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금쪽같은 내 새끼"를 비롯하여, 여러 유튜버들, 그리고 인스타 등에서도 부모 교육, 솔루션을 많이들 내준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귀한 조언들이라고 생각하며 때로는 눈물이 앞을 가르기도 한다. 어느 때는 너무 안타까워 혼자서 속이 쓰려올 때도 있다. 가혹한 부모, 너무 나약한 부모 등 여러 모습의 부모가 있음을 보며, 그것들을 문제로 바라보려고 하니 문제점만 보이기도 했다.
한동안 육아서, 자녀 교육서들을 옆에 끼고 살았다. 쏟아져 나오는 자녀 교육서와 육아서를 무시한다면 그건 나만 손해라고 생각했었다.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라 내 중심을 정하면 적어도 육아를 실패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의 조언대로 하면 내 육아가 좀 더 편해질 거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읽고 또 읽고, 지금도 여전히 읽고 있다. 그리고 여러 강연들을 찾아보고, 또 보고, 여전히 보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날 눈물짓게 하는 강연과 책들이 있고, 내 가슴 깊숙이 시원하게 적셔지는 멋진 말들과 내 마음에 울림을 주는 깊은 깨달음들이 있는데 왜 난 여전히 육아가 힘들까?
좀 더 솔직히 말해보련다. 난 큰 아이의 육아가 버겁다. 이상하게도 버겁다. '버겁다'라는 표현은 실은 순화시키고 돌려 말한 것이다. 난 내 딸아이가 대하기가 힘들다. 책의 내용대로, 강연대로 해보고 사랑을 본질로 두고 아이를 대하고 싶으나 그게 잘 안된다. 속물스러울 수 있겠으나 조건적 사랑을 하고 있다.
뭐가 문제일까? 나를 돌이켜본다. 나의 어린 시절과 내 엄마와 나의 관계를...
나는 내 엄마와의 관계에서 깊은 유대, 애정을 느끼지 못한다. 날 알고, 나의 엄마를 아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깜짝 놀라며 믿지 못할 것이다. 내면이 아주 순하고 착한 나의 엄마와 그만큼이나 내면이 여리고 따뜻한 내가 깊은 유대감, 애정이 없다는 것은 실로 이해되지 않는 조합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다.
내 세대의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그러했겠지만 자식을 살뜰히 챙길 만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늘 바쁘신 부모님이셨다. 일도 일이지만 가난한 집 맏며느리이니 친척들 챙기는 일도 만만치 않으셨고, 늘 베풀기를 좋아하시는 엄마는 이웃을 챙기는 것 역시 빼놓지 않으셨다. 동네에서는 늘 인자하다고 소문이 난 엄마였다.
그런데 사람의 에너지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자식인 우리들에게는 정작 그 인자함과 따뜻함을 보여주지 못하셨다. 우리 남매들은 엄마의 바쁜 뒷모습과 함께 우리에겐 동네 어른들께 심부름해야 하는 일이 매일 가득이었다. 따뜻한 음식이 담긴 쟁반을 들고 동네 구석구석을 걸으며 생각했었다.
'다른 사람에게 고맙다고 얘기 듣는 게 더 좋은 건가? 난 이렇게 싫은데 내 의사는?'
그러면서도 엄마의 말에는 반박할 수 없었다.
'작은 것이라도 베풀어야 복이 와. 움켜쥐고만 살면 사람이 외로워.'
어린 나이였지만 난 그 말을 이해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결이 비슷한 엄마의 말씀이기에 내게는 깊이 들어왔다. 하지만 불편했다. 내게 섬세히 베풀어 주시지.... 이 생각은 끊이질 않았다.
난 늘 엄마의 말을 듣고, 그대로 하려고 노력했다. 인사를 잘해야 한다고 하니 인사를 무척이나 잘했고, 낙서를 하면 안 된다고 하니 그 흔한 교과서 낙서도 해본 적이 없다. 욕을 하면 안 된다고 하니 내게 가장 큰 욕은 "바보"였다. 사람은 미워하면 안 된다고 하니 미워하는 마음을 꾹꾹 누르며 살아왔다. 난 인간으로서의 내 엄마는 좋아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엄마-딸의 관계를 놓고 생각하려 하니 깊은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애틋함이 크지 않다. 그래도 엄마이니 좋지만 살뜰한 마음이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다. 어려운 엄마이다. 벽 뒤편에 있는 엄마이다. 내 두 번의 출산에도 한 번도 달려와 주지 않으셨던 엄마...
그런 내가 엄마가 되었고, 딸이 생겼다. 그것도 첫째 아이로 말이다. 딸아이를 낳고는 결심했었다.
꼭 살가운 엄마가 되어야지, 아이 편에서 생각하고 챙겨주는 엄마가 되어야지, 그리고 내 딸아이가 가장 우선이 되어야지,라고 말이다. 결의에 가까운 결심이었다. 늘 "엄마~"하고 부르면 "응~왜, 무슨 일 있어?"라고 대답할 수 있는 거리에 있어줘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난 참 성실히 도 그것을 잘 해왔다.
그런데 아이가 커갈수록 힘들다는 걸 느낀다. 난 이제 딸이 아닌 엄마의 위치에 있는데도 이 '엄마와 딸' 사이가 가까워지는 것이 힘들다. 그렇다고 멀어지는 것도 싫다. 친밀해지는 것이 조금 불편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딸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내가 내 엄마와의 관계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일 거라고 생각을 한다.
문제는 해결을 해야 하는 게 맞는데, 난 이 문제를 해결할 자신이 없다. 다만 그 문제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렇다고 내 아이에게 나와 같은 어려움을 주고 싶지는 않다. 내 아이는 인간관계의 편안함을 가졌으면 좋겠다. 결국에는 부모인 내가 문제인 게 맞는 건가, 싶다. 오은영 박사님이시라면 아마도 금쪽이 엄마인 내가 먼저 해결해야 문제를 풀고서 아이를 더 따스하게 대해 주어야 한다고 얘기하실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