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도서관 책 셔틀은 4년째
누군가 그러더라. 연애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적어도 한 바퀴는 돌아야 그 사람을 알게 되는 것 아니냐고. 난 일정 부분 그 말에 동의하고 있다. 계절별 사람이 변하고, 그 모습을 지켜보겠다는 뜻이 아니다. 1년이라는 시간의 의미를 두고 이야기하는 것일 것이다. 시간이라는 것은 참 상대적이다. 1년, 365일의 시간이 어떤 사람에게는 짧은 시간일 수 있겠으나, 또 어떤 이에게는 꽤 긴 시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1년의 시간은 분명 의미가 있는 시간임에 틀림이 없다.
갓 태어나 우는 것, 젖 빠는 것밖에 못하던 아이도 1년을 보내게 되면 대부분 일어서서 자신의 몸을 지탱할 수 있고, "엄마, 아빠"와 같은 간단한 말을 함은 물론이거니와 사람들이 하는 대부분의 말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것도 못해서 늘 야단을 맞던 회사의 신입들도 1년의 시간을 버티고 살아 내다 보면 이제 자신의 업무의 상당 부분에서 반프로가 되어 있다. 나는 주부 2년 차에 막 진입했을 때 요리가 가장 많이 늘었다. 그리고 모성애 역시 아이가 1~2살 때 가장 많이 배우고 키워냈던 것 같다. 그만큼 1년이라는 시간은 무시할 수 없는 아주 크고 긴 시간인 것이다.
난 지난 1년 동안 왜 아이들을 데리고 매주 토요일만 되면 도서관을 갔을까? 그리고 무엇을 얻었을까? 그리고 또 무엇을 잃었을까?
나는 도서관의 책 내음이 좋다.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도서관은 아이들을 주 고객으로 만들어 놓은 도서관이라서 대부분 아이들의 책으로 채워져 있지만 2층으로 올라가면 어른을 위한 책들이 있다. 두꺼운 책들을 보면 당장 읽고 있지는 않지만 마음이 커다랗게 부풀어 오름을 느낀다. 꼭 내 서재에 놓인 책들인 양 부자가 된 느낌이 든다.
첫 아이가 2살 때 이 도서관을 간혹 이용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유아 코너에서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얇은 동화책이 빽빽하게 꽂혀있는 것을 볼 때에는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는데, 부피감이 제법 있는 어른 책이 나란히 놓여 있는 책장은 고급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온전히 내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이용하지 못할 것도 없는 공간이니 만족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나를 위해 도서관을 다니기 시작한 것 같다. 나는 도서관이 좋다. 아이들의 소음 때문에 조금은 시끄럽기는 하지만 바깥 소음보다는 훨씬 조용하기도 하고, 건강한 소음이다. 책을 읽어주는 부모님들의 말소리, 2층으로 되어있는 도서관의 계단을 뛰어오르며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소곤소곤 귓속말하듯 재잘거리는 초등 고학년 아이들의 말소리... 이런 소음은 내 귀에 거슬리는 소리는 아니다. 때로는 아이들이 떼를 쓰며 우는 소리가 들리기는 하지만 가끔 있는 일인데 뭐 어떤가!
도서관은 사람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좋다. 없으면 조용하니 좋고, 있으면 책을 읽는 아이들, 어른들의 모습을 보니 그 또한 좋다. 어른 책이 어린이 책에 비해 적다고 하지만 그 책의 수가 1000 권은 족히 넘으니 절대적인 양으로 적은 양은 아니다. 어른 책 코너에 나이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서성이다 큰글 자책이라도 발견하면 보물을 발견한 듯 꺼내 그 자리에 망부석이 된 채 책을 읽어내려가는 모습을 보면 가끔 눈물이 나기도 한다.
