이 왜 이리도 잘 맞는 거야. 아이들 꼭 사고 칠 것 같다, 하면 사고를 친다니까!' 하며 자신했던 슬픈 예감이라고도 불렀던 촉이었는데, 가정 밖의 세상에서는 전혀 통하지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이게 무능함과는 거리가 멀다며 나를 다독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입문 교육을 과연 잘 받을 수는 있을는지, 또한 엄마 없는 공간과 시간을 아이들이 잘 버텨줄지 걱정을 한 아름 안고서 교육장으로 들어갔다.
마인드 셋!!!!
"난 이제 사회인이다. 난 이제 워킹맘이다. 난 이제 경제인이다. 난 이제 돈을 스스로 벌 수 있다."
이 몇 마디의 문장이 나의 마음을 다잡게 할 줄이야. 오랜 시간 경단녀로 전업맘으로 살아온 탓이었을까, 늘어난 건 낮은 자존감과 겁뿐이었다. 겁이 더욱 많아졌다. 난 그냥 집 안이라는 공간에서 아이 둘과 성인 남자인 남편과 잘 지내기 위해 애써 왔을 뿐이었다. 같은 공간에서 지낸 남편도 성장하고, 아이들도 자라고 있는데 나는 작아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작아진 마음의 공간만큼 겁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난 집안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머무르는 게 아니라 뒤쳐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노아의 방주가 답답하기는 하지만 안전해서 창문을 열어볼 생각도 못한 채 머물렀더니, 이 방주가 자꾸 뒤로 떠밀려가고 있음을 나는 느끼지 못한 것이다.
이 몇 마디의 다짐에도 나는 힘을 얻게 되었다. 꾸준히 사회생활을 했던 남자들과 여자들, 워킹맘들이 보면 얼마나 우스운 말 인지 알지만 지하철을 내리며 교육장으로 들어가기 전 나지막이 내게 속삭였던 그 말의 힘은 위대했다.
"난 이제 나 스스로 돈을 벌어, 나를 먹여 살리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