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하기 싫어지는 건 뭐지?

번데기는 고통스럽다.

by 골드가든

"나 진짜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는 마음 어쩔 수가 없네."

덜컹덜컹 거리는 지하철의 손잡이를 잡았는데도 내 몸은 이리저리 흔들린다. 미국에 사는 동생과 전화 통화를 하였다. 둘 다 아이를 낳으면서 경력 단절이 된 여성들이니 어느 누구보다 서로의 마음을 이어 이해하기가 편한 상태이니 이 얘기, 저 얘기가 술술 나온다. 가슴 깊숙한 고민마저도 툭 하고 나오기도 한다.

"나, 내가 우겨서 시작한다고 했는데, 이거 참 쉽지가 않네. 벌써부터 힘들어. 하기가 싫다."

"그렇지. 아무래도 우리가 오랫동안 쉬기는 했잖아. 낯설기도 하고. 돈 벌기가 쉽지가 않아."

"그르니까. 육아가 제일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입문 교육받으니 이게 제일 어렵게 느껴지고 그러네. 괜히 한다고 했나, 싶기도 하고. 갑자기 하기 싫어진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

평소 아침잠이 많은 내가 새벽 일찍 일어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업맘이었던 흐름이 있어서인지, 남편 샐러드 도시락을 챙겨주고, 아이들 아침 식사를 준비해주고, 아이들 학교 갈 준비를 해주니 출발해야 하는 시간보다는 2시간은 일찍 일어나야 한다. 주부는 그렇다. 갑자기 자기중심적으로 변할 수가 없다. 가족이 늘 가장 우선순위에 있어기에 그 우선순위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지옥철을 타고, 다른 지하철로 이동하기 위해 걷는 그 길이 자갈길처럼 느껴졌다. 왜 그럴까? 그렇게 원했던 경제적 인간으로의 첫돋움인데... 나를 찾기 위해 나를 써보기로 마음먹고 남편도 아이들도 어렵게 설득했는데, 왜 힘들게 느껴질까? 마냥 기쁠 줄만 알았는데, 막상 시작을 위해 첫 계단을 오르려고 하니 억눌리는 게 더 많은 이 기분은 무엇일까? 나를 무능력하게만 느끼지 않기 위해 나를 발전시키겠다는데 왜 기쁨이나 설렘보다 어렵겠다, 힘들다, 서글프다,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일까?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한 명의 경제적 인간', '꽤 쓸모 있는 사람'에 대한 열망이 그렇게 크지 않았던 것일까?

문득 예전에 딸에게 해줬던 말이 생각이 났다.

"어떤 한 사람이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건너가기 위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려고 하고 있었어. 그런데 물이 너무도 얕은 거야. 그러니 작은 바위에도 자꾸 부딪히면서 앞으로 나가는 것이 힘든 거지. 작은 바위를 피하기 위해 노를 젓기를 여러 번 하게 되는 거지. 그 사람은 그 작고 물의 깊이가 낮은 그곳을 어서 벗어나고 싶었어. 물이 많아 작은 바위들에 부딪히지 않고 똑바로 가기를 바랐어. 그런데 마침 이틀 연속 비가 엄청 오게 된 거야. 어떻게 되었겠니? 그렇지. 강물이 불어나게 된 것이지. 작은 바위들이 물 밑에 잠겨 보이지 않게 된 것이지. 그 사람은 그때를 기다려 배를 타고 배를 건너게 되었단다. 쉽게 건너게 된 것이지.
여기에서 강물은 무엇인가를 이루고 싶어 하는 원하는 마음의 크기야. 강물이 얕다는 것은 원하는 마음의 크기가 작다는 것이지. 그러니 작은 바위, 즉 어려움에도 부딪히고, 또 부딪히고 어느 때는 배에 상처가 나서 배를 운행할 수 없게 되기도 해. 그런데 강물이 불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원하는 마음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겠지. 똑같은 작은 바위들이 방해를 해도 충분히 그것들이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단다. 우리 딸도 앞으로 이런 일들이 많이 있겠지? 그때마다 네 마음부터 잘 살펴봐."


아차! 내가 놓치고 있었구나. 힘듦 자체를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 힘들다. 그리고 배우지 않은 것을 배우자고 하니 힘든 것은 당연하다고 하지만 힘든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두근두근거린다. 무섭기도 하다. 이런 감정들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도 나의 마음의 일부이니! 하지만 내 원함을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왜 다시 워킹맘이 되고 싶었을까? 남편이 구박을 준 것도 아니고, 시댁에서 돈 벌어오는 며느리를 원하는 것도 아닌데! 워킹맘이 힘들다는 것, 아이들에게 이전과 같은 세심한 케어는 돌봄은 못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다시 돈을 벌고 싶었을까?


전업맘의 주머니는 항상 조그맣다. 물론 몇 명의 전업맘의 주머니는 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지갑은 늘 얇았다. 궁상맞게 살고 싶지는 않았지만 커피값이 아까웠다. 어쩌다 지인과 커피를 마실 때면 아이스커피는 사줘도, 6500원짜리 조그마한 케이크와 함께 사주는 것은 큰 맘을 먹어야 했다. 그때마다 내가 돈을 번다면 사정은 좀 달라질까,를 생각하곤 했었다. 가끔은 돈 한 푼 벌고 있지 않은 내가, 꼭 쓰지 않아도 되는 돈을 쓸 때면 괜스레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어떤 누구도 눈치를 주지는 않았다. 다만 나 스스로가 내게 눈치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육아만 하지 말고 일어나라며. 육아와 살림만 아는 작은 사람은 되지 말라고. 좁은 세상에 갇혀 사는 사람은 되지 말라고. 내가 끊임없이 내게 쓸모 있는 사람임을 증명해 보이라며 얘기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내가 버릴 수 없기도 하지만 난 내 안의 이 소리에 힘을 얻고 있었고 또한 좋아했다. 때로는 내 안의 소리를 부추기기도 했다.


문득 지금의 내가 번데기에서 탈피하는 중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배추흰나비의 애벌레는 참 많이 먹는다. 배춧잎을 먹고 또 먹으며 자란다. 매일 성장한다. 그럴수록 더 먹는다. 성장하고, 또 성장하고. 이런 과정 후 번데기가 되어 꼼짝도 하지 않으며 자신을 안으로 안으로 더 넣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곧 나비가 될 테지만 아직 뭐로 변할지 모른 채 두려워하며, 애벌레 때가 좋았다며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던 때가 좋았다며 투덜거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안에서 조금씩 변하는 자신의 몸 전체에 강한 통증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오로지 홀로 감당하며 나비가 될 준비를 한다. 더 성장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번데기의 고요하지만 안에서는 요란한 그 시기를 버티는 것이다.

일을 시작하기 전 이 어려움들이 어쩌면 더 성장하기 위해 겪는 성장통 같으리라. 버텨야만 성장할 수 있는 과정이리라. 전업맘, 경단녀에서 일하는 엄마, 더 쓸만한 인간, 경제적 인간으로 변하기 위해 겪어야만 하는 성장통이라 생각한다.

멋진 날개를 펼치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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