책 욕심이 있다고 하지만 어디 나 혼자만을 위해서 내 두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 관행을 택했겠는가? 분명 내가 도서관 나들이에 내 아이들과의 동행을 시도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은 내 아이들이 책만 있는 환경 속에서 지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것 같다. 유독 책을 싫어하는 둘째 아이에게 책 읽는 어른,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책은 언제든 네 옆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욕심이 들어가 있었다. 주중에는 두 아이의 시간표가 각각 다르니 주말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빈둥거리다 보면 금방 지나가는 토요일 오전이 좋을 듯했다.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아이들을 도서관에 데리고 가서, 엄마가 읽었으면 좋겠는 책을 추천해 주냐고 물었다. 책 셔틀을 할 때는 그랬다. 나 혼자 도서관에 가서 책을 대출해서 올 때는 아이들의 의사가 크게 개입되지는 않았다. 오직 내가 읽히고 싶은 책만 존재했다. 그런데 아이들과 도서관을 가면서부터는 아이들이 읽고 싶은 책을 보게 한다. 하지만 대출해 오는 책들은 엄마인 고르는 책들 위주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도서관은 사랑스러워야 하는 공간이므로 그 공간의 이미지를 싫은 것으로 추락시키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책을 읽지 않고, 1층과 2층 복도를 뛰어다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그냥 지켜보았다. 그래도 주변이 책이니 책 냄새는 맡고, 책이라는 물체를 볼 테니 말이다. 그리고 평상시 곤충에 관심이 있으면 도서 검색대에서 곤충이라는 글자를 쳐서 검색해보도록 하였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이 저절로 관심 있는 책을 찾게 되고, 그 책에 빠져 읽게 된다.
그러면 나는 평상시 독서 습관, 지식 쌓기를 위해서 읽었으면 하는 책들을 몇 권 빌려온다. 평상시 집에서는 숙제를 하듯이 독서도 의무적으로 해야 함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물론 도서관에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책을 읽을 때보다는 덜 재미있어하고, 덜 애정을 느끼는 건 사실이다. 때때로 빌려온 책들을 읽지 않고 반납하기 일쑤일 때도 있다. 하지만 5권 중 1권이라도 읽으니 여전히 대출은 나의 의견이 많이 들어간다.
무엇을 얻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책을 읽을 마음"을 얻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지식을 얻은 것도 책에 빠져드는 습관을 얻은 것도 아니다. 미친 듯이 책을 읽는 습관을 얻은 것도 아니다. 나와 내 아이들은 "책을 읽을 마음"을 얻었다. 무엇이든 활자로 되어 있는 것을 읽을 마음을 얻었고, 활자를 거부하지 않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대단한" 지식을 쌓은 것도, 아이들의 문해력이 "갑자기" 키워진 것도 아니다.
사실 나도 1년간 도서관을 다니며 책을 읽는다면 내 아이의 문해력뿐만 아니라 배경 지식이 굉장히 쌓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사교육이 없어도 아이들이 똑똑하게 학교 수업을 따라가고, 최상위까지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서는 영재원 시험도 합격할 것이라는 헛튼 욕심을 갖기도 했었다. 이상화 작가의 <하루 나이 독서> 책을 읽을 때면 왠지 내 아이들도 책을 읽으면 가능할 것 같고, 욕심도 나곤 했다. 하지만 부모의 열심과 역량의 차이인지,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의 차이인지, 혹은 아직 시간이 그만큼 채워지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찌 되었든 도서관을 데려가고, 매일 책을 읽힌다고는 하나 갑자기 "대단히 뛰어난 아이"가 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두꺼운 책을 거부했던 큰 아이는 두꺼운 책 읽는 것을 거침없이 시도하며, 책 읽는 것 자체를 싫어해서 혼자서는 절대 책을 펼쳐보지 않았던 아이는 혼자서 낄낄거리며 책을 붙잡고 있는다. 그리고 도서관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도서관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코너가 생겼으며, 무엇보다 그 코너의 많은 책들 속에서 무슨 책을 읽을까를 고민하며 서있는다.
'뭐 그 정도의 변화를 가지고?'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혼자서 책을 읽으려고 기를 쓰는 아이, 항상 얇은 책만 집어 들고 더 높은 단계로 점프하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를 둔 부모님들은 그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알 것이다. 책을 읽어주다 보면 언젠가는 읽겠지, 하며 목 아프게 읽어오며, 이야기의 절정 단계에서 읽어주는 것을 멈추면 혼자서 읽지 않을까를 기대해 보았지만 나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여지지 않을 때의 막막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또한 한 단계 더 상위로 넘어가도 될법한 아이가 늘 글자 수에 얽매여서 머뭇거리며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의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데 매주 2~3시간의 도서관 나들이는 나의 이런 고민들을 해결해주었다. 아이들 뿐만이 아니다. 나 역시 처음 자기 개발서부터 자녀 교육서를 넘어 글쓰기, 인문학, 에세이, 그리고 고전소설까지 넘나들며 내 읽을거리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이것은 나 역시 "책을 읽을 마음", "더 알고 싶고, 도전해봐도 될 것 같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잃은 것은 없는가? 왜 없겠는가? 우리의 경우, 다채로운 외부 활동 놀이를 포기해야 했다. 아이들이 조금 커서 나 혼자서도 아이들을 데리고 지하철을 이용해서 혹은 버스를 이용해서 이동이 수월해지게 되면 미술관이며, 박물관, 음악회 같은 곳을 다니고 여행 등의 여러 경험을 많이 시켜주고 싶었다. 큰 아이가 초등 고학년이 되니 역사 여행이 필요해짐을 느낀다. 바쁜 아빠가 꼭 있어야 여행이 가능함을 내가 대체하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은 조금씩 포기하게 되었다.
