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 사람 노릇하고 살고 있는 것 같아."

첫 월급을 받고...

by 골드가든

10일...

내가 매달 10일을 기다리게 될 줄이야. 나는 이제 갓 일을 시작한 신입이다. 나이 마흔이 넘었지만 나이는 상관이 없었다. 신입은 신입이니까. 지독하게 모르는 것 투성인 신입이다. 모르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괜히 주눅이 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신입이기에 모르는 것이 당연한 당당한 신입이기도 하다. 신입... 이 말을 내가 하는 이유는 비단 내가 일하면서 초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만은 아니다. 신입... 이 단어는 이제 내가 월급을 받게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월급... 이 얼마나 신선한 단어인지...

간호사로 병원에서 근무한 이후로 남편 외에 내 통장에 돈을 넣어 준 적이 없다. 매월 5일이면 남편이 보내주는 생활비가 내 통장에 찍히기는 했다. 감사하기는 하지만 크게 기쁠 것도 없는 돈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 한 달 동안 애썼다. 이거 네 거야."라고 주는 돈, 내 노력의 결과가 아닌 "이 돈으로 한 달간 우리 가족 아껴서 잘 지내보자"라고 주는 돈, 내가 아껴야 할 우리 가족의 돈이었기에 오로지 내 것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내 노력의 결과라고 느껴지지 않은 공유의 돈이었다.

돈이라는 게 액수, 그 크기만 중요하지는 않다. 같은 돈이어도 의미가 다르고, 쓰임새가 다르고, 그에 따른 마음가짐이 다르며, 돈의 가치도 달라지는 것이다. 전업맘이었던 내게는 내 노력으로 얻게 되는 월급, 내 돈의 의미가 생활비와는 다른 것이었다. 내 몸과 내 시간을, 내 의지를 들여, 타인에게서 받는다는 것은 감격 그 자체였다.



"애들아, 엄마 곧 월급 받아. 첫 월급이야. 엄마가 쏠 테니 뭐 먹고 싶은 거나 갖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나는 첫 월급의 감격을 기억하고 싶었다. 나 혼자만이 아닌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그들에게도 기억하게 해 주고 싶었다. 그 대상의 첫 번째는 역시 아이들이 되어야 했다. 이유가 복잡하지는 않다. 교육을 받고, 한 달 동안 내 일에 익숙해지는 동안(지금도 익숙하지는 않지만) 나 혼자만 고생한 것만은 아니다. 늘 엄마의 손 아래에서 엄마의 도움을 받아 모든 것을 해결해 왔던 아이들이 자신의 정신력과 에너지를 쓰고, 자신의 시간을 들여 하교 후의 활동들을 이어가야 했다. 워킹맘의 자녀들은 다 그렇게 하는 거 아니냐고, 그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누군가는 아이들의 이 활동을 하찮게 여기며 간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나 안 해본 일을 혼자서 해내기 위해 애쓰는 것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긴장이 필요하며 그만큼의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법이다. 어른인 나는 자발적으로 그런 과정을 겪으며 수고의 대가로 내게 월급을 주었다. 하지만 내 아이들은 비자발적으로 이런 과정을 겪어왔다. 나와 같이 고군분투했던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노력을 알아줘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 월급에는 그들의 땀의 지분이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들에게 내 월급의 몇 %를 나눠주어야 했다.

이것은 내 아이들과 함께 첫 월급, 노력의 대가의 기쁨을 나누고 기억하고 싶은 것도 컸다. 내가 이 일을 하는 동안에는 가장 작은 크기의 돈일 테지만 가장 의미 있고, 가장 기운찬 돈이 될 이 "첫 월급"을 나 혼자서만 만끽한다면 그것이 차고 넘치는 "만끽"이 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니 그 의미가 줄어들기 전, 가장 가까운 내 아이들, 남편과 나누고 싶었다. 표현에 가장 정직하고, 풍성한 내 아이들의 환호를 받고 싶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고, 아이들의 겨울 대비용 옷을 사주고, 맛있는 요리를 사 주었다. 내 부푼 마음에 비해 굉장히 현실적이며 초라한 대접이자, 나눔이었다. 대접의 표현 방식이 조금 서투르면 어떤가! 이제껏 내가 그럴 기회가 없었으니 나의 뇌로 생각한 최고의 표현 방법이 이것뿐이니 내 선에서는 최고라고 하련다.

그리고 친정 부모님께 작은 용돈을 드렸다. 용돈 봉투는 나의 노력, 그리고 일하면서 얻게 된 기쁨의 말이었다.

"엄마, 나 월급 받았어. 용돈 좀 보내요."

"아서라. 나 쓸 거 있어. 너 써. 얼마나 받는디?"

"첫 월급인데 엄청 작지. 아르바이트한 것 같아. 그래도 내가 번 돈이잖아."

"그러니 너희 써. 애들 교육시키느라 돈도 많이 들어갈틴디..."

"맞아. 나 돈 많이 들어가. 근데, 이건 전 서방이 벌어다 준 생활비가 아니고, 내가 번 돈이잖아. 엄마가 나 낳아줬고, 교육시켜줬고, 내가 쓸만한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해줬잖아. 그러니 엄마, 아빠 지분 충분해. 그냥 받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나 너무 기뻐. 내가 애 키우는 것만 하다 내 인생 끝나는 건 아닌가, 많이 걱정했거든. 근데 나를 써볼 수 있고,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기뻐. 이제껏 그거 지켜봐 줬잖아. 나 보고 한숨 안 쉬고 그냥 기다려줬잖아. 고마워서 그렇지."

"뭘 또 그런다냐. 니가 한거재."

"얼마 안돼~~ 끊어요."

자꾸 지분을 따지며 친정 부모님께 감사함의 말고를 텄다.



작은 크기의 돈을 가지고 자식들, 남편, 친정 부모님, 시부모님, 가까운 지인들께 나누다 보니 그 돈의 꼬리만을 간신히 잡고 있다. 하지만 마음만은 작은 크기의 돈의 머리를 잡고 있는 기분이 든다. 이런 나를 보고 남편은 의아한 모양이다. 연애 6년, 결혼 12년을 함께 해 지내오는 동안 기분에 따라 돈을 쓴 적이 없고, 매사에 절약하는 내가 이렇게 돈을 물 쓰듯 흘려보내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으니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자기야~ 나 말이야. 작은 돈이긴 한데 이 돈 버니까... 뭐랄까... 내가..."

"사람 구실하고 있는 기분이 들지?"

"어. 맞아. 그 말이 딱 맞다. 사람 구실하고 있는 기분. 내가 잉여 인간이 아닌 사람 구실 하는 제대로 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어."


사람들은 돈의 양과 크기가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전업맘에서 이제 워킹맘으로, 사회인으로, 직장맘으로 변화된 삶을 산 사람들은 알 것이다. 돈의 크기, 양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돈은 그 크기와 상관없이 내 자신감을 회복시켜준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하는 것을 하찮게 치부하자는 것이 절대 아니다. 나 역시 육아와 살림에 더욱 가치를 뒀기에 전업맘을 택한 삶을 살았었다. 그럼에도 내 안에서는 엄마가 아닌 '나'란 사람, 개인을 늘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소리 없는 아우성을 모른 채 하기에는 너무도 괴로운 일이었다. 마치 무병처럼 말이다.

이 첫 월급이 나 개인을 증명해 보여줬으니 크기가 , 그 양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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