대신에 여행, 글램핑, 박물관, 미술관 등의 경험은 아빠가 있는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에 짧은 시간 동안 하게 된다. 아이들의 아빠가 토요일 오후 2시 30분이 되어야 일이 끝난다. 그래서 우리는 늘 오후 3시 30분쯤 이동을 한다. 그러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놀 수 있는 많은 시간들을 놓치게 된다. 흠족할만큼 놀지를 못하거나, 2박 3일의 일정으로 여행이나 글램핑, 캠핑을 즐길 수는 없는 것이다.
첫 아이가 중학생이 되기 전에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기에 이 부분은 늘 아쉽다. 물론 그만큼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오후까지 만 하루는 알차게 보내려고 애를 쓰기는 하지만 시간의 제한이 있기에 맘만큼 다양한 활동을 해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가끔은 아이들이 도서관을 가기 싫어할 때에도 도서관에 머물러야 하는 경우가 있기에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자율성이 없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나는 토요일의 도서관 나들이를 위해 아이들의 사교육 중 토요일 수업이 있다고 하면 무조건 제외하고 보려고 한다. 다행히 큰 아이는 학원을 썩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다. 하지만 둘째의 경우에는 토요일 축구를 추가해서 더 하고 싶다고 할 때가 있다. 그런 경우에도 예외를 주지 않으니 아이 입장에서는 조금 답답할 것이다.
또한 토요일 아침의 게으름을 잃었다. 늦게 일어나고, 아침 10시가 넘어서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움직여도 좋았지만 토요일 도서관 나들이를 한 이후에는 토요일 아침의 여유로움이 사라졌다. 그래서 여유롭고 다소 사치스러운 브런치를 만들고, 커피를 우아하게 마실 여유는 없다.
나에게 이 도서관 나들이는 언제까지 할 것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내가 걸을 힘이 있고, 내 시력이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큼 받쳐주고, 내 몸이 크게 힘들지 않은 한은 죽을 때까지 하고 싶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럼 내 아이들은 언제까지 도서관 나들이에 동행시킬 건가요?라고 묻는다면, 지금 마음으로는 중학교 때까지는 주말 도서관 나들이를 지속하고 싶다고 대답할 것이다.
잠깐잠깐 도서관에 발 딛은 것까지 합치면 아이들과의 도서관 나들이가 11년이 되었다. 그러다 코로나가 되면서 나 홀로 도서관 대출을 본격적으로 시행하며 도서관 셔틀을 하기 시작하면서 매주 10~20권가량의 책을 나르고 있다. 그게 벌써 4년이 넘어간다. 물론 다 읽지 않는다. 때로는 읽지 않고 반납하는 책들에게는 미안하기도 하고, 아이들과 내게 화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흐름은 있는 법이다. 책이 유난히 잘 읽히는 때가 있고, 유난히 집중이 잘 되는 때가 있는가 하면 책 한 글자를 읽는데도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어디 독서뿐이겠는가!
매주 도서관 나들이는 장점, 단점으로 이야기하다 보다는 얻는 것과 잃는 것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솔직히 나는 얻는 것이 더욱 많다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숲 속에 있는 도서관을 꿈꾸기도 한다. 바람 소리가 들리고, 새소리가 들리는 큰 나무 가지가지마다 책들이 진열되어 있고, 난 사다리를 이용해서 책을 꺼내며, 아이들은 가끔 숲에서 뛰어놀다 풀밭 위에 엎드려 누워 책을 읽는 그런 상상...
도서관에서 나와 나의 아이들이 성장하고 싶은 크고 높은 바람과 함